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내광광, 포츠담 상수시 궁전
오래전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이용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즈니스석을 예약해 두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 여행을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회사에 눈치도 보였고, 결혼하느라 지출도 컸으며,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전 취소 시 위약금이 발생할 것을 생각하니 결국 떠나기로 했다. 가까스로 일주일 전에 베를린, 뉘른베르크, 프랑크푸르트를 거점으로 하는 호텔 예약도 완료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세계 최대 항공기이자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A380을 이용했다. 비행기 한 대 치고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아시아나 라운지에서 잠깐 시간을 보낸 뒤 비행기 2층 비즈니스석에 올라 아내와 함께 샴페인을 한 잔 나누었다. 기내 점심은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 저녁은 고추장 광어 김치찜으로 제공되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하지만 예전보다 기내 서비스가 다소 소홀해진 느낌이었다. 대한항공과의 통합 및 합병 준비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약 14시간의 비행 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기차표를 끊어 베를린으로 이동했다. 시차 때문에 피곤한 시각에 베를린으로 이동하여 시간을 아끼려는 계획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에서 베를린 중앙역까지 금요일 저녁 기준 고속열차 요금은 성인 2명 기준 408유로, 한화로 약 70만 원이었다. 환전해 간 돈의 상당 부분이 첫날 기차값으로 소모되었다. 금요일 저녁 직전 예약이면 이 정도 요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원래 독일에서 여유로운 기차여행을 계획했는데, 기차값을 보니 기차여행도 쉽게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된 기차좌석은 가족 칸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옆에 앉은 중년 남성 두 명이 4시간 내내 단 한순간의 정적 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독일인들의 스몰토크 능력에 감탄했다. 약 4시간의 ICE 고속열차 이동 후 베를린 중앙역(Berlin Hauptbahnhof)에 도착했다. 우버 택시로 Eurostars Berlin 호텔에 체크인했다. 방은 넓고 깨끗했으며 사우나와 수영장도 갖추고 있어 여행의 시작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알고 보니 호텔은 Berlin Friedrichstraße 역 근처로 베를린 중앙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였다.
베를린은 역사적 흔적과 현대적 삶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였다. 대부분의 지역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어, 처음에는 도시의 이름에 비해 볼거리가 많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을 걸으며 가을의 정취와 현지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었고, 일정은 풍성하고 다채로웠다. 대중교통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어 기차, 버스, 도보를 이용한 효율적인 동선으로 주요 명소들을 알차게 둘러볼 수 있었다.
1. 연방의회 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문
아침 일찍 슈프레강을 따라 걸으며 연방의회 의사당(Bundestag)으로 향했다. 유리 돔 위에서는 베를린 시내 전경을 감상하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건물 위의 투명한 돔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를 상징한다고 한다. 나는 돔에 오르지는 않고 곧바로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er Tor)으로 이동했다. 이 개선문은 베를린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독일 역사 속에서 국력 과시의 상징에서 분단의 경계, 그리고 통일의 상징으로 그 의미가 변해왔다고 한다. 인근의 Bäcker Wiedemann 카페에 들러 프레첼과 크로와상, 커피를 즐기며 잠시 여유를 누렸다.
2. 홀로코스트 추모비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찾았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학살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다. 2,711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불규칙한 높이로 배치되어 있어, 마치 끝없이 이어진 거대한 묘지를 떠올리게 했다.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어둡고 침묵이 감도는 추모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지하 박물관에서는 희생자들의 증언과 일기, 가족사진 등을 통해 그들의 삶과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과거의 광기 어린 역사를 마주하며, 독일 사회가 그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기억하려는 태도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3. 잔다르멘마르크트
잔다르멘마르크트(Gendarmenmarkt)는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었다. 이곳은 과거 프랑스 위그노 교도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곳이라고 한다. 프랑스 돔과 독일 돔, 그리고 중앙의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가 조화를 이루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언젠가 이곳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베를린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돔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광장을 떠나기 전까지 그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았다.
4. 체크포인트 찰리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는 분단 시절, 미국군이 관리하던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사이의 검문소였다. 현재는 관광용으로 복원되어 냉전 시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명소로 남아 있다. 거리 한복판에는 당시 미군 병사의 사진과 경고문이 세워져 있고, 작은 초소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냉전기 미군이 동독 주민들에게 주었던 위압적인 존재감을 떠올리게 해 인상 깊었다. 주변에는 맥도날드를 비롯한 각종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마치 독일 한가운데에 작은 미국이 자리한 듯한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5. 무스타파 케밥
가을의 쌀쌀한 공기 속에서 낙엽이 흩날리는 거리를 따라 걸으며 무스타파 케밥(Mustafa’s Gemüse Kebap)으로 향했다. 베를린 최고의 케밥 가게답게, 가게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독일은 1960년대 튀르키예 출신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케밥 문화가 자리 잡았는데, 그중에서도 무스타파 케밥은 단연 최고 맛집으로 손꼽힌다. 원래 노점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층 매장으로 정착해 깔끔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독일의 케밥은 튀르키예 현지나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맛보는 케밥보다 훨씬 풍미가 깊고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평소 한국에서도 케밥을 자주 즐기지 않는데, 베를린에서 그 명성 높은 케밥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약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드디어 주문할 수 있었고, 종업원들은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케밥을 정성껏 만들어냈다. 불 옆에서 천천히 회전하며 구워진 고기, 푸짐한 양, 신선한 채소, 그리고 저렴한 가격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한 끼였다.
6.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버스를 타고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를 찾았다. 이 교회는 독일을 통일하고 초대 황제가 된 카이저 빌헬름 1세를 기념해 세워진 화려한 건축물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받아 첨탑 일부만 남게 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해 파손된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고, 이는 평화를 향한 독일의 의지를 상징하는 듯했다. 옆에 새로 지어진 교회는 외관이 계란판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내부는 짙은 파란빛 조명으로 현대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7. 샤를로텐부르크 궁전
버스를 타고 샤를로텐부르크 궁전(Schloss Charlottenburg) 으로 향했다. 이 궁전은 프리드리히 1세가 왕비를 위해 1713년에 지은 궁전으로, 이름 역시 왕비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궁전은 드넓은 부지 위에 웅장하게 서 있었고, 그 앞에는 광활한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특히 정원에는 끝없이 이어진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땅을 황금빛으로 덮었다. 쌀쌀한 가을 공기 속에서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니, 가을의 정취가 온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8. 바벨광장과 운터 덴 린덴
바벨광장(Bebelplatz) 은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1933년 나치 추종자들이 수만 권의 도서를 불태운 사건을 기념하는 ‘텅 빈 서재’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공사 중이라 직접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주변에는 로마 판테온을 닮은 성 헤트비히 대성당을 비롯해 화려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역사적 깊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은 과거 프로이센 왕실과 독일제국 황실의 중심 거리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이어진다. 프리드리히 대왕 기마상과 길을 따라 늘어선 웅장한 건축물들이 인상적이었다. 거리 한편에 위치한 노이에 비헤(Neue Wache) 내부에는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를 모델로 한 조형물이 있어,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의미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9. 베를린 궁전과 베를린 대성당
베를린 궁전(Berliner Schloss)은 과거 프로이센 왕실과 독일 황실의 중심 궁전이었다. 구 동독 시절에는 철거되었으나, 독일 통일 이후 복원되어 다시 그 위용을 되찾았다. 외관은 역사적 건축 양식을 최대한 살려 복원되었지만, 내부는 현대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옛 궁전 특유의 고풍스러움은 다소 덜 느껴졌다.
베를린 대성당(Berliner Dom)은 독일에서 처음 접한 성당으로, 장대한 규모와 엄숙하면서도 고요한 분위기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랗게 물든 낙엽이 성당 주변을 흩날리는 가을 풍경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성당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며, 대성당의 장엄함과 함께 한층 더 고즈넉하고 서정적인 베를린의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10. 알렉산더 광장
알렉산더 광장(Alexanderplatz)에는 높이 369m의 TV 타워가 자리하고 있다. 구 동독 정부가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베를린 어디에서든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높게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현재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야경을 감상하기 좋은 명소로 꼽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알렉산더 광장은 상업시설이 즐비한 베를린의 중심지로 변모했으며, 지하철과 버스가 환승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저녁 무렵,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로 광장은 활기가 넘쳤다.
11. 포츠담 광장과 저녁 식사
저녁 무렵,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 주변의 복합 쇼핑몰을 둘러본 뒤, 독일 현지에서 인기 있는 레스토랑 맥시밀리언즈(Maximilians)를 찾아갔다. 이곳에서는 독일 전통 음식인 학세(Haxe), 소시지, 그리고 신선한 독일 생맥주를 즐길 수 있었다. 레스토랑 안은 현지인들로 북적였으며, 대부분 하루를 마치고 와서 생맥주와 전통 음식을 곁들여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나누고 있었다. 관광으로 지친 몸을 달래며 현지 음식을 경험하니 하루의 피로가 씻기고, 여행의 뿌듯함이 더욱 느껴졌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REWE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구입하며 여행 이틀째를 마무리했다. 베를린의 저녁 풍경과 현지인의 일상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1. 베를린 장벽과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아침 일찍 시내에 위치한 베를린 장벽을 찾았다. 예상보다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분단의 흔적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묘한 감정을 남겼다. 장벽을 따라 나치 시대와 독일 분단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었고,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며 역사를 되새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찾은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는 길이 1.3km에 달하는 베를린 장벽이 야외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그림이 그려진 면이 동베를린 쪽에 위치해 있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라 불린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신이여, 이 죽일 사랑에서 구원하소서”라는 작품이 특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 색소폰 연주와 함께 그림을 감상하며 느낀 낭만은 잊기 어려웠다.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오버바움 다리(Oberbaumbrücke) 를 바라보며 슈프레강의 낭만적인 풍경도 즐겼다.
2. Curry 36 - 커리부어스트
오후에는 기차를 타고 포츠담(Potsdam)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 기차역에서 Curry 36을 발견했는데, 이곳은 베를린의 명물 커리부어스트(currywurst)를 맛볼 수 있는 유명한 가게다. 전날 무스타파 케밥 건너편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던 곳이라 더욱 호기심이 생겼는데, 기차역에서도 간단히 체험할 수 있어 반가웠다.
매장 안에는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없고, 야외 테이블에서 서서 간단히 즐기는 방식이었다. 소시지와 카레, 케첩이 어우러진 맛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마치 한국 포장마차에서 어묵이나 떡볶이를 즐기듯, 독일 사람들도 커리부어스트를 간편하게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짧은 간식이지만, 현지인의 일상과 문화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3. 포츠담 상수시 궁전
기차를 타고 포츠담 중앙역(Potsdam Hauptbahnhof)에 도착한 뒤, 버스를 타고 상수시 궁전(Schloss Sanssouci)으로 향했다. 베를린과 달리 포츠담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겨, 도시의 분주함과 대비되어 인상적이었다. 다만, 비가 많이 와서 이동하는 것이 어려웠다.
상수시 궁전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별궁으로, 이름은 ‘근심이 없다’는 뜻을 지닌다고 한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등장해 꼭 와보고 싶었던 명소이기도 했다. 이름 그대로 왕이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였다. 건물 자체는 비교적 소박했지만, 궁전 앞뒤로 펼쳐진 넓은 정원이 가을 햇살과 노랗게 물든 나뭇잎과 어우러져 한층 더 운치 더했다. 비가 내리는 날씨 덕분에 정원의 모습이 조금은 차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체칠리엔호프 궁전(Schloss Cecilienhof)은 포츠담 회담이 열린 역사적 장소로 유명하지만, 이날은 비가 많이 내려 아쉽게도 방문하지 못했다. 무리해서라도 다녀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기차를 타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온 후, 호텔 근처 Peter Pane에서 저녁을 즐겼다. 햄버거와 트러플 감자, 독일 생맥주를 맛볼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이른 저녁임에도 가족 단위 손님들로 붐볐다. 전날의 무리한 일정과 흐린 날씨 탓에 여행 셋째 날은 비교적 일찍 일정을 마무리하며, 다음 날 뉘른베르크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