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할머니 - 4부
창구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해답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시내를 걷고 있던 병수씨의 눈에 큼직 막 하게 쓰인 문구 하나가 다가왔다. 그것은 대형 빌딩건물에 현수막처럼 내걸려 있었다. 그리고 알 박기 하듯 문구는 병수씨의 시선에 그대로 꽂혔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문구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어떤 유명 작가의 시에서 나온 문구이다. 병수씨는 몇 번이고 문구를 읽고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오늘 아침 업무시작 전에 팀원들에게 한 말도 어떻게 보면 이 시 내용과 일맥상통했다. 창구에 찾아오시는 고객 한분 한 분을 내 몸같이 여기며 온 마음을 다해 응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은행 일이 반복 불특정 다수를 대하는 단순한 일일 수 있지만 찾아오시는 고객님의 입장에서는 인생이 걸린 삶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은행 오는 일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은행 지점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고객은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몇 번을 미루거나 또는 벼르고 별러 마지못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오신 분도 있을 것이다. 또는 목돈을 찾아서 아픈 남편 병원 치료비를 보태겠다고 오신 분도 계실 것이고 앞 날을 바라보고 1년이고 2년이고 3년이고 적금을 넣겠다는 청년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꿈과 미래와 또는 현실을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은행을 통해 기대하는 작은 마음 하나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내가 앉아 있는 창구에 어느 누구인들 찾아오더라도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고객님들의 발걸음이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겪었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내가 모른다며 내 알바 아니라며 무시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내 마음 그릇에 그들을 받아들일 최소한의 마중물이라도 미리 담아두고 있자는 것이었다.
병수씨에게 은행을 찾아오신 시골 어느 할머니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할머니는 은행 객장에 벌써 사흘째 오셔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 있는 아들이 결혼해서 서울에 살았다. 아들은 효자였다. 할머니는 매월 제 날자에 꼬박꼬박 며느리가 보내주는 용돈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매월 정해준 날에 할머니 통장으로 용돈을 보내주기로 되어 있었다. 이번 달에는 돈이 들어올 날짜가 그저께였다. 며느리가 돈보내 주는 날을 할머니는 한달 내내 기다려 오셨다. 그러다가 드디어 당일이 되었다. 설레는 마음에 자는 둥 마는 둥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세수하고 단장하여 먼 길을 걷고 버스 타고 은행에 왔다. 그리고 꼬깃꼬깃 때 묻고 구겨진 통장을 꺼내 들고 창구에 가서 직원한테 입금확인을 부탁했다. 할머니 통장을 받아 든 직원이 잠시 후 "거래내역 아무것도 없는데요" 하고는 통장을 할머니께 되돌려 주었다. 잠시 후 할머니는 다시 창구에 나가서 직원에게 똑같이 통장을 내밀며 같은 부탁을 했다. 그러나 아직 입금되지 않았다는 말과 내밀었던 통장만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할머니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객장에 머물며 수시로 창구에 나가 직원들에게 돈이 들어왔나 안 왔나를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직원들이 귀찮아하며 급기야는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되어 타박하여도 며느리가 여태껏 안 보내지는 않을 텐데 하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할 뿐이었다. 은행 문 닫을 때가 되어서야 할머니는 허전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며느리한테 전화해서 돈 부쳤냐고 차마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 생각에는 돈을 보내지 않을 며느리가 아니었다. 잊었을 수도 있지 하면서 할머니는 어제 이틀째 그리고 오늘 사흘째 기다리며 이러한 일상을 똑같이 반복하고 계셨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오매불망 기다리는 며느리의 입금은 없었던 것이다. 은행문이 내려지자 할머니는 집으로 쓸쓸히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늦은 시각 아들이 퇴근할 시간 무렵에 아들에게 전화했다. "잘 지내느냐"라고 아들 걱정부터 했다. 그리고 며느리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달은 돈이 안 들어왔더라. 나는 잘 있으니 엄마걱정하지 말고 굶지 말고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다니거라."
아들 내외는 이날 저녁 예정에도 없었던(?) 일로 서로 다투었다. 아들이 아내에게 "이번 달 엄마용돈 잘 보내드렸지"하고 물었을 때 아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 용돈 이번 달만 넘기고 다음 달에 보내 드리면 안 돼? 아이들 학원비가 장난 아니거든. 당신 월급도 이번 달은 보너스 없는 달이잖아."
다음날 아들은 넣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은행 적금통장을 깼다. 그리고 10만 원을 더 얹어 돈을 부치고 난 후 어머니한테는 "아이들 엄마가 요새 아이들 키우느라 바빠 은행 갈 여가가 없었다 그래서 늦었다"라는 취지로 말씀드렸다.
우리는 누구나 다 만남의 축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위 시에서처럼은 아니더라도 시 내용을 뒤집어서 '내가 그를 혹은 그녀를 찾아간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바꿔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나 자신이 먼저 축복의 통로가 되면 안 되는 것일까. 그럴 기회가 내게도 있을까 하고 병수씨는 생각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힘겨운 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진짜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까.
은행에서 만 원권 세 다발을 받아가야 할 고객님이 다섯 다발이 든 현금봉투인 줄 모르고 집으로 가지고 가셨던 것을 고객님은 혹시라도 착각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봉투 안에 든 것은 다 내 거다라는 생각. 다름 아닌 은행에서 확인하고 내어준 돈이니까. 은행직원을 믿고 돈봉투를 주는 대로 받아 들고 왔을 뿐이다 하는. 고객님이 총기가 깨발랄한 젊은 분이라면 창구에서 돈다발을 은행직원이 봉투에 하나하나 담아 드리는 동안 세 개인지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 스스로 먼저 세고 확인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창구직원이 혼란 중이라 하더라도 거기서 일차 체크가 이루어지고 서로 웃으면서 거래를 잘 마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고객님은 집에 가서 봉투를 열고서도 세 개이어야 하는데 왜 다섯 개지 하는 의문을 품어 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의문을 품었더라면 이 같은 곤란한 사달이 처음부터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웬만한 분이라면 고객님이 먼저 은행에 전화해서 돈이 더 왔다거나 아예 은행을 찾아오셔서 더 가져간 두 다발을 돌려주고 가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고객님은 돈다발이 더 왔는지 의심하지도 않았고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그날 일의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은행잘못이다. 그 똑똑한 은행직원이 왜 그런 실수를 하느냐 말이다. 그리고 당사자 본인은 도무지 더 받아간 사실이 없다고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은행직원이 자꾸 전화하고 오라 가라 하지만 이 일은 은행이 책임져야 한다. 도대체가 돈을 더 받아간 기억이 없는데 그리고 그것에 관심도 없는데 은행에서 왜 자꾸만 나를 번거롭고 힘들게 하는가. 이 것이 고객님은 입장이다.
또한 연세가 있으시니 도무지 할머니의 판단력을 더 이상 가늠할 수가 없다.
병수씨는 이 골치 아픈 일에서 고객님인 이 할머니를 여기서 그만 놓아드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명확한 다른 해결책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런 마음이 병수씨를 찾아와서 노크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할머니 고객의 CCTV거래 화면을 캡처해서 경찰서에 신고를 한다고 치자. 그래서 보기 좋게 고객이신 할머니를 소송으로 이긴다. 돈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고객이셨던 할머니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 그냥 욕심 많은 늙은이 정도로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은행직원으로서 은행에서 고객님 고객님 하면서 한분 한분 모시며 적금을 들어라 카드를 만들어 달라 펀드를 들어 달라 똑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바라기만 할 것이다. 내 앞에 어마어마한 일로 그런 사람이 찾아오기만을.
병수씨는 밤새 고민했다. 그리고 나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거나 부득이한 처지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누구든 그 사슬을 끊게 하고 싶었다. 어마어마하지는 않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비록 그들이 느끼거나 알지 못해도 먼저 다가가 조금의 여유와 선의를 베풀고 싶었다. 고객이신 할머니의 그동안 살아오신 삶과 인생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평생 공직자 남편의 배우자로 살아오셨을 할머니의 삶과 인생을 지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도 중요하고 바른 일처리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더 중요하다. 정작 본인은 수용하지 못하는 일임에도 다른 한쪽의 일방적인 판단만으로 그 사람을 무너뜨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다음날 아침 병수씨가 출근해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누군가가 병수씨를 찾는 전화라며 받은 전화를 돌려주었다. 전화 건 사람이 먼저 본인을 할머니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병원, 누가 들어도 알만한, 의사라고 했다. 은행에서 연세 있으시고 치매 증상이 있는 어머니를 자꾸만 오라 가라 돈 물어내라 한다고 하는데 한 번만 더 그러면 상위감독 기관에 민원을 넣겠다는 거였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네 알겠습니다 아드님.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일로 다시는 당신의 어머니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여러 번 고민하고 생각한 바대로 하기로 병수씨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팀원들한테는 잠시 누구 만나고 오겠다 하고는 조용히 지점문을 나섰다. 그리고 거래 보험사 창구로 향했다.
오후 마감시간이 다가오고 창구가 비로소 잠잠해질 무렵 병수씨는 상담실로 사고당사자 여직원을 살며시 불렀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일만 원권 현금 두 다발을 내밀었다. 할머니한테서 되돌려 받은 거니까 오늘자 시재로 잡고 가지급금을 정리하도록 일렀다.
놀란 여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병수씨를 쳐다보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