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키우다
일하다가 잠시 멈추고 자라고 있는 사과열매로 눈을 돌린다. 아이의 부모가 된 느낌이다. 내 손으로 가꾸고 돌보아야만 되는 우리 밭 사과나무들과 그 열매들.
이제 열매솎기가 거의 끝났다. 꽃 한 개에 예닐곱 개까지 열매가 맺히는데 그중에 한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따주는 일이다. 좋은 열매를 따내야만 할 때 무척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4월 말 화창한 봄에 처음 꽃이 피었을 때 가장 기다린 것은 벌이었다. 벌이 찾아와 주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한두 마리라도 찾아와 주면 그게 그렇게 고맙고 대견할 수가 없다. 벌들이 와서 우리 밭 일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와야 수정이 된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고 있지 않다. 그러기에 할 수만 있다면 달고 맛있는 꿀을 한 병이라도 담아 벌들에게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꽃이 한창 피고 있을 때 그만 비가 내렸다. 비를 맞게 되면 꽃은 떨어지고 만다. 수정이 되기도 전에 떨어진 꽃잎을 보게 되는 것은 큰 실망이다. 그리고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이상기후가 왔다. 이번에는 새벽에 차가운 흰 눈이 내려버린 것이다. 개화기에 꽃에 눈이 직접 닿는 것은 최악이고 사과열매 맺는 것에 치명적이다. 곧바로 냉해피해다. 더 이상 수정을 기대할 수없고 수정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열매의 꼭지가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겨우 살아남은 열매가 자랄 무렵에 유월 우박까지 또다시 한바탕 휩쓸고 갔다. 올해 사과밭의 분위기는 지금 긴 어둠의 터널이다. 마치 도자기를 열심히 굽고 있지만 가마 안에서는 애써만든 도자기들이 곳곳에 터지고 균열자국이 생기고 있는 형국이다. 도공의 마음도 그럴 것이고 내 마음도 그렇다.
그래도 이대로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포탄이 떨어져도 살아남은 자가 있기는 마련인 것처럼. 올해 사과도 그렇다. 얼핏 보면 찾아보기 어려워도 잎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래도 버티고 남아 있는 한알 두 알 달려있는 사과열매들을 보게 된다. 저절로 감사가 흘러나온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여기저기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달린 사과열매들을 확인해 본다. 열매가 아직 작은 것은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수가 있다. 그래서 가지를 잡아 살짝 들추고는 밑에서 위로 빼꼼히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기도 한다.
십수 년도 더 된 일이다. 교회에서 다른 교인들과 함께 미국을 간 적 있었다. 교회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성도도 아니고 '선생'이란 호칭으로 불릴 때였다. 세상만 알고 교회는 전혀 모르는 때였다. 이때 만난 어떤 분(장로님이셨다)께 여행에서 돌아와서 아버지께서 수확하신 사과를 팔기로 하고 한 박스 보내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분은 내가 보낸 사과를 선물인 줄 알고 계셨는지 사과값을 치르지 않으셨다. 이게 아닌데 싶어 한동안 기다려보다가 결국 파는 사과라고 말씀을 드렸든 것 같다. 어쨌든 돈을 받았다. 그분은 그때 이것이 무슨 상황이냐고 오해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당시 초신자였기에 그 교회를 더 이상 나가지 않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더라면 이 일은 그대로 잊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계속 그 교회를 빠짐없이 출석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여러 부서를 섬기게 되면서 교회에서는 이분과도 계속 마주치며 지냈다. 그럴 때마다 그때 그 사과의 일 또한 계속 되살아났다. 그동안 그분의 가정사에 축의금도 하고 또 그분도 우리에게 부의도 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때 그냥 아버지께 우리가 대신 사과값을 보내드리고 속시원히 사과 한 박스를 선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그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 사과농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나 자신이 이 일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올해 우리 사과가 정말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직 장마와 무더위 그리고 여러 개의 태풍과 병충해 등 예상되는 여러 난관들이 수두룩하게 남아있다. 수확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 종착역은 아직 멀었다. 전라도 강진의 상감기법 고려청자는 기어코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 도공은 일일이 무늬를 만들어 그리고 흙들을 채워 굽고 색을 입혔다. 전 과정 과정이 도공의 땀이고 눈물이다. 사과농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특히 장마철과 무더위 속에서의 농약살포는 지옥이 따로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지금껏 가지고 있는 소망 중 어느 하나라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사과를 따면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리는 외에 앞에서 언급했던 십 수년 전 그때 드리지 못해서 여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그분 장로님께 이번에는 진짜로 사과 한 박스를 남보다 먼저 선물로 보내드리고 싶다. 죄송했던 마음을 담아 편지로도 한 장 쓸 생각이다. 그분 장로님은 그때의 일을 아직 기억하고 계실까.
그분 장로님과는 지금까지 계속 좋은 관계로 가까이하며 지내오고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나조차도 같은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다. 그분은 이제 원로 장로님이시다.
고려청자상감기법. 도공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사과나무를 키우고 싶다. 확실한 가치가 있고 의미가 담겨있는 아름다운 사과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