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공신

네 친구들

by 장현수

일등공신은 사전적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공적이 가장 뛰어나거나 훌륭한 인물을 말한다. 요즈음도 왕조시대처럼 일등공신이라 칭하며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기는 일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어떤 일을 이루고 성취하는 과정에서 역할과 공적이 너무나도 뚜렷해서 일등공신이라 불릴만한 무언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매주 월요일 시골 고향으로 농사 지으러 내려갔다가 주말이면 다시 서울로 되돌아오는 삶을 택한 내게도 일등공신이라고 칭할만한 몇 가지가 있다. 이들은 친한 친구들 이상의 친구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KTX다. KTX가 없었다면 지금 이러한 생활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서울에서 시골까지 매주 내려가고 올라오는 나의 이 삶에 대해 '서울 인근이면 몰라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맨 먼저 거리가 멀다는 인식에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나 자신도 실상 그들과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다. 감히 누가 그러한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교통수단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았다면 진작에 서울생활과 시골생활 둘 중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언컨대 다시 가기 어려운 고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골생활을 먼저 정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 연고도 남겨두지 않은 채 고향을 뒷전으로 고 영원히 떠날 수밖에 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인가. 고향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내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있고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런데 KTX가 있어 고맙게도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해 준다. KTX는 나에게 걸쳐져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이다.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깊은 한밤중 오작교다.


월요일 아침이면 기대와 설렘으로 KTX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주말이면 다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로 보람을 안고 올라간다. '월요일 출근이고 주말 퇴근'이다. 뭐가 문제가 있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직장에서도 주말 부부는 어디에고 흔하디 흔하지 않은가.


우리 밭 옆에 나보다 젊은 부부가 외지에서 와서 오래전부터 집 지어 살고 있다. 그들도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데 내게 항상 좋은 멘토다. 남편 ㅇ사장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사과나무를 그냥 사과나무로 보면 안됩미데이. 하나하나가 모두 다 내 직원인기라예. 엇나가지 않도록 잘 돌봐야 됩니더'라고.

직원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러면 나는 사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뜻이라기보다 사과나무 하나하나를 내 직원으로 알고 사랑과 정성으로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KTX가 맺어준 귀한 인연이다.


서울역에서 고향 가는 역까지는 300여 km. KTX로 두 시간 반 걸린다.


차를 운전하며 만약에 이 길을 내려온다고 치면 내 운전실력으로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시간을 잰다면 휴게소에서 쉬지 않고 달려도 고향집까지 6시간이 더 걸린다. 한 두번은 가능해도 매주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KTX를 타고 두 시간 반동안 오면서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니다. 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로 쉬고 싶으면 얼마든지 쉴 수도 있는 것이다. 남들이 열차비 걱정을 하고 나로서도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개의치 않으려고 한다.

한 여행사에서 일본 홋카이도 여행일정을 잡아놓고 120만 원을 제시하는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래 눈구경, 낯선 환경 경험 다 좋다 치더라도 비싸다는 생각이다.

집을 떠나 시골 고향 한번 내려오는 것이 내게는 여행이다. 매주 여행을 떠나 본 적 있는가. 나는 매주 시골여행을 떠난다. 120만원이 아니라10만원이면 된다. 복 받은 삶이다. 거기다가 이용 할인이 되는 카드를 구매하면 15%까지 할인이 된다.

KTX덕분에 먼거리 고향 시골가는 길이 여행 길이 되며 부모님들께서 남기고 가신 고향집을 누리고 사과밭을 가꿀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향역에 내리면 시골집까지 오고 가고 이동할 수 있는 작은 차가 한대 있음이다. 경차라서 시골 작은 골목길 다니기도 무척 편하다. 짐을 실어야 할 경우에 소소한 짐 정도는 심지어 사과박스조차 대여섯 개 정도는 거뜬하다. 고향역에 내리면 인근 주차장으로 가서 이 차를 운전해서 곧장 고향집으로 들어간다. 또 주말이 되어 서울로 올라올 때는 집에서 나와 역 근처 무료 주차장에 그대로 주차를 해놓고 올라오면 된다. 차를 두고 자리를 떠날 때는 항상 차를 향해 인사를 한다. "우리 차 여기 잘 있어. 월요일에 다시 보자" 하고 쓰다듬어 준다. 그리고 반대로 월요일 다시 만났을 때는 "그동안 잘 있었어 우리 차" 하고 쓰다듬으며 차 주위를 꼼꼼히 둘러본 뒤 차에 오른다. 서울에 머물고 있는 동안 주차장 정비나 공사로 인해 가끔씩 이동주차를 요구하는 난감한 연락이 오기도 한다.


시골에서는 이 차가 나의 발이다. 운전해서 농협에도 가고 면사무소에도 또 농기구철물점이나 심을 모종 구하러 장에도 같이 간다. 여기저기 얼마나 쓸모가 많은지 모른다.


사실 이 차를 구입하기 전에 화물차를 먼저 구입했었다. 시골에서 사과를 수확하면 밭에서 창고로 사과상자를 날라야 하고 선별작업이 끝나면 경매를 위해 공판장에도 싣고 가야 해서였다. 중고차 구입을 위해 가격대를 맞추다 보니 수동기어차를 사게 되었다. 오래전 운전면허 시험 때 기억을 되살려 사람 없는 빈 공터에 가서 자주 운전연습도 했다. 낯선 수동기어이긴 하지만 운전을 하다 보면 쉽게 다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이 차는 나의 생각과 의지대로 길들일 수 없는 한 마리 거친 야생마 그 자체였다. 비탈길 내리막길에서 여러 번 위험한 순간을 겪었다. 참다 참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몇 개월 뒤 고민 끝에 결국 트럭을 처분하고 말았다. 팔고 나서 그동안 쌓였던 위험 부담을 덜게 되어서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이유없이 붙잡혀 있다가 풀려난 느낌이었다. 해방된 기분이었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가 나에게 최근 수년이래 가장 잘했고 미치도록 개운하고 속 시원했던 일을 하나 손들고 일어나서 크게 한번 말해 보라고 한다면 손 번쩍 들고 일어나 두말할 필요도 없이 수동기어 화물차를 처분한 것이라고 큰 소리로 외쳐 말할 있다. 그만큼 다루기 힘들었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만만찮았다.


다음으로 일등공신은 농약 칠 때 사용하는 동력분무기다. 동종기기에 비해 무척 가벼워 가꾸고 있는 두 군데 밭에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옮겨놓기가 쉽다. 그리고 100미터 이상 거리에서도 고압으로 분무가 가능하도록 해준다. 눈앞에서 하얀물줄기로 강하고 멀리 날아간다. 분사가 되는 분사기를 잡고 있으면 호쾌 상쾌 통쾌다. 마치 군대에서 강한 화력을 가진 기관총을 연발로 드르륵 드르륵 조준한 곳으로 집중 발사해보는 느낌이다.


사과나무 약제살포는 나무의 잎 뒷면에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과를 괴롭히는 병균들과 해충이 주로 잎 뒷면에 숨어서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2000평 이상 많은 면적의 사과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SS(Speed Spray) 기를 구입해서 시간과 노동력 그리고 방제효과 등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한다.


그러나 그보다 적은 농지규모에다가 귀농 2년 차에 접어든 내게는 수천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SS기를 구입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비탈진 우리 밭에서는 이용하기가 위험하기도 해서 더욱 그렇다. 시간이 걸리고 힘은 들지만 이 동력분무기는 부담 없는 구입비용임에도 효과적으로 농약을 골고루 살포할 수 있게 해 준다. 무엇보다 분사력이 세서 잎의 뒷면에도 약제살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분사기를 들이대면 압력을 못 이겨서 잎들이 팔랑팔랑 뒤집어지며 면으로도 흥건히 적셔지게 되는 것이다.


네번째는 긴 장대호미이다. 원래 시골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호미이다. 최근에 철물점에 들렀을 때 한 자루만 나와있어 혹시나 쓰일 수 있을까 해서 사와 본 것이다. 그런데 이 장대호미로도 올해는 일단 자라는 잡초를 잡을 수 있었다. 큰 소득이다. 이것 하나만으로 자라기만 하면 쉬엄쉬엄 잡초를 모두 제거할 수 있다. 제초제나 예초기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작년에 50만 원 넘게 주고 사 와서도 제대로 활용을 못했던 최신형 일제 예초기보다 더 낫다. 근사미 농약 6~7병을 사 와서 반나절을 고생고생 살포해야 겨우 잡히던 잡초였다. 단돈 일만오천 원 주고 산 호미가 능력이 이 정도다. 쉽고 편하게 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일이 없을 때나 있을 때나 비가 오나 맑을 때나 긴 장대호미는 밭에 나갈 때 필수 소지품이 되었다. 날마다 어깨에 메고 밭으로 나가는 내 모습이 되었다.


시골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호미는 손 호미로 손잡이가 짧다. 그런데 이 장대호미(이름이 원래 없고 장대호미라고 내 맘대로 붙인 것)는 두 팔을 벌린 정도의 길이로 무엇보다 쪼그려 앉아 풀을 메는 일은 없게 해 준다. 쪼그려 앉아 밭을 매면 허리가 무척 아파온다. 이것은 철제임에도 재질이 가벼워서 손호미 쓰는 정도의 힘으로도 일하기가 쉽다. 호미가 장대처럼 길다 보니 서있는 자세로 두세 발짝 떨어진 곳에 있는 풀을 멜 수 있고 때로는 낫처럼 우거진 풀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도 있어 다용도로 쓸 수 있다. 풀들은 금방금방 자라므로 제초제 농약을 뿌리거나 예초기를 자주 써야 하는데 아침이고 낮이고 수시로 밭에 가서 땅 위로 자란 풀들이 눈에 띄이기만 하면 이 장대호미 끝으로 그냥 툭~툭~ 쳐주기만 하면 된다. 재미있는 동작이다. 그러면 풀이 뿌리까지 뽑히고 땅이 일어나 흙을 일궈주는 이중 효과가 있다.


장대호미를 사 왔던 면사무소 소재 철물점의 사장은 고향 후배이면서 시골 중학교 후배다. 이 후배한테 어느 날 장대호미 이야기를 하면서 만든 사람에게 반드시 노벨상을 줘야 한다며 적극 후보 추천을 권했더니 고맙다며 웃었다.


어제도 두 군데 밭 다니며 장대호미로 군데군데 자란 풀을 툭~툭~ 치며 메고 있었다. 이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옆집 ㅇ사장 네 새끼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주었다. 그리고 나무에도 오르고 폴짝폴짝 뛰기도 하며 일하고 있는 나를 즐겁게 했다. 말하자면 위문 공연이다. 귀엽고 얼마나 이쁜지 나중에 일 마치고 갈 때 줄까 하고 챙겨 왔던 캔 간식을 일하다 말고 바로 엄마고양이, 언니고양이, 새끼고양이 앞에 풀어헤쳤다. 셋이 머리를 들지 않고 깨끗하게 그릇이 빌 때까지 맛있게 먹어 주었다. 풀메기를 마치고 앉아서 숨 돌리고 있을 때 새끼 고양이가 또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만져주니 가만히 있다. 간식 준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는 듯이 제 나름대로 밥값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시골에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맙고 감사한 공신들이 많다. 가까이는 늘 걱정하고 격려해 주는 아내와 감자 수확 거들려고 기꺼이 내려와 준 딸과 아빠걱정하지 말라고 딱 맞춰 직장에 취업을 해준 아들이 있다. 그리고 살 집과 사과밭,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를 물려주신 부모님, 말없이 굽어보고 있는 빼어난 뒷 산, 작은 운반용 동력수레, 이웃 ㅇ사장 부부, 새끼 고양이 가족, 우리 집에 날마다 찾아오는 10여 마리 고양이 등등 많다. 이들 모두와 감사와 축복이 넘치는 삶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이 삶은 덜 외롭고 복 받은 삶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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