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은행창구에서 벌어진 일

어떤 할머니 - 3부

by 장현수

병수씨가 지방 도시에 있다는 고객님의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아니, 만나주지를 않으셨다. 사정도 해보았다. "고객님~ 한 번 되돌아 봐 주세요. 고객님의 손녀 같은 저희 여직원입니다. 무척 힘들어하고 있어요" 아무런 대꾸조차 없으셨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쓸쓸히 빈 손으로 다시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점에서는 CCTV를 재차 확인하고는 자료를 경찰서로 넘기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전에 고객님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무엇보다 원만한 합의가 최상의 해결책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더 고객님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 고객님에게 직접 지점을 방문하시도록 말미를 정해 진실되고 애틋한 마음으로 안내를 해 드렸다. 물론 이 일에 대해 '경찰서 도움요청 예정'이라는 문구를 포함했다. 혹시라도 나오지 않으실까 봐, 그러면 대화를 이어갈 수조차 없겠기에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고민 끝에 한 결정이었다. 부담스러우시겠지만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 고객님께서 드디어 지점을 찾아오셨다. 이곳 거주하시는 집에서도 지방 소재의 집에서도 뵐 수 없었던 분이다. 굳은 표정이셨다. 참 죄송하다는 생각이 병수씨한테 먼저 들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점에서 먼저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문제의 빌미를 누가 제공했는가. 견물생심은 인간의 본성이다. 고양이는 생선을 두고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방앗간에는 참새가 드나들 수밖에 없다. 병수씨의 머릿속이 더 복잡하게 돌아갔다. 우선 정중하게 지점장 실로 모셨다. 그리고 따뜻하게 우려낸 홍차를 예쁜 잔에 담아 드렸다. 번거롭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드렸다. 그러나 고객님의 입에서는 결코 희망의 답변이 단 한 줄이라도 새어 나오는 법이 없었다. 계속 경계의 묵묵부답 이셨다. 왜 불렀느냐. 나는 잘못 없다. 너희들이 먼저 말해라 하는 식이었다. 그러한 표정이셨다. 그렇지만 병수씨는 어떻게 해서든지 고객님과의 이 높은 벽을 허물고 모든 일을 원상태로 돌려놓고 싶었다. 처음처럼 회복이 되기를 바랐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고 할 그런 마음이 절대 아니었다.


고객님을 모시고 결국 CCTV화면 앞에 섰다. 거래 당일자 화면을 되돌려 거래 시간까지 맞추어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거래장면들을 확인시켜 드렸다. 웬만하면 이 방법을 쓰지 않고도 고객님으로부터 아름다운 답변을 듣기 원했다. 고객님을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기를 원했다. 고객님이 원하시는 해결방법이 있다면 그것으로라도 해결할 수 있기를 원했다. 여전히 표정을 바꾸지 않으시는 고객님이셨다. 사건의 해결에 대해 전혀 반응이 없으셨다.


이윽고 작게 새어 나온 고객님의 놀라운 한마디.


"하나도 안 보여. 늙어서 안 보여. 눈이 어두워서 뭐가 뭔지 정말 하나도 안 보여."


작지만 외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지점 바닥을 메아리쳤다. 그리고 새롭게 리모델링한 지점의 벽을 꽂히듯이 세게 내려쳤다. 비명처럼 들렸고 그것은 한순간 냉기로 변해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조금 전까지 분주하게 화면을 설명하며 자세히 주목해서 보는 쪽은 내내 병수씨와 직원들이었고 고객님은 어깨가 결린다며 건성건성 태도를 보이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노인이셔서 불편해서 그러시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맞는 의자로 바꿔 드리고 부축을 해가며 최대한 불편하지 않도록 고객님을 보필해 드렸었다.


몸을 비틀하면서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서신 고객님은 경찰에 신고를 하든지 말든지 당신네들 알아서 하라며 빠르게 은행문 밖으로 향하셨다. 그리고 한 말씀을 더 남기고 가셨다. "뭐 하나도 보이지도 않구먼"


지점에서는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관할 경찰서에 이 사건에 대해 해결을 의뢰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최근에 TV에서 화면으로 본 어떤 장면이 병수씨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정치하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기소 중인 피의자였다. 그는 환자복을 입고 중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휠체어에 앉아 축 쳐진 채로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드러난 죄목이 여러 개나 있음에도 그는 끝끝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럴 때는 목소리가 올라갔다.

이번에 벌어진 이 일도 그렇다. 당일 삼백만 원 적금 만기 해지하고 직원 실수로 은행 현금봉투에 일백만 원 다발 다섯 개를 받아 가셨음에도 이를 결코 놓지 못하시는 이유가 뭘까.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하는 착각조차 들었다. 병수씨는 느닷없이 자기 얼굴을 탓했다. "내가 못생겨서 그래. 내가 좀 더 잘 생기고 멋지게 보였더라면 고객님이 나를 이렇게 허탈하게 버려두지는 않으셨을 거야."

또 한편으로는 요즈음 자신이 잘못한 게 뭐가 있나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공부 잘하는 어린 딸을 동생 괴롭힌다고 혼내면서 매질했던 일이 맨 먼저 떠올랐다. 세게 때린 것은 아니었다. 살짝 대기만 하고 대신 침대 모서리를 탁탁 쳤었다. 하지만 딸은 분명 겁을 집어 먹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어릴 적 맞고 자라고 싸우면서 자랐던 인생이라 남들 앞에서는 그래도 잘 참는 편이지만 집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병수씨다. 그래서 집에서 이러한 일이 한 번씩 있고 나면 언제나 후회하며 제 머리를 찧는 사람은 다름 아닌 병수씨 자신이다.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은 몇 주째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에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예배를 드리지 않은 병수씨를 하나님께서 치시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다짐하는 것이었다. "하나님 이번 일만 잘 해결되게 해 주신다면 빠지지 않고 주일날마다 교회 나가 하나님께 꼭 예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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