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xtraordinary Attorney Woo)’가 엄청난 인기 속에 종영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주인공 우영우가 로펌 신입변호사로서 사건을 하나하나 헤쳐 나가는 모습을 통해, 다소 동떨어진 시선으로 사람과 사건을 바라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 등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우영우 드라마는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며 화제가 되었는데, 그만큼 변호사가 사건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dilemma) 상황들을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잘 드러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우영우 드라마의 신드롬 급 인기를 마주하다 보니, 수십 년 전 미국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영향을 끼쳤던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여섯 살 어린 소녀의 관점으로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소 천진난만하게 드러냈는데, 인종·성별·능력·종교·국적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법정 이야기를 다소 동떨어진 시선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앵무새 죽이기'와 드라마 우영우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수십 년 전 미국 사회에서 큰 영향을 미쳤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영우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향도 예측할 수 있고, 로펌변호사로서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원서로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2.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와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시대 배경
고교 시절 어느 한 선생님께서는 “법대 가고 싶은 사람, 소설 앵무새 죽이기 꼭 읽어라!”라고 하셨는데, 그로부터 6년 차 로펌변호사가 될 때까지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 로펌변호사로 일하면서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어책을 읽으려하는데, 그때부터 고교 시절 위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국 남부 사회를 배경으로,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 흑인 남성을 변호하는 백인 변호사와 관련된 내용이다. 필자는 로펌에서 형사전문변호사로 일하는 만큼, 미국 형사법정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반드시 영어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정말 어렵다!’는 것이었다. 1960년에 출간된 소설이라 오래된 영어단어나 표현방법이 생소하기도 했고, 주인공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그 속에 내재된 핵심적인 이야기가 구분되지 않아 소설이 난해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영어소설을 세 번이나 읽었지만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번역서를 구하여 함께 읽고서야 소설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소설 제목이 왜 ‘앵무새 죽이기’ 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였는데, 소설 중간에 아무 맥락도 없이 ‘앵무새(mockingbird)’라는 상징적인 단어가 나오고, ‘앵무새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문구도 몇 번에 걸쳐 보았지만, 도대체 왜 아무런 죄가 없는 앵무새가 죽음에 이른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1930년대 인종차별적 시대상황과 소설 주인공들에게 비극적 결말이 나오게 된 과정을 곰곰이 되짚어 보니, 잘못된 고정관념 및혐오와 편견의 부조리함으로 인해 아무런 죄가 없는 앵무새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다. 즉, 소설에서 ‘앵무새’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개인적·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죄인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를 상징하는 존재로 느껴졌다. 실제로 미국은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인종분리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학교·교통수단 등 모든 공공시설을 백인용과 흑인용으로 분리하여 운영하였다(separate but equal). 그러다가 미국 연방대법원은 1953년에서야 그 유명한 Brown 판결을 통해 학교에서 인종을 분리하여 교육을 시행하는 것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 평등 조항을 위반하였다고 판결하였다(Brown v. Board of Education, 1954). 위 Brown 판결에서는 인종을 분리하여 학교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어린 학생들에게 미칠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강조하며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를 통해 수십 년간 지속되었던 공공기관에서의 인종분리 정책이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에서 수십 년 간 사람들 머릿속에 팽배했던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1960년경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가 출간되었고, 인종차별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였다. 소설에서는 인종차별적 시대상황으로 인해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죽거나 다치는 등 비극적 결말에 이르는데, 어린 소녀의 다소 동떨어진 시선을 통해 인종차별적 시대 배경과 사회의 부조리함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시민들에게 수십 년간 만연한 인종갈등과 고정관념에 대해 함께 고민하게 만들었고, 사회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에 더욱 공감하는 분위기를 형성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받는다.
3.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부조리함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야 하는 법정에서도 인종차별적 고정관점과 부조리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드러냈고, 오늘날에는미국 문학의 정수이자 인종갈등 해결의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드라마 우영우 또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로펌 신입변호사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딜레마(dilemma) 상황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하여 나름대로 잘 드러냈다고 생각된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와 드라마 우영우는 전혀 다른 시대와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일반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에는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도 사회구조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다양한 이념과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 전반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치·성별·세대·종교 등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정서가 팽배해졌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드라마 우영우나 소설 앵무새 죽이기와 같은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정관념과 부조리함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자유나 평등, 개인과 공동체 등 근본가치들을 조화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브런치 작가 활동을 통해 로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느낀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도 위와 유사한 맥락이라 할 수 있는데, 앞으로도 독자들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사회를 보다 풍요롭고 성숙하게 만드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