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4일 차 새벽 런던 세인트판크라스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넘어왔다. 파리북역에서 택시를 타고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있는 호텔(Citadines Les Halles Paris)로 이동했다. 택시에 탑승하여 아무렇지 않게 “Hello!”라고 인사했더니, 2~3초 후 기사님이 시크하게 “Merci!”라고 대답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파리지앵의 ‘불친절함’을 느껴보았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파리 시내를 걸으며 파리지앵의 감성을 느껴보았다. 센 강을 따라 걷다 보니 루브르 박물관이 보였다. 첫날부터 비가 내리는 날씨에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부터 둘러보기로 결정했고, 1시간이나 비 맞으며 대기한 끝에 루브르 피라미드를 통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이 무척 크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그래봤자 실내 공간인데 성인 남자 혼자 얼마든지 둘러볼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루브르는 규모도 엄청난 데다가 공간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핵심적인 작품들 위주로 둘러보는 데도 미로를 헤매는 것처럼 어지럽게 느껴졌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암굴의 성모,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나폴레옹 3세 아파트 등 주요 작품들을 모두 감상했다. 루브르의 압도적인 규모와 어마어마한 소장품들을 둘러보다 보니, 파리지앵의 ‘시크함’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몽테뉴 거리에서 샤넬, 디올 등 명품매장을 둘러보고, 파리의 최대 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보았다. 그 유명한 샹젤리제 노래를 흥얼거리며 파리지앵 감성에 취해보았고, 가로수 길을 따라 심어진 오래된 나무들을 보며, 프랑스혁명, 나폴레옹과 같은 프랑스 역사를 떠올려 보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파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개선문(Arc de Triomphe)’이 나타났는데, 실제로 보니 고전주의 건축의 걸작이라고 할 만큼 웅장하고 화려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뻗어있는데, 개선문 주변으로 차량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운행한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졌다.
파리 2일 차
파일 2일 차 오전에 베르사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에 다녀올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전날 새벽 런던에서 파리로 넘어와서 하루 종일 걷다 보니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고, 베르사유 궁전에 갈 시간에 파리 시내를 더 둘러보는 것이 낫다는 조언도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파리 여행을 준비하며 프랑스 역사에 대한 많은 공부를 했고, 특히 넷플릭스 드라마 ‘베르사유(Versailles)’를 통해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통해 귀족들을 길들이고 절대군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토록화려하다는 베르사유 궁전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결국 2일 차 오전에 베르사유 궁전에 다녀왔다.
입장권을 미리 예약하지 않아 베르사유 정원(jardin de versailles)부터 둘러보았다. 거대한 운하를 따라 걸어 아폴로 분수를 감상했고, 정원의 가장 안쪽에 있는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정원인 쁘띠 트리아농 입구까지 걸어갔다. 베르사유 정원에 다시 올 수 있다면, 카트를 타고 왕비의 촌락까지 둘러보고 싶다는 아쉬움을 남긴 채 시간에 맞춰 베르사유 궁전 입구로 돌아왔다.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가 예배당, 헤라클레스의 방, 비너스의 방, 머큐리의 방을 차례로 감상했고, 곧이어 절대왕정의 상징이자 화려함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거울의 방을 둘러보았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수백 번 넘게 보았던 장소였지만, 처음 거울의 방이 눈앞에 나타낼 때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거울의 방을 통해 왕비의 아파트로 이동하여 왕비의 침실도 둘러보았다.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본 후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으로 이동했다. 원래 오르세 미술관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때 건설한 기차역이었는데, 현재는 19세기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리모델링되었다고 한다. 오르세 미술관 내부에는 기차역 때부터 사용된 고풍스러운 시계가 걸려있는데, 19~20세기 근대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현재까지 보존·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오르세 미술관은 고흐, 모네, 마네 등 인상주의 및 후기 인상주의 작품들로 유명한데, 우리에게 친숙한 미술작품들이 많아 루브르보다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도 있다. 개인적으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Luncheon on the Grass)도 인상 깊었고, 모네의 수련(Water Lily Pond, Green Harmony), 파라솔을 든 여인(Woman with a Parasol)도 좋았는데, 무엇보다 반 고흐가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표현한 그림들이 가장 좋았다.
해질 무렵 몽마르트르 언덕(colline de montmartre)에 올라 파리의 지붕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여러 가지 퍼포먼스를 감상했는데, 그 순간이 바로 파리의 자유와 낭만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 Coeur) 내부를 둘러본 후, 오페라 가르니에, 콩코드 광장을 거쳐 센 강까지 계속 걸으며, 금요일 저녁을 마무리하는 파리지앵의 일상을 구경하고, 센 강에서는 반짝이는 에펠탑도 보았다.
파리 3일 차(마지막 날)
파리여행 마지막 날에는 센 강을 따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부터 에펠탑까지의 가을 길을 걸었다. 수리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 Dame)을 보고,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에서 빛의 화가 모네의 그림도 감상했다.
1시간을 넘는 기다림 끝에 안젤리나 카페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코코 샤넬(Coco Chanel)이 좋아했다던 몽블랑과 핫초코를 맛보았다. 샤이요 궁까지 걸어가면서 에펠탑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 마시고, 파리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에펠탑을 눈에 담았다.
마지막 날 오후에는 파리 시내에서 샤를 드골 공항(Aéroport Charles de Gaulle)으로 이동했다. 에어프랑스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고, 일주일간의 런던 및 파리 낭만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면서 런던과 파리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가져갔는데, 깐깐한 회사동료들로부터 센스 있는 선물이라고 칭찬받았다. 이번 런던과 파리 여행은 혼자 공부하고 끝없이 걷느라 체력적·정신적 부담이 상당했지만, 그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실히 넓어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