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여유 있게 말장난
가지고 있는 주식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한 백억 원쯤 넣어두는 건데 아깝다. 그러면 오늘 매매가로 치더라도 이백억 원은 되었을 텐데.
경매 나온 토지 나대지를 누가 팔십억 원에 낙찰받았다. 낙찰받자마자 이 나대지 가격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일백육십억 원으로. 두 배다. 이런 재산불리기는 나같이 투자지식이 무딘 사람에게도 이론적으로는 언제나 가능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지는 못할까. 밑천이 없기 때문이다.
돈은 있는 사람이 번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돈 있는 사람들의 돈 버는 이야기라면 듣고 나서 빨리 털어 버려야 한다. 그래야 내 속이 덜 아프고 편하기 때문이다.
서로 친한 자매집사님 두 분이 같이 앉아 차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지나가면서 잠시 말을 걸었다.
"교회에서 두 분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은혜가 돼요. 같은 선교회 소속이시라서 만만하다고 설마 주먹 쥐고 치고박으며 자주 싸우지는 않겠죠?"
두 분이 마주 보며 서로 까르르 웃으신다.
누군가 직장 오너와의 심한 갈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있다보니 과거 나의 직장생활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의 느꼈던 직장인의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 해 주었다. 그결과 그는 어느정도 수긍을 하며 직장으로 되돌아 갔고 얼마 후에는 그 오너와도 화해를 나누었다고 한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직장인들을 오너나 상사의 입장에서 4등급으로 나누어 순위를 매길 수 있다.
먼저 1등급을 보자. 1등급은 상사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실력과 인격이 출중한 직원이다. 실력이나 인격이 부족하더라도 상사가 믿을만하고 의지하는 직원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모택동에게 등소평이 그렇다. 모택동은 등소평이 좋아서 남의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내쳤지만 끝까지 그대로 모른 채 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가 먼저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모택동 스스로가 반대파 모두를 뿌리치고 좌천 하방된 등소평을 다시 불러올려 요직에 앉히고 결국에는 후계자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마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와 버금가는 관계 정도가 될 때 1등급 직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2등급은 상사나 오너를 충성된 종처럼 따르는 직원이다. 이들은 상급자가 내린 지시에 절대로 토를 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예스맨 그 자체다. 직장에서 승진과 탐나는 보직에 목매인 직원들이 대체로 이 길을 따르는 부류가 많다.
다음 3등급. 3등급 직원은 고집 불통이다. 상급자의 지시에 항상 거부자세를 견지한다. 심지어 상급자가 부탁하고 사정을 해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스스로가 판단자인 것처럼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며 상급자를 오히려 가르친다. 자기주장이 무척 강한 직원이다. 상사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직원이다.
마지막으로 4등급은 오너 등 상급자를 수시로 패는 직원이다. 이런 직원들을 상급자는 매우 무서워한다. 그리고 두려워해서 자주 피한다. "ㅇ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것이다. 이런 직원들은 노조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는 강성 직원들이거나 내부일에 대해 외부에 투서나 고발을 밥먹듯이 하는 직원들이다. 상급자들이 자존심이 상해도 이들에게 맞고 다니지 않으려면 선물을 보내든지 잘 보여야 한다.
나는 직장 내에서 어느 등급에 위치해 있는가.
어떤 기도 모임에 잠시 인사 격려차 갔었는데 극구 사양해도 굳이 자리를 권한다. 부득불 탁자 앞에 앉자마자 모두들 과자랑 먹을 것을 챙겨 내가 앉은 앞으로 자꾸 가져다준다. 감사하다. 쌓인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한 말씀드렸다.
"탁자가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요"
다른 분이 위로하듯 말했다.
"맞아요. 탁자가 많이 낡아서 그래요."
내가 다시 말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주신 사랑이 제 앞으로 다 몰려서 그래요. 쌓인 과자 보세요. 제 앞으로 탁자가 기울 이지게 생기지 않았어요?"
몇 분이 웃었지만 여전히 무슨 말인가 모르는 분들도 계셨다.
교회 큰 행사가 치러졌다. 섬기는 분들이 많다 보니 이들을 위한 간식코너를 따로 운영했다. 다양한 간식이 준비되어 있어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혈당 관리를 하고 있는 중이라서 과자나 빵, 단 음료를 가급적 피해야 함에도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돌아가고 몸이 향했다. 간식코너 테이블을 맡고 있는 권사님께 한마디 했다.
"권사님 제 눈이 조금 비뚤어진 것 보이세요?"
권사님은 "아니 괜찮은데요."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권사님. 제 몸이 약간 좌측으로 휘어진 것은 보이세요?"하고 물었더니 "그건 섬기느라 일을 많이 해서 그래요." 하며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내가 권사님께 설명해 드렸다.
"권사님 실은 제가 권사님이 맡고 있는 코너 간식을 먹고 싶은데 지나갈 때마다 먹을 수는 없다 보니 몸이 먼저 반응해서 그쪽 방향으로 눈이 돌아가고 몸조차 기운 거랍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개를 들고 숫자판을 바라보며 엘리베이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층층이 서느라 좀처럼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앞에 멈추고 서더라도 만원이라 끼어들 틈이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한참만에 겨우 타게 되었다. 옆에 김집사님이 같이 타고 있었다.
"집사님 내 목 조금 봐주세요. 조금 길어진 것 같아 보이지 않아요?"
뜬금없는 질문에 집사님은 당황해하며 내 목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너무 오래 목이 빠져라 쳐다보며 기다리다 보니 제 목이 많이 길어진 것 같아요."
어떤 분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분도 나처럼 퇴직하고 나서 취미 생활을 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 계셨다. 그리고 최근 근사한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해외순방. 여행의 좋은 추억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이야기 말미에 뜬금없이 내가 한 질문을 했다. "해외여행까지 다녀오셨으니 이제 크거나 바쁜 일은 없으시죠?"
그가 "예 뭐 그렇죠 이제는."하고 말했다.
"이제 급한 일 없으시다니 이참에 저하고 같이 저희 시골 내려갑시다. 시골에는 해야 할 일이 많지요."
당황해하며 사람 좋은 그가 웃었다.
한 사람당 유럽여행 경비가 오백만 원 들어가고 부부 천만 원이 넘게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옆에 앉은 어떤 분이 그 돈이면 큰돈인데 아깝지 않냐고 반문했다. 내가 말했다. "남이 그 돈 쓸 때 나는 쓰지 않았으니 그 돈 천만 원은 내게 굳은 돈이 아닌가. 이 돈 들고 가족들하고 근사한 외식을 몇 번 하고도 남는 돈이 아닌가"
써야 내 돈이다. 나가는 것은 내 돈이 아니고 나를 거쳐 지나가는 것은 그저 남의 돈일뿐이다. 그저께 차를 몰다 전복사고를 일으켜 병원에 입원하신 분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멀쩡한 사람이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가는 것이다. 내야 하는 학비나 공과금도 그렇다. 이것은 내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으니 그냥 나가는 돈인 것이다. 부득이하긴 하지만 내게는 정말 안 낼 수만 있다면 좋을 돈이다.
학교 다닐 때 한 친구가 억울한 듯 내게 와서 한 말이 떠오른다. 갑자기 자기 머리를 내앞으로 디밀며 구멍이 나있나 살펴봐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놀라며 그 말을 믿었다. 그의 머리를 진짜 손으로 더듬으며 살펴보았지만 그의 말대로 구멍은 어디에고 나 있지 않았다. 내가 안도하며 구멍이 나있지 않다고 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머리에 총 맞았나. 그런 거짓말을 하고 다니게"
동기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나갔다. 동기하나가 완전 백발로 온 것이었다. 내가 보고 놀라워하며 물었다. "원래 네가 흰머리였는가" 그가 말했다. "말도 마라. 원래 검었는데 흰머리로 염색하느라 나 돈 많이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속으로 "아니 흰머리 염색도 하나.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라고 생각했다. 내게 말한 친구가 나를 보고 재미있다며 껄껄껄 웃었다. 좋은 친구다.
어쨋든 나는 알프스에 산다. 영남알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