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줄이려다 하나를 더 했다
병이 도졌다. 도움이 될 것 같은 강의나 책을 접하면 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어떻게 하면 저걸 들을 수 있을까? 시간을 어떻게 마련할까? 그 강의를 듣기 위한 사전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작동하는 전전두엽이 '너 지금 하는 일들이 넘쳐나. 이건 지금 아니고 나중에 해', '너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등등 제재를 가한다.
운전을 하거나 길을 가다가 플래카드를 만난다. 어떤 내용이 먼저 보이는가? 나는 강의나 일자리에 관한 것이다. 그런 걸 보는 것만으로도 도파민이 작동하나? 미사 가면 주보를 들고 성당 안으로 입장한다. 교육과 모집 부분을 가장 우선적으로 본다.
'너무 머네', '이건 좋은데 다른 할 일이 있네.'
평택으로 이사와 처음엔 좀 조용히 살았다. 널널하게 사니 좋았다. 여유롭게 지내는 생활이 좋았다. 작은 정원을 가꾸는 것도 좋았다. 풀을 뽑다가 조금만 더더 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기도 했다.
어느새 '노후 준비가 안 되었어', '어른은 자기 자신을 끝까지 책임져야 해'라는 이유를 달아 새로운 일을 알아보고 있다. 나이가 먹어도 할 일은 정원 가꾸기와 글쓰기가 있으니 됐고, 이젠 돈을 벌어야겠다.
지금 내가 돈을 번다고 백만장자를 바란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내가 생활할 수 있으면 된다. 그게 어느 정도냐고? 여행도 가야 하고 책도 사고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아이들 용돈도 줘야 하니...일을 많이 해야 하는구나.
하나만 더, 딱 하나만 더 하다 보니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지식창업사업을 하기 위한 1년 과정이 끝났으나 재수강을 하고 있다. 생전정리지도사로 강의를 하려면 사회복지사 공부도 해야 한다고 해 시작했다. 벌써 중간고사도 한 번 보았고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 경력이 필요하다고 해 '시니어 브레인 여럿' 소속으로 인지활동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수업을 한다. 지금 상태가 딱이다. 블로그 대행을 하고 있다.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내 성장을 위해 투자를 할 시간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도움이 될 것 같아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자전적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신청해 듣고 있다. 새벽엔 줌으로 90분씩 월수금 요가를 한다. 브런치엔 목요일마다 글을 쓰고, 블로그엔 비정기적으로 올린다.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도 즐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한 달에 책 4권은 읽어야 한다. 혼자는 안 할 거니까 북클럽에 가입해서 활동중이고,적어도 한달에 1번은 발제까지 준비한다. 유비무환 알지만 난 벼락치기다. 비몽사몽 효율성이 떨어지지만 책임 완수를 위해 밤새워하고 있다. 점차 새벽 5시 루틴은 사라지고 있다.
주말부부라 가능한 일이다. 그러던 중에 웰라이프 강의를 신청했다. 이건 진짜 내가 하고자 하는 웰다잉과 연결된다. 생전정리지도사 공부를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웰다잉이라 고민하지 않고 바로 신청했다.
정리의 칼을 들었다. 2~3달 전부터 아침에 못일어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새벽 줌 요가에 참석했다.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우기기엔 참여도가 너무 낮았고 수업료가 아깝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인연으로 못한다는 이야기를 못하다 정리했다. 잠을 좀 더 자고 일어나니 상쾌함을 느끼는 횟수가 많아 좋다.
두 번째로 도서관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정리하고자 톡을 보냈다.
"상황이 이러해 수업을 하기가 힘듭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아쉽네요. 생각이 있으면 이야기 하세요. 특별하게 개인지도를 해 줄께요."
이건 뭐지?
내가 의도한 건,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 일과 가장 멀다고 여긴 걸 정리하려고 한 건데... 고민이다. 하루만 고민해 보고 답을 해도 괜찮은지 물었다.
'너무 지나친 친절에 내가 받아들여도 되는지 하루만 생각하고 답해도 될까요?'
이건 과도한 친절이라 생각하면서도 해보고 싶었다. 내 안에 발동된 호기심과 경험에 대한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밤늦게 답했다. 덥석 물었다. 12장면을 뽑았던 것을 보냈다. 그다음 날 아침이 되니 좀 더 솔직한 내 모습에 직면하고 장면을 바꿔 다시 보냈다. 나에 대해 생각한 시간들이 많아졌다. 아침마다 30분씩 읽고 있는 책들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와 '모닝페이지로 자서전 쓰기'이다. 지금의 내 상황과 잘 맞아들어가 도움이 되었다. 생각할 수록 장면들이 변하거나 해당 장면의 그림들이 생각난다.
글을 보았을텐데, 선생님에게 반응이 없다. '이건 뭐지?' 선생님이 생각한 개인지도가 뭘까? 난 방법도 안 물어보고 시작한다고 했을까? 어려운 이야기인 수업료와 절차를 물어보지도 않고 하겠다는 것만 정했다. 역시 난 F야.
다시 질문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개인지도의 형태가 뭘까요?"
"원하는 형태가 어떤 건가요? 도서관 수업 차수에 맞춰서 하고 필요하면 통화나 이렇게 톡으로 하면 어떨까요?"
이걸 보니 불편했던 맘이 확 풀어졌다. 선생님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선에서 하겠다는 것이고, 나도 이 정도 친절은 받아들일 수 있다. 마음이 따뜻해져 기회가 되면 나도 다른 이들에게 이런 훈훈함을 전달해야 하는구나.
정리를 하는 대신 고마움에 답으로 정성을 다해 생각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것 같다. 나와 만나는 시간에 손을 내밀어준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
벼락치기를 하다 보면 '뭔가 되겠지'라는 맘으로 하루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