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좀 드시면서 하세요

밀양에서 얻는 네 개의 행복

by 장현수

여름이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위양지 못은 성수기 계절이 아니어서 붐비지 않아 좋다. 수면 가까이로 늘어진 나뭇가지 위로 6월 빛나는 햇살이 졸듯이 머물고 있었다.


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의 글에 이런 말이 나온다.

"뭘 좀 먹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라고 하는 빵집 주인의 말.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을 겪은 젊은 부부에게 더듬더듬 위로의 말을 건네고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커피를 내놓으며 먹고 기운차리라고 하면서 한 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가의 책 제목에서 힌트를 얻는다.


무더위가 한창인 계절이지만 아내와 문득 그냥 떠오르는 대로 집을 나섰다. 전혀 계획하고 예정한 일정이 아니었다. 시간만 내었다. 길거리로 나서면 별 것 아니라도 도움이 될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그리고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이 위양지 못이다. 위양지 이름에서 못이란 의미가 들어가 있지만 못을 덧붙인 것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못이라기보다는 아예 호수다. 신라시대에 만든 못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할뿐더러 못 주변의 풍광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팝나무꽃이 한창인 봄이면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봄 따스한 햇볕에 고목아래 기대어 앉았다가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꿈속에서 맑은 강물 위로 연분홍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찾아간 곳이 무릉도원이었다면 위양지를 찾아오시는 여러분들도 한 번에 단박에 찾아오기란 조금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낯선 길이기 때문이다. 이 평범한 논자락 어딘가에 숨겨진 듯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위양지는 큰 연못 둘레로 아름드리 고목이 둘러싸 있다. 연못 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고 섬에는 정자하나가 위치해 있다. 정자주위로 이팝나무가 가득 들어차 있는데 봄철 이팝나무 꽃이 한꺼번에 필 무렵 이때가 위양지 못의 절정이고 그 모습은 천상의 그림처럼 장관이다.


연못의 수면은 오늘 잠잠하다.

남생이라는 작은 거북이 녀석이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수면 위로 헤엄쳐 나왔다. 그리고 작은 나무껍질을 배인양 올라타고 앉아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는 듯하다. 하루 종일 물속에만 있다가 지루해서 햇빛구경 하러 나온 건가. 아니면 오늘은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마중이라도 나온 건가.


젊은 연인이 있다. 자리를 펴고 둘이서 못 가에 나란히 앉았다. 서로 손을 꼭 잡고 어깨를 기대채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 물 위로 닿을락 말락 늘어진 푸른 잎의 나뭇가지와 잔잔한 연못과 이따금 부는 바람에 이는 보드라운 물결 그리고 맑은 구름과 높은 푸른 하늘 그리고 그 가운데 눌러앉은 작은 섬과 기와지붕 정자를 바라보며 그들의 시선이 여간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시공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흐르는 곳이다. 아름답다.

숲사이로 숲의 향기와 그늘의 청량함 그리고 몇 안 되는 방문객들의 울려 퍼지는 유쾌한 웃음소리가 이곳의 여유로움과 정겨움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미리 말해 드리는 건데 이곳은 멈추고 서있는 곳 어디서나 그저 뷰 포인터가 되며 포토존이다.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밤이고 낮이고 비 올 때고 눈 내릴 때고 사시사철 그냥 두지 못하는 곳이라고 알려주는, 연못가 농장에서 블루베리와 방울토마토를 재배해서 팔고 있는 한 분은 위양지 이야기로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었다. 특히 비 올 때 비를 맞아가며 빗물이 연못으로 떨어지는 바로 그 장면을 찍는 작가들의 모습을 대단하게 여기고 있었다.


다음으로 가는 곳은 벚나무 가로수가 길게 나있는 길을 따라서 갔다. 가로수 길은 예뻤다. 아 이 길도 절정은 봄이겠구나. 벚꽃이 터널을 이루는 그 속으로 달려가보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갑자기 드론을 띄워 벚꽃 길을 살아있는 영상으로 따라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가려고 하는 그곳을 가는데 또 길이 쉽지 않다. 우리 마음대로 가도록 쉽게 길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초행길이라 내비 따라갔더니 국궁장이 나왔다. 크고 높은 나무가 멀리서 보여 저긴가 하고 찾아갔더니 큰 느티나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나치면서 대한 그 느티나무의 크기와 우람함도 만만찮았다. 그리고 붙어 있는 그 옆의 연잎 밭도 인상 깊었다.

그렇게 왔다 갔다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드디어 갈 곳을 찾았다. 금시당 은행나무. 420살로 표지에 적혀 있던데 표지에 글을 적은 때는 또 언제인지.

은행나무는 오래된 양반가 별채 정원 뜰에 서서 그 연륜과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 은행나무를 보려면 사실은 가을에 와야 제격이다. 노란 은행잎이 가득 달려있을 때나 그리고 그 잎이 모두 스산한 가을바람을 타고 떨어져 은행잎의 바다를 이룰 때라야 이 은행나무가 이래서 '그렇게 유명한 거구나'하고 실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6월 말 지금은 가을 그날들을 위해 한껏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십 년도 더 전에 우리가 이쪽 지방에서 살 때 이곳 문인협회에 속했던 아내가 다른 회원들과 함께 이곳에 와서 본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한다.

그래 올 가을에 단풍철에 이곳에 다시 와봐야지 하고 속으로 마음먹었다.

이곳에 와보니 근처 용평 하천가에 고등학교 때 가을소풍온 기억이 났다. 거기서 우연히 모래톱에 끼인 500원짜리 지폐를 발견하고 얼른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마도 장마철 홍수에 휩쓰려 떠내려 와서 걸려 있었던 듯. 자취방으로 와서 보니 일부가 뜯기고 약간 접힐 정도의 반쪽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돈으로 내가 어떻게 했을까마는.


은행나무가 서있는 뜰 앞으로 기와로 덮인 긴 담이 이어져 있다. 그 담너머 아래로는 한줄기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금시당 은행나무를 만나고 나오는 저쪽 한편으로 아내가 계속 손으로 가리키며 궁금해 한다. 몽골군대가 머물던 군막처럼 역세모꼴 큰 수십 그루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내게도 낯선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장면을 보는 것은 덤이다.

슬슬 허기가 찾아온다.


때마침 식욕을 자극하는 식당이 근처에 있었다. 민물 향어회 전문 식당이었다. 올 때는 보지 못했는데 돌아 나오는 길에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문경새재 너머에서 맛보았던 이후로 오랜만에 대하는 향긋한 향어회. 체크해 놓는다. 다음에 우리가 또 한 번 찾아 올 곳.


아내와 나는 멀쩡한 카페, 베이커리 카페이름 'Nature'를 어느 상품에서 본 것과 혼동해서 자꾸만 '나뚜루'라고 읽었고 카페문을 나오고 나서야 그것이 우리말 발음으로 '내이처'인 것을 알고 실소했다. 어정쩡한 지식은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한 것이다.


내이처 베이커리카페는 동남아 문화를 가져온 듯했다. 일하는 알바 종업원들 가운데 몇 명도 동남아 청년인 것 같았고 메뉴도 그랬다. 여러분들이 만약 밀양에 와서 판단코코넛라떼 등 판단이라는 명칭이 붙은 커피 음료를 드시고 싶다면 이곳으로 추천드리고 싶다. 여름이라 기대했는데 팥빙수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창문너머로 빨간색 경부선 열차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디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열차길은 늘 나에게 동쪽에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는 열차길은 서쪽이다. 밀양에 오면 언제나 시내에서 외곽으로 바라보기 십상인데 반대로 외곽 쪽에서 시내방향으로 이렇게 밀양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점심식사 후 커피 한잔 국룰에 따라 들렀던 이 카페조차도 다시 또 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


오늘 우연히 아내와 더불어 집을 떠나 길을 나섬으로 네 개의 행복을 얻었다. 위양지 못, 금시당 은행나무, 맛있는 점심, 분위기 좋은 카페. 거기서 각각 누렸던 시간의 행복은 고되고 아픈 삶에 위로의 순간이 되고 회복의 출발이 되었다.


좀 드시면서 하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