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려고 내려갔더니

화해의 여정

by 장현수

그저께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자녀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는 같은 직장에 다녔던 대학 어느 선배였다. 퇴직하고 잊힌 지 언젠데 뭘 이런 걸 다 부담되게 보냈느냐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내용을 보다 보니 선배가 어느 중견기업의 대표로 가 있었다. 60 중반의 퇴직자가 어떻게 갑자기 이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를 보자. 직장퇴직 후 어느 누가 부르는 불러주는 이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나와 같은 경력을 가지고도 여러 군데 불려 가서 자리 잡고 잘 지내는 이들을 보면 무척 부럽다. 절대 밖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하여튼 복 잘 받는 것도 능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씁쓸했다.


어머니께서 나 어릴 때 하신 말씀을 귀담아듣고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지리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동네 뒷산은 무척 높은 산이다. 1150미터나 된다. 요즈음 내게 어디 사냐고 물으면 묻는 사람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이렇게 말한다. 들릴락 말락해서 묻는 사람이 여러 번 되물어야 할 정도로 작은 소리다. "알프스". 듣는 사람이 놀랜다. 그러면 다시 말한다. 조금 더 큰 소리로."영남알프스". 하여튼 우리 동네 뒷산은 영남알프스 등산권과 묶인 고산 준령이다.

이 산 아래 외진 우리 동네에 지나가던 스님이 한분 계셨다. 어느 집에 들러 물을 청해 한 사발 들이키고는 이렇게 중얼거리듯 한마디 하고 가셨다고 한다.


"이 마실에 인물 하나 날끼다. 내 말이 맞나 안 맞나 앞으로 한번 두고 보라꼬"


이 스님이 이 동네를 지나간 지 벌써 수십 년이 더 지나갔지만 아직 그 인물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릴 때면 가끔씩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한다.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바로 이 동네다. 공부하느라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나와 공부 다 마치고 직장생활까지 무사히 끝냈다. 퇴직했지만 마땅히 불러 주는 데도 없어서 직접 사업을 일으킬까 생각도 했다. 그리고 현직 때처럼 열심히 하면 평생 일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부모님이 남겨두고 가신 텅 빈 집은 누가 돌보나. 해마다 겨우 남에게 맡겨서 관리해오던 사과 과수원은 어떻게 하나. 나무가 고목 돼서 이제는 누가 다시 이어받아지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못하면 내가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서울에 살면서 400킬로미터 천리 떨어진 먼 시골 고향동네를 어떻게 가나. 한두 번도 아니고.


고민하다가 가족을 남겨두고 단신으로 시골 고향으로 내려갔다.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시골 동네 사람조차도 "오미가미 질까아 돈 다 뿌리고 댕기겠다"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아이고야 사과농사 함부레 치아레이. 쉬운 줄 아나. 사람 되 죽는다이"라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내가 나를 생각하기를 순하고 순종적이어서 남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사람이 바뀐 것도 아닌데 말이다. 주소 이전도 해버렸다. 주소지가 이곳으로 바뀌지 않고 이전 그대로 서울로 되어 있으면 정부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내려온 지 일 년이 지난 지금 누가 서울에서 좋은 자리 있다고 불러준다고 해도 말은 그럴듯하게 거절을 하겠지만 내 생각과 결정은 단박에 NO다. 그만큼 여기 생활이 내게 가장 안성맞춤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사과 과수원을 돌보는 것이 힘들기는 하다. 그러나 힘들다는 생각은 일회성이고 금방 잊힌다. 마치 출산의 고통이 뒤따르지만 잊고 또다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엄마들처럼.


시골로 처음에 왔을 때는 오래전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어 부담도 되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사과나무를 가지치기하거나 나무사이로 지나갈 때 나무들이 도대체 순순히 나를 그냥 보내 주지 않는다. 단단한 가지가 튕기면서 가는 곳마다 자꾸만 치고 때렸다. 고개를 들면 보이지도 않았던 굵은 가지가 어느새 위에 있어 그대로 쿵 하고 머리를 부딪쳤다. 머리에 혹이 여러 번 났다. 피부가 벗겨지고 피멍이 들었다. 수차례 맞아보고는 피하느라 최대한 낮은 자세로 기다시피 지나다니는데도 나무들은 '나는 모른다'이다.


어떤 생가지 하나가 안경을 끼고 있음에도 거칠고 세게 내 눈동자를 치고 나갔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눈 깜짝할 새도 없었다. 눈동자가 무방비 상태로 그대로 맞았다. 한방 제대로 맞은 것이다. 너무 아프고 눈이 뜨이지 않았다. 그리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거울을 찾아볼 수 있을까. 눈을 움켜쥔 채로 아픔을 참으면서 이 정도 충격이면 눈동자가 나갔을 거라고 여겨졌다. 이대로 농사고 뭐고 끝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으로 잘못 내려온 게 아닌가 라는 절망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얼마 후 마음을 추스르고 눈을 떴다 감았다. 그리고 반복해 보았다. 다행히도 그럴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바보처럼 같은 실수를 한번 더 저지르게 되었다. 조심을 하고 또 조심하며 나무사이를 지나다니는 데도 가지하나가 심경이 아주아주 불편했던 모양이다. 가지가 튕겨지면서 안경 속으로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전번에 다쳤던 눈동자를 그대로 다시 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휴지를 들고 한쪽 손으로 아프고 눈물이 저절로 계속 흐르는 눈을 문지르며 닦아냈다. 이 상태로 한 눈은 거의 감은 채 차를 몰고 KTX를 타는 역으로 달리면서 진짜 절망했었다. 두 번씩이나 일을 당하다니 이대로 끝인가 싶었다. 시골에서 이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막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픈 눈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나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눈이 그 이전처럼 나아지지는 않았다.


또 가지치기하고 잔가지를 주워 모아 끈으로 묶어 과수원 한편으로 나르기도 했다. 끝나고 나서 집에 와서 보니 그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가지들에 찍히고 할큄을 당해 양쪽 정강이와 무릎에 온통 피가 나고 상처들로 얼룩져 있었다. 그 뒤로 이 일을 할 때는 아들이 축구할 때 쓰던 무릎아대를 반드시 착용하고 있다.


농약을 칠 때는 농약통에 물을 받아놓고 적정량의 농약을 풀고 저어 동력분무기를 이용하여 약을 친다. 그런데 잘 되던 약제살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멎는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분무기 기계고장이라고 여겨 기록된 회사에 전화를 해보지만 새벽 여섯 시에 누가 전화를 받나. 낮이 되기를 기다려 다시 전화해보지만 회사가 일러주는 대로 확인을 해봐도 두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실망하고 스스로 화가 나서 일단 철수. 진짜 농사 아무나 짓지 못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고민하면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고장 난 기계를 수리를 맡기든지 새로 사든지 해야 할 것 같아 치우러 갔다. 가서 약제살포 호스를 걷다 보니 한 군데가 꼬여 있었다. 꼬인 호스를 펴고 혹시나 싶은 생각에 부리나께 달려가 분무기 기계를 작동해 보니 그제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작동이 잘 되는 것이 아닌가.


이 밖에도 농약기구 그리고 운반기계 등 손에 익지 않은 것들이 단 한 번에 OK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작동해 준 적이 없다. 이건 뭐 사과나무고 기계고 간에 서로 작당하고 짠 건지 서울서 내려온 어수룩한 이 한 사람을 죽도록 패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호락호락받아주지 않는 것은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사과나무도 낯선 기계 기구들도 초신자한테는 그렇게 호락 호락하지 않는구나 얘들도 낯가림을 하는구나 얘들은 특히 더 심하게 하는구나 새로 온 사람을 길들이고 싶어 하는구나 아니면 배척하고자 하는 것임이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들이 내 마음에 그대로 와닿았다. 놀명놀명 쉬엄쉬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아주 세고 센 텃세를 부림으로써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을 쉽게 생각하고 온 나를 용서해 다오. 작년에 농약 잘못 쳐서 모든 잎이 한꺼번에 낙엽 되게 한 것 진짜 미안하다. 나도 모르고 한 것이지만 동네 전체 사과밭 가운데서 6~7월에 벌써 사과나무 잎이 다 지고 우리 밭만 누래졌던 거, 그래서 동네사람들한테 한동안 웃음거리가 됐던 거 미안하다. 잘해볼게. 그리고 약속할게. 이제는 서울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로 가끔 와서 흉내만 내고 올라가는 일은 없을 거야.


사과나무와 그리고 농업용 기계 기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그 후로는 약속대로 매주 시골에 내려온다. 그들도 이제 나에게 그동안의 구박을 멈추고 마음의 문을 많이 열어젖힌 듯하다. 주말에만 가족이 있는 곳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 직장으로 치면 월요일 출근이고 주말 퇴근인 것이다. 사과나무는 모두 나의 직원이다. 직원은 사장이 있어 잘 돌봐주어야 일을 더욱 잘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나 감사한가. 사장인 나에게 월급 달라고 월급을 올려달라고 절대 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에게 가 주기만 하면 그냥 좋은 것이다. 그들과 같이 있어주기만 하면 그들도 안심하고 잘 자라 줄 것이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시골에 머무는 동안에는 밤이고 낮이고 사과밭으로 나가본다. 우리 밭 옆으로 집 짓고 이사 온 이웃과도 자주 만나 일을 배운다. 모든 시행착오를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점차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올해는 특히 병충해 방제 약제살포를 늦추는 일이 한 번도 없도록 착착 잘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수풀처럼 잡초가 우거졌던 작년의 그 사과 밭이 아니다. 풀이 땅에서 올라오면 호미로 싹싹 긁어 모두 매고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웃집 어른이 지나가며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집 어르신이 사과농사 지을 때는 밭에 풀 한 포기 없었데이" 아버지께서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닮아가고 싶다.


작년에 달리지 않았던 사과 열매가 올해는 많이 달렸다. 가을 수확철 까지는 장마와 무더위 태풍까지 험난한 과정과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사과나무들과 날마다 인사하며 기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 "안녕~잘 잤어~ 아프지 말고 잘 자라라" 그러면서 만져주고 쓰다듬어 준다. 그들이 나에게 해주는 대답은 하루하루 더 굵어지고 있는 사과 열매이고 또 싱싱하고 푸르른 잎이다.


지금 주말이 되어 KTX로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다. 가족이 있는 집에 가는 것도 좋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시골 사과나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2~3일 뒤에는 사과 열매가 또 어떻게 자라 있을까 기대가 되고 한편으로는 나 없는 동안 병충해 피해는 입지 않을까 노파심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또 약을 쳐야 하고 풀도 뽑아야 하고 군데군데 빠진 사과 알솎기도 해주어야 한다. 웃자란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아 하나 또 빠진 게 있다. 우리 밭 옆 이웃집 고양이들하고도 놀아줘야 한다. 특히 어제 구해 주었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아직 유월인데 조바심이 날 정도로 무척이나 다가올 가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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