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쾰른, 프랑크푸르트
이번 독일 여행은 마일리지 항공권을 이용하고 대중교통 위주로 이동하여 비교적 가성비가 좋았다. 독일 여행의 매력은 걸으면 걸을수록 더 깊어졌다. 날씨가 쌀쌀하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유럽 특유의 낭만 덕분인지, 날씨와 상관없이 한 걸음 한 걸음이 즐거웠다. 7~9일 차 일정은 하이델베르크, 쾰른, 프랑크푸르트를 마음껏 걸으며 가을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아침에 뉘른베르크 호텔을 체크아웃한 뒤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 약 2시간 이동했다. 숙소는 중앙역 바로 옆의 인터시티 호텔(Intercity Hotel Frankfurt Hauptbahnhof)이었다. 중앙역에 큰 호텔 간판이 보였고, 별도의 출입구가 있어 매우 편리했다. 호텔에 짐을 맡긴 뒤 곧바로 기차를 타고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이동했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대학 광장(Universitätsplatz)이었다. 광장 한편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1386년에 설립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도시 곳곳에 캠퍼스가 흩어져 있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 전반에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역시 대학 도시의 힘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유명한 ‘학생 감옥’을 보고 싶었지만 행사로 인해 입장이 불가능해 아쉬웠다.
중세풍의 고풍스러운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성령교회와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이 나타났다. 다른 도시에서도 교회와 광장을 많이 봤지만, 이곳은 광장 너머로 언덕 위에 자리한 하이델베르크성(Schloss Heidelberg)이 배경처럼 서 있어 더욱 특별하고 그림 같았다. 하이델베르크성을 포함한 도시 전체가 은은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는데, 이 지역의 토양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세풍 거리를 따라 카를문(Karlstor)까지 걸은 뒤, 등반열차를 타고 성으로 올라갔다. 독일에서는 웬만한 언덕도 보통 걸어서 올라가야 했는데, 등반열차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무척 편리했다. 거의 45도는 되어 보이는 비탈길을 열차가 아무렇지 않게 올라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금세 하이델베르크성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오래전부터 독일인들에게도 특별한 명소였다는 사실이 실감됐다.
가까이서 본 하이델베르크성은 일부가 폐허처럼 남아 있어 오히려 더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구시가지와 네카어강, 그리고 서쪽으로 지는 태양이 만들어낸 석양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옛 권력자들이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느꼈을 우월감이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하기도 했다. 독일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하이델베르크가 항상 꼽히는 이유를 직접 느낀 순간이었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온 뒤 네카어강을 가로지르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Theodor-Brücke)를 둘러보았다. 강 건너편에는 고급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하이델베르크의 구시가지와 성이 한눈에 보이는 최고의 입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패터(Vetter's Brauhaus)에서 수제맥주와 학세를 먹었다. 독일에서 거의 매일 학세를 먹었지만, 식당마다 다른 디테일이 있어 재미있었다. 같은 식탁에 앉은 미국인 출장객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아내가 무척 멋져 보였다.
아침부터 ICE 고속열차를 타고 쾰른으로 이동했다. 독일의 고속열차는 우리나라처럼 전 구간을 고속 전용선으로 300km/h로 달리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요금은 한국보다 더 비쌌다. 그래도 쾰른으로 가는 구간만큼은 꽤 긴 시간 동안 300km/h로 달려 속도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쾰른에서 조금만 더 서쪽으로 가면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나오는데, 언젠가 베네룩스 여행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쾰른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눈앞에 쾰른 대성당(Kölner Dom)이 압도적인 규모로 우뚝 서 있었다. 독일에서 여러 성당을 봤지만, 이곳은 단연 가장 거대하고 화려했다. 1248년부터 1880년까지 약 600년에 걸쳐 지어진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약 157m 높이의 첨탑과 정교한 장식이 웅장함을 더했다. 내부에는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역사적인 예술품들이 가득했고, 중앙 제단 깊숙한 곳에는 동방박사 세 사람의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었다.
점심은 성당 맞은편의 가펠 암 돔(Gaffel am Dom)에서 그 유명한 쾰슈 맥주와 소시지, 프렌치프라이를 먹었다. 쾰슈 맥주는 일반적인 맥주잔보다 훨씬 작은 잔에 나오고, 잔이 비면 종업원이 알아서 채워주는 방식이었다. 잔이 작아서인지 점심시간 낮술임에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소시지는 다른 가게보다 크고 두툼했는데, 오히려 작은 맥주잔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대성당을 바라보며 마시는 쾰슈 맥주는 정말 압도적으로 맛있었다.
식사 후 호엔촐레른 다리(Hohenzollernbrücke)를 건너며 라인강을 산책했다. 1911년에 완성된 보행 철교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난간에는 오랜 세월 걸린 수많은 자물쇠가 있어 남산의 사랑의 자물쇠를 떠올리게 했다. 보행로 옆으로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도 낭만적이었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쾰른 대성당과 다리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후 루트비히 미술관(Museum Ludwig)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했다. 이곳의 피카소(Pablo Picasso) 컬렉션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미술에 큰 조예는 없지만, 유럽 여행 중 경험했던 여러 박물관·미술관 방문을 떠올리며 작품을 천천히 음미해 보았다. 피카소의 작품에서는 2차원 그림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3차원을 넘어서는 듯한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앤디 워홀(Andy Warhol), 몬드리안(Piet Mondrian),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작품들도 인상적이었다.
이후 피슈마르크트 광장(Fischmarkt), 구시청사(Historisches Rathaus), 향수 박물관(Farina Duftmuseum)도 들렀는데, 예상보다 아담하고 소박한 느낌이었다.
저녁은 점심 먹었던 가펠 암 돔과 쌍벽을 이루는 프뤼 암 돔(Früh am Dom)에서 또 다른 쾰슈 맥주를 맛보았다. 역시나 작은 잔에 리필을 계속해주는 방식이었다. 따뜻한 국물 요리가 먹고 싶어 토마토수프를 주문하려다가, 동유럽 전통 굴라쉬 수프(Hearty Goulash Soup)를 맛보았고, 감자와 함께 나오는 계란프라이도 곁들였다. 곧바로 한식당으로 2차를 갈 예정이라 독일 음식은 간단히 먹었다.
이후 중앙역 뒤편의 한식당 고기마차(Gogi Matcha)에도 방문했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을 법한 포차 분위기의 인테리어였고, 현지 손님들로 북적여 인기가 실감됐다. 한국인 종업원들이 안내해 주었고, 참치김치찌개와 간장치킨을 먹었는데 두 메뉴 모두 훌륭했다. 일주일 내내 학세와 소시지만 먹다가 맛보는 참치김치찌개는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인의 맛이었다. 독일에서 맛보는 한국식 간장치킨도 익숙하고 반가운 맛이었다.
1차와 2차에 걸친 성대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ICE 열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독일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에, 마지막까지 쾰른 대성당의 야경을 눈에 담았다.
9일 차 - 프랑크푸르트(Frankfurt)
9일 차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호텔 체크아웃 후, 귀국 비행기가 17:35 출발이라 오전에 잠깐 시내를 둘러보았다. 중앙역에서 유로타워(Eurotower)까지 걸어가 프랑크푸르트의 상징인 유로 기념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어 괴테하우스(Goethe Haus & Museum)를 방문했다. 괴테가 실제 태어난 4층짜리 건물로, 당시의 생활 모습을 충실히 재현해 놓았다. 안내서에는 ‘중산층 주택’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내 눈에는 꽤 넉넉한 금수저 집처럼 보였다.
프랑크푸르트의 또 다른 상징인 뢰머 광장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중앙역으로 돌아와야 했다.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해 루프트한자 라운지(Lufthansa Senator Lounge)에서 간단히 식사한 뒤, 8박 9일간의 독일 가을 산책을 마무리했다.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가볍게 계획했던 여행이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풍성하고 마음이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