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통해 거듭나고 있다

by JF SAGE 정프세이지



내용과 대상만 달라졌지 내가 하는 일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결혼 전엔 잠시 중학교에서 과학을, 결혼 후에는 집에서 과학실험과 수학을 가르쳤다. 이제는 나보다 나이가 있는 인생선배들을 가르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처럼 나도 그렇다.


어려움의 정도는 고등 수학이 제일 어려워 부담감도 컸다. 과학실험은 아이들의 호응도가 커 재미있었지만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에 불편함이 따랐다. 요양원이나 데이케어센터에서 하는 일은 내용이 어렵지 않지만 변수가 크다. 선배님들의 상황에 따라 어떤 날은 반응이 좋고 다른 날은 아닌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내 기분도 춤을 춘다.


인지 정도가 많이 달라서 어디에 중점을 두고 해야 할지 매번 달라져야 하고, 그날의 상태에 따라 참여자가 절반으로 줄거나 2배가 되기도 해 준비물 준비에 어려움이 있다. 내게 있어 수업의 만족도는 상대방과의 소통이다. 소통이 잘되면 날아갈 것 같다가 반대의 상황에서는 어깨가 절로 내려간다.


수업이 목요일과 금요일에 있기에 월요일에 준비를 한다. 전체 구성이나 주제는 정해져 있다. 그걸 가지고 내가 변경을 해서 내가 가는 곳 상황에 맞춰 어떻게 할 건지 강의계획서를 짠다. 30명이 넘는 주간보호센터, 10명 이하인 H요양원과 참석자가 고무줄인 G요양원, 같은 내용이지만 세 곳 다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편하게 수업하자고 하면 얼마든지 편할 수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도 함께 하는 선생님들도 지극정성으로 준비를 한다.



30분 늦은 주간 보호센터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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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주제로 여권 만들기와 여권 들고 사진 찍는 날이다. 미리 전주에 예고를 했다.


"다음 주에는 사진 찍을 거니까 예쁘게 하고 오세요."


머릿속으로 인사말, 노래 가사에 맞춰 율동을 해보고 어떤 말로 퀴즈 풀기를 할 건지, 여권에 관한 작업은 어떻게 할 건지 그렸다. 사진 찍는 건은 보호사들에게 부탁해야지.


담당 사회복지사와 통화를 했다. 어르신들 어떻게 앉으면 좋은지 준비물 체크 전화였다. 평택에서 안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접어 든 순간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도착시간도 점점 늦어진다. 반대편은 널널한데 이유가 뭘까?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전화를 해 조금 늦는다고 하니 천천히 안전운전하고 오라고 한다. 신호가 바뀌어도 진전이 거의 없다. 공사였다. 매일 가는 사람이야 알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나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하라고. 전화를 해 이유를 말하고 본 활동만 해도 괜찮은지, 어르신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하고 끊었다.


딱 30분이 늦었다. 문을 여는 순간 40명이 넘는 사람들의 눈이 내 쪽으로 향하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호사들이 잘 도와주는 곳이라 내가 당황하지 않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격려의 박수까지 보내주었다.


만들어 간 여권 책자의 겉표지 세계지도에 색을 칠하고 입국 스탬프 도장을 오려 붙이고 완성해 갔다. 보호사 두 명이 전담을 해 공항 홀로 패브릭 포스터(우드락에 고정해서 가져감)를 들고 테이블마다 순회를 했다. 기장 모자와 선글라스, 넥타이, 스튜어디스 모자, 스카프, 선글라스를 쓰고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는 어르신들 표정이 환해졌다.


이렇게 수업을 마쳤다. 마무리하면서도 "죄송합니다" 다시 말하고.


수업에 늦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얼마나 미안했던지 입만 열면 "죄송합니다"와 폴더인사를 했다. 미안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다행스럽게 보호사 2명이 오늘 내용 좋았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 담주 수업에 공사가 안 끝나 또 늦을까 봐 빨리 나갔다. 도로는 깨끗했고 정체도 없었고 난 차에서 30분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갔다. 필요할 때 보강 수업을 해 줄테니 요청하라고 말을 하고 나니 조금은 편해졌다.



총 없이 전장에 나선 수업


수업을 할수록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진행해야 하고 보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도 정확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나머지 2곳은 그 주간 첫 번째 수업에서 미진한 부분을 채워 만족스럽게 했다.


준비를 잘 해 가야지 다짐을 하고 준비물과 태블릿과 강의계획서가 든 가방과 핸드마이크 가방, 내 가방을 챙겨서 나갔다. 출발 전 길냥이 밥을 주려고 손에 든 것들을 현관 앞에 두었다. "작고, 집 잘 지키고 있어. 밥 맛있게 먹고." "야옹." 현관 앞에 있던 물건들을 들고 갔다.


수업준비도 거의 완벽하게 했고 인원수가 많으면 A플랜으로, 적게 참석하면 B플랜으로 해야지 시뮬레이션도 했다.


G요양원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TV와 연동이 되는 태블릿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머리가 하얘졌다.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머리속이 복잡한 상태로 수업 장소로 갔다.


다행인지 수업 참여자가 최소다. "죄송합니다." 사과부터 하고 "제가 가장 중요한 총을 안 가지고 전장에 왔어요." 체조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했다. 여기 어르신들은 너나 나나를 잘 모르신다. 쉽게 할 일을 어렵게 했다.


본 활동으로 가을과 가을 걷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억을 이야기하는 동안 표정들이 다 어려진다. 귀여운 저울과 야채 모형들을 가지고 분류하기, 벌레 먹은 것(스티커를 붙여 놓은 것) 골라내기, 모형 가지고 균형을 맞추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3번째 수업이라 모든 내용들이 머릿속에 있어서, 평소보다 참여 인원이 적어서 수업을 잘 마무리했다.



실수는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30분 늦은 주간보호센터 수업에서 40명이 넘는 어르신들 앞에 서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고, G요양원 수업에서는 가장 중요한 태블릿을 두고 와서 '총 없이 전장에 온' 기분을 맛봤다. 그때마다 어깨가 절로 내려앉고 한숨이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수업을 마칠 때마다 더 단단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실수는 언제나 당황스럽다. 특히 나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살아오신 어르신들 앞에서 하는 실수는 더욱 부끄럽다. 하지만 그분들의 따뜻한 이해와 격려의 박수, 그리고 보호사들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에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다.


매주 다른 변수들과 마주하면서 깨달은 것은, 완벽한 준비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A플랜이 안 되면 B플랜으로, 그것도 안 되면 즉석에서 C플랜을 만들어내는 순발력 말이다. 어르신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관대하고 따뜻하다. 내 실수에도 웃어주고, 서툰 진행에도 함께해준다.


결혼 전 중학생들을 가르치던 때와 결혼 후 집에서 과학실험을 하던 때, 그리고 지금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간까지, 가르치는 일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바로 '소통'이다.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서로의 마음이 통할 때 느끼는 그 순간의 기쁨은 똑같다.


앞으로도 실수는 분명 있을 것이다. 교통체증에 걸려 늦을 수도 있고, 중요한 준비물을 빠뜨릴 수도 있다. 이제는 안다. 실수는 나를 더 나은 선생님으로 만들어주는 디딤돌이라는 것을. 매번 넘어지면서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의 더 깊은 의미를 배워가고 있다.


오늘도 가방을 챙기고 길냥이에게 밥을 주고 어르신들에게 간. 혹시 모를 실수에 대비해 마음의 여유도 함께 챙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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