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퓌센, 뮌헨, 밤베르크
아침에 일어나 호텔 체크아웃을 마치고 베를린 중앙역에서 뉘른베르크로 향하는 ICE를 탑승했다. 고속열차임에도 무려 4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뉘른베르크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고풍스러운 쾨니히문 성문탑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호텔은 중앙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레오나르도 로얄 호텔(Leonardo Royal Hotel Nürnberg)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뉘른베르크 관광을 시작했다.
먼저 쾨니히문(Königstor)으로 들어가 성문탑을 살펴보았다. 뉘른베르크는 신성로마제국에서 ‘황제의 도시’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만큼 견고하고 육중한 성곽이 시가지를 감싸고 있었다. 주 출입문인 쾨니히문 옆에는 거대한 성문탑이 여전히 우뚝 남아 있었다.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거리를 걷다가 렙쿠헨 슈미트(Lebkuchen-Schmidt) 가게에 들어갔다. 독일식 생강빵(진저브레드)인 렙쿠헨(Lebkuchen)은 특히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려 ‘크리스마스 비스킷’이라 불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도시가 뉘른베르크라고 한다. 가게에 앞에서 렙쿠헨 인증샷도 한 장 남겼다.
이어서 성 로렌츠 교회(St. Lorenzkirche)를 둘러보았다. 외부와 내부 모두 전형적인 고딕 양식이며, 80m 높이의 쌍둥이 첨탑 사이의 거대한 장미창이 웅장한 건축미를 완성하고 있었다. 성 로렌츠 교회 정면으로는 카롤리넨 거리(Karolinenstraße)가 곧게 뻗어 있었고, 그 거리에는 의류 매장들이 늘어서 번화한 쇼핑가를 이루고 있었다.
박물관 다리를 건너 중앙마르크트 광장(Hauptmarkt)으로 이동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의 주 무대인 중심 광장이다. 광장 앞에는 성모 교회가 서 있고, 전통 상점과 레스토랑들이 주변을 채우고 있어 풍경 자체가 동화 같았다. 광장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뉘른베르크 전체의 중세 분위기가 합쳐져 최고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 제발트 교회(St. Sebalduskirche) 옆에 있는 브라트부어스트호이슬레(Bratwursthäusle)에도 들렀다. 뉘른베르크에서 소시지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1313년 성 제발트 교회 아래에서 소시지를 구워 팔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부어스트와 감자 수프, 맥주를 주문했는데, 낭만적인 분위기만큼이나 맛도 정말 훌륭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비가 조금 그치자 카이저성(Kaiserburg)으로 올랐다. 황제의 거성이자 도시 방어 요새로 지어진 곳이라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성에 도착하자 탁 트인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고, 마치 동화 속 황제의 궁궐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성과 주변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왜 황제가 이곳을 선택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자연스레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뉘른베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 중 하나로 꼽히는 바이스게르버 골목(Weibgerbergasse)을 걸었다. 마치 어린 시절 만화영화 속 장면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기자기한 집들이 굽은 길을 따라 옹기종기 늘어서 있었다. 발걸음마다 오래된 이야기 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야콥 광장(Jakobsplatz)과 역사와 인간 존엄성을 되새기는 인권의 길(Straße der Menschenrechte)도 함께 둘러보았다. 각각의 장소가 지닌 독특한 분위기와 의미가 어우러져, 뉘른베르크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알트슈타트호프(Hausbrauerei Altstadthof)를 찾았다. 맥주 애호가라면 반드시 들러야 한다는 곳이다. 이곳은 한때 중세 뉘른베르크에서 유행했다가 명맥이 끊어진 로트비어(레드비어)를 현대적으로 되살려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맥주 샘플러를 주문하니 흑맥주–로트비어(레드비어)–필스너가 순서대로 놓였는데, 마치 독일 국기의 세 가지 색을 표현한 듯해 인상적이었다. 맥주와 함께 슈니첼과 프렌치프라이로 저녁을 해결했다.
5일 차에는 뉘른베르크에서 퓌센과 뮌헨을 모두 둘러보는 바쁜 일정이 이어졌다. 먼저 퓌센으로 향했다.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ICE 고속열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 만에 뮌헨에 도착했고, 이후 완행열차로 환승해 Buchloe역에서 다시 환승하여 약 2시간 만에 퓌센에 도착했다. 퓌센으로 다가갈수록 독일의 평온한 시골 풍경이 펼쳐졌고, 도착 무렵에는 목가적인 분위기의 마을이 보였다. 푸른 초원 위에 말과 소가 여유롭게 방목되고 있었다. 퓌센역(Füssen)에 도착한 뒤 버스를 타고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ss Neuschwanstein)으로 이동했다.
걸어 올라가는 길에 호엔슈반가우성(Schloss Hohenschwangau)이 보였다. 뮌헨 일정 때문에 가까이 보지는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황금빛 외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마차길을 따라 산길을 오르며 낙엽이 물든 가을길을 걷는 느낌이 참 좋았다. 성은 멀리서는 가까워 보였으나, 올라갈수록 그 거대한 규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루트비히 2세가 속세를 떠나 은신처를 만들고자 1868년부터 짓기 시작한 산골짜기 외딴 고성이다. 그는 근대의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에서 벗어나려는 마음과 중세에 대한 동경을 담아 이 성을 설계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산골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백조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삼아 성을 만들었고, 내부 장치의 아이디어도 직접 냈다. 그러나 성이 완공되기 전 그는 의문사했다고 한다.
성 내부에도 입장했는데, 왕의 집무실과 침실, 연회장 등을 보기 위해 내부에서도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내부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마치 왕이 거대한 레고 작품을 만들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후 마리아 다리(Marienbrücke)에도 올라 성의 장관을 감상했다.
다시 완행열차를 타고 뮌헨으로 이동했다. 뮌헨 중앙역에서 내려 카를 광장(Karlsplatz)으로 걸었다. 카를 광장의 옛 성벽 출입문 중 하나인 카를문을 통해 뮌헨 중심부로 진입했다. 루트비히 2세가 잠들어 있는 성 미하엘 교회를 지나고, 뮌헨에서 가장 높은 99m의 성모 교회도 구경했다.
마침내 마리아 광장(Marienplatz)에 도착했다. 웬만한 성당보다 화려할 정도로 아름다운 시청사 앞에는 마리아 기념비가 서 있었다. 첨탑에 부착된 시계에서는 특수 장치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어서 바이에른 왕가의 궁전인 레지덴츠 궁전(Residenz)과 오데온 광장(Odeonsplatz)도 둘러보았다.
저녁에는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에 들렀다. 전 세계 관광객으로 늘 붐비는 시끌벅적한 대형 비어홀로, 명성으로는 단연 세계 최고다. 호프집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 곳이기도 하다. 1589년 바이에른 왕실의 양조장으로 시작했으며, 누구나 잔을 들고 와 테이크아웃으로 맥주를 사 마실 수 있어 500년 전부터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1L짜리 맥주잔에 가득 담긴 맥주와 학세, 부어스트를 시켜 먹었다. 직원이 바구니째 들고 다니며 즉석에서 판매하는 커다란 브레첼도 맛보았다. 하우스 밴드 바로 앞에 앉아 연주를 실컷 들을 수 있어 더욱 흥겨웠다.
아름다운 퓌센과 즐거웠던 뮌헨에서의 시간은 이번 독일 여행의 절정이었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마음에 담은 채, 우리는 다시 열차에 올라 뉘른베르크로 돌아왔다.
6일 차는 뉘른베르크의 다크 투어를 진행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나치 전당대회장이었다. 뉘른베르크는 히틀러가 ‘제3제국’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도시로, 실제로 시내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고, 초대형 전당대회장을 건설해 나치의 성지로 만들고자 했다. 설계 규모만 보더라도 당시의 광기와 집착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방문 당시에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야외 공간은 관람할 수 없었고, 실내 기획 전시만 볼 수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조금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내부 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뉘른베르크 재판 기념관도 방문했다. 뉘른베르크 법원 내에서 실제로 전범 재판이 진행되었던 600호실과 기념관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법조인을 꿈꾸던 시절, 한때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해 깊이 공부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서 있으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기차를 타고 밤베르크(Bamberg)로 이동했다. 이 도시는 ‘독일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물의 도시다. 먼저, 막시밀리안 광장(Maximiliansplatz)과 그뤼너 마르크트 광장(Grüner Markt)을 둘러보았다. 광장의 분위기는 뉘른베르크 등 다른 중세 도시와 비슷해 익숙하면서도 옛 정취가 있었다.
밤베르크 구시가지의 상징인 구 시청사(Altes Rathaus)도 보았다. 두 개의 다리 위, 강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이색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세력 다툼으로 인해 강 동쪽도 서쪽도 아닌 강 한가운데 시청사를 짓기로 타협한 결과라고 한다. 다리에서 작은 베네치아(Kleines Venedig)를 바라보니 ‘물의 도시’라는 말이 절로 납득됐다.
언덕을 올라 대성당(Bamberger Dom)과 궁전도 둘러보았다. 특히 궁전에서 내려다본 시가지의 주황색 지붕들은 마치 피렌체를 연상시켰다.
이어서 슐렌케를라(Schlenkerla)를 찾았다. 이곳은 오리지널 라우흐비어로 공인된 곳으로, 1405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전통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해 주었다. 건물 자체가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느낌이었고, 주변에 사람들도 많아 활기가 넘쳤다. 오리지널 라우흐비어(smoke beer)는 불향이 감도는 독특한 풍미가 있었다. 그동안 마셔본 어떤 맥주와도 달라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돼지 어깨 부위인 학세와 소시지, 그린 파스타를 곁들여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기차를 타고 다시 뉘른베르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