하찮게 보였던 것들이 다른 시각으로 보였어

보고 싶은 엄마

by JF SAGE 정프세이지


친정집을 갈 때마다 주방 벽면에 있는 엄마의 흔적들을 사진을 찍는다. 전에 찍지 않은 것처럼.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것 같다. 마지막 남은 엄마의 손길.

엄마를 보듯 색종이 꽃과 엄마의 글씨를 바라본다.


엄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만들어 온 작품들이다. 요양병원,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 세 곳을 거쳤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만들기 작품들을 친정집으로 가져온듯 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하찮게 보였다. '이런 걸 왜 만드나.' 한참 수준에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친정에 갔을 때 엄마가 가져다 보여주면 대충 "예쁘네"라고 말하고는 얼른 관심을 딴 데로 돌리곤 했다.

엄만 가끔 엄마만 따돌린다고 하소연을 했다. 귓등으로 들었다.


도립노인전문병원에서 봉사를 하게 되면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5번째 방문을 하고 나니 어르신들이 생각난다. 1시간 준비해서 복지사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인지활동 보조를 한다. 투덜이 어르신 전담해서 같이 활동을 하기도 하고 말을 들어주고 질문을 하고 답을 들어준다.

희진 어르신은 94세임에도 미술활동 모든 영역에서 깔끔하게 색을 칠한다. 작품들이 예쁘다. 순자 어르신은 행동이 빠르다. 맘대로 칠하다가도 희진 어르신의 작품을 보면서 벤치마킹을 잘한다. 곧잘 다른 사람도 도와준다.

만들기 작품은 갖고 싶으나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분도 있다. 매섭게 쳐다봐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데 눈이 마주치면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보내는 어르신. 수업시간 내내 어지러워 소리를 내는 분,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분들도 있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활동을 했겠구나. 엄마가 가져온 작품들은 아마도 요양보호사들의 작품일 수도 있다. 글씨는 엄마가 쓴 게 확실하다.



내일은 인지활동지도사로 첫 수업을 하는 날이다.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쁘다.

몸치 박치 음치인 내가 어르신들 앞에서 손유희, 노래를 하며 함께 체조를 한다.

프로그램 안에 체조를 2개나 해야 한다. 노래를 부르랴 박자를 맞추랴 율동을 외우랴 바쁘다. 음악활동도 아닌데 그렇다. 인지활동이나 우리들 이야기는 통합적인 활동을 하며 주로 대화를 하거나 내가 질문하고 답을 들어야 한다. 주제와 내용은 정해져 있고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는 내 몫이다.

여름과 관련된 속담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거다. 어르신들이 이걸 다 알까? 첨 들어보는 것들도 있다. 우리들의 이야기 주제는 화투퍼즐이다. 지난달에 수업준비를 하며 남숙 팀장과 현주 선생님이랑 함께 이야기를 했다. 기존 퍼즐(45피스)은 조각이 너무 많아 힘들어할 것 같다. 그러니 화투 프린트에 색칠하고 직접 오려서 퍼즐을 만들어 맞추는 걸 중점적으로 하기로 했다. 마무리로 화투박수를 한다. 이건 삼치인 나도 정말 쉽고 재미있다. 화투치는 과정을 스토리텔링한 것이다.


기존의 박수들과 체조들을 조금씩 바꾼다. 내가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어르신들이 너무 쉽다고 뭐라하면 어쩌지?



지난번에 못 만났던 강사로 활동하는 선배 희정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 머리가 아파 병원에 가야 함에도 지난번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게 못내 신경이 쓰였나 보다.

2시간 넘게 열정적으로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주고 싶고 실수했던 것들도 말해주었다. 혼자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고 행동력이 부러웠다. 자신이 힘들었던 길을 좀 더 편안하게 갔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느껴져 감사했다.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걸 안고 왔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지? 인지활동지도사를 하는 동안 내내, 다른 일을 함에 있어서도 늘 가지고 갈 질문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친정집 주방에 있는 엄마의 작품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색종이 꽃 하나하나에도 이런 시간들이 있었구나. 복지사 선생님의 준비, 자원봉사자들의 애쓰는 모습, 어르신들끼리의 은근한 경쟁과 배려, 하기 싫어하다가도 슬그머니 참여하는 마음들.

엄마도 희진 어르신처럼 깔끔하게 해내고 싶었을 텐데. 순자 어르신처럼 다른 분 작품을 부러워하며 따라 했을 수도 있겠다. 매섭게 쳐다보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웃었을 수도 있고.

아, 엄마의 이야기를 더 들을걸.

이런 공부들을 먼저 했다면 엄마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 엄마에게 못다한 것들을 내가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하는 걸로. 혼자 있을 때 가만히 "엄마"하고 불러본다. 생전정리지도사 공부를 하면서 엄마를 부르는 횟수가 많아졌다. 웃기도 울기도 한다.


사진 속에 친청집 주방 벽 색종이 꽃들을 다시 본다. 여전히 삐뚤삐뚤하고 어설프다. 그런데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사람들이 보인다. 하찮은 건 없었다. 내가 제대로 보지 않았을 뿐이다.하찮게 보였던 것들이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