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타이베이 시내를 관광했다. 먼저 중정기념당을 방문했다. '중정'은 대만의 초대 총통 장제스의 본명이라 한다.1975년 장제스가 사망하자 아내 메이링(송미령)은 사비와 기부금을 모아 중정기념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인도의 타지마할, 미국의 링컨기념관 등 세계적인 건축물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황제를 상징하는 압도적인 규모와 웅장한 건축양식이 돋보였다.
대만에서는풍수지리에 따라 무덤건물을 동서방향으로 짓는다고 한다. 또한재력가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무덤 위로는기와지붕을 장식하고, 그중에서도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은 경우에만파란색 기와지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중정기념당은 파란색 기와지붕이2단구조로되어 있고,축대나 계단도 궁궐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메이링(송미령)으로서는 남편 장제스가 중국 황제처럼크고 위대한 사람으로오래도록 기억되기를 원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정기념당 내부에서 매시 정각마다 진행된다는 근위병 교대식을 감상했다.군생활 때 군악대원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어서인지제식행사를 보는 재미가 남달랐다.전 세계 관람객 앞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의식행사를 이끌어간다는근위병들의 자부심이느껴졌다.다른 한편으로 근위병들의 무덤덤한 표정에서 누군가는 근무를 끝내고 이제 쉴 수 있다는 해방감과 다른 누군가는 이제 근무를 시작해야 한다는 고통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중정기념당 근위병 교대식
중정기념당 앞으로는 25만㎡ 면적의 자유광장이자리 잡고 있었다. 타이베이 시내 한복판에 한 사람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당과 광장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대만에서도 장제스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다는데, 어찌 됐든 오늘날 대만을 상징하고 그 정체성을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자유광장양옆에는 고전적 건축물인 국립극장과 콘서트홀이 세워져 있는데,동양문화의 정통을 나름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중정기념당 건물 1층에 위치한 전시실도 둘러보았다. 장제스의 집무실, 유품과 기념품, 의전용 차량 등도 인상적이었다.
점심에는 미쉐린 가이드 선정 맛집 용캉우육면을 맛보았다.점심시간 이전부터 허름한 건물 앞으로 긴 대기줄이있었다.외관만으로도 오랜 전통과 명성이 느껴졌다. 용캉우육면에는매운맛과 담백한 맛이 있었는데,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담백한 맛이 더 맞는 느낌이었다. 담백한 국물은 마치 우리나라의 갈비탕과 비슷한 맛이었다. 우육탕에 들어있는 소고기도 크고 부드러워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었다. 현지사람들은 조그마한 갈비밥도 많이 시켜 먹었는데, 다음에 방문하면 꼭 먹어봐야겠다.
용양우육면에서 대만 요리의 진수를 맛본 후 용캉제 거리를 둘러보았다. 용캉제에는 소문난 맛집이 많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길게 줄을 선 곳은 바로 티엔진 총좌빙이었다.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이렇게까지 줄을 서는지 궁금했다. 순서를 기다리며총좌빙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구경하는것도재밌었다. 티엔진 총좌빙을 먹어보니 평범하면서도 중독성이 있는 맛이었다. 부담 없는 가격도 인기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되었다.
티엔진 총좌빙의 맞은편에는 망고빙수의 대표주자인 스무시 하우스가 있었다. 망고빙수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망고빙수의 원조도 맛보았다. 용캉제의 맛집들과 예쁜 카페, 조그마한 공원도 둘러보고, 대로변으로 이동하여 딘타이펑 본점도 구경했다.
다음으로화산1914 창의문화원구로 이동했다. 과거 술을 만드는 양조장 건물이었는데, 복합문화 예술단지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춘수당 버블티를 마시며 오래된 건물에 자리 잡은 음식점과 카페, 소품점과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어떤 분위기인지 상상조차 어려웠는데, 실제로 가보니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근대건축물과 울창한 나무, 도심의 젊고 활기찬 분위기가 어우러져 독보적인 대만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종일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곳곳에서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대만여행지 중 1순위로 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국부기념관으로 이동했다. 국부기념관 내부는 휴관 중이어서 보지 못했다.국부기념관 앞 광장은 타이베이 101 건물이 가장 잘 보이는 포토존으로 유명한데,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서아쉬움이 컸다.
곧바로 송산문창원구에도 들렀다. 송산문창원구는 1930년대 지어진 담배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열대우림처럼 우거진 자연 속에서 낡은 담배공장 건물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건물내부는 디자인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는데, 각 공간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번잡한 도심 속에서 오래된 건물과 무성한 나무들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어 주었다.
저녁에는 딘타이펑을 먹으러 타이베이 101로 갔다. 대기시간이 무려 2시간이었는데, 그 사이에 타이베이 101의 89층 전망대에 올라가 보았다.날씨가 흐려 야경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때 세계 최고층 건물이자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에서 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타이베이 101의 전망대 중앙에는 내진설계 및흔들림 방지를 위해 660톤 무게의 거대한 추(댐퍼)가 설치되어 있었다. 대만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하여 초고층 빌딩건설에 제약이 많았는데, 타이베이 101은여러 차례 큰 지진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딘타이펑으로 들어갔다.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배가 고파 샤오롱바오랑 샤오마이 등 이것저것 다 시켜 보았다. 매콤한 오이김치 및 산라탕과 함께 먹으니 딤섬과 샤오롱바오가 끝없이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중에서도 송로버섯 샤오롱바오가 압도적으로 맛있었다. 딤섬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먹어본 트러플 요리 중에서도 가장 맛있었다.트러플이 세계 3대 진미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맛이었다
셋째 날 밤에는 딤섬을 소화시킬 겸 184m 샹샨에 올라 타이베이 야경을 감상했다. 가벼운 하이킹이라 생각했는데, 하루종일 걸어 다닌 터라 끝없는 계단을 무척 힘들게 올라갔다. 그래도 문명의 힘을 빌리지 않은 그대로의 야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고, 오랜만에 등산(?)을 해서 매우 건강해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