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사랑나무

by 장현수

해피사랑나무에 올해 사과가 유난히 많이 달렸다. 꽃도 잘 왔고 벌들도 많이 찾아와 주었다. 이제 곧 7,8월 여름이 지나고 이어 가을이 오면 얼마나 예쁘고 새콤달콤한 맛있는 사과로 모두 변해 있을까 무척 기대가 된다.


해피는 우리와 16년을 함께 했던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다. 요크셔테리어와 시츄의 견종을 닮았고 접힌 귀에 작고 귀여웠다.

해피라는 이름은 우리 교회 믿음 좋으신 권사님이 지어주셨다. '좋은 주인 만났으니 이제부터 행복하라'며 '해피'로.


해피가 우리 집에 있을 때 우리 부부와 아이들에게 더없이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사춘기 우리 아이들에게 늘 변함없는 친구였고 사랑과 위안이 되어 주었다. 우리 해피도 우리들로 인해 이름처럼 그리고 우리가 해피한테서 처럼 행복하게 잘 지냈을까.


아이들이 어릴 때도 그랬지만 해피가 우리 집에 오고 난 뒤 나의 직장생활 스타일이 바뀌었다. 해피하고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섰다. 직장에서 땡 하고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다. 회식이 있다 하여도 1차 끝나면 2차는 따라가지 않았다.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집으로 고고. 그러므로 공식적 회사모임 이외에 회사 마친 후 내가 누굴 불러 함께 어울리고 자시고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해피하고 놀아주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이었다. 누굴 만나지 않고 집으로 곧장 오니 술값 같은 비용들도 많이 줄었다. 그리고 건강은 더 좋아졌다.


몇 년 전 해피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한동안 슬픔에 잠겼었다. 우리 해피도 그때 그러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눈만 뜨면 달려가 눈 맞추며 엄마아빠 그리고 언니야와 오빠야 한테 안아달라고 졸랐었는데 갑자기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당황해하며 한동안 멈칫멈칫거렸을 우리 해피의 모습을 그리는데 그만 내 양쪽 눈이 아련히 젖어온다.


해피가 우리 집에 온 지 제법 시간이 흘렀을 무렵의 일이다. 아파트에 살고 있던 집 현관문이 잠깐 열려있는 틈을 타서 해피가 그만 집밖으로 나갔다. 해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당연히 집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보여야만 할 해피가 보이지 않자 우리는 그제야 해피를 부르며 이 방 저 방 찾아다녔다. 침대아래에 들어가 있나 해서 살펴보았지만 거기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 외 나머지 집안 어디에고 모조리 다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우리 해피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침대를 부서지도록 한 번에 통째로 들어 올리고 다시한번 그 안을 샅샅이 뒤져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식구모두의 간절함과는 달리 해피는 우리 집 어디에도 없었다. 이러다가 진짜 이제 해피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다시는 보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이 현실을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모두 각자 흩어져 해피와 자주 산책했던 길로 해피를 찾아 나섰다. 나는 시영아파트 공원 가는 방향으로 올라갔다. 그 방향은 큰 대로를 두 개씩이나 건너야 한다. 이 넓고 큰길 그리고 시영아파트 공원 이 넓은 곳에서 작은 몸의 해피를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해피를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자꾸만 줄어듦을 느꼈다.


다른 방향을 따라 딸과 함께 나갔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해피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기쁨에 심장이 떨릴 지경이었다.


집을 살짝 나가보았던 해피가 계단을 헷갈려서 10층인 줄 모르고 내려간 7층 문 앞에 가서 짖었던 모양이다. 친구들과 같이 놀고 있던 초등학생 그 집의 딸이 그 소리를 듣고 나와보니 이쁜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 것이 아닌가. 남이 볼세라 잽싸게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같이 놀다가 친구가 예쁘다고 키우겠다고 하니까 해피를 그 또래 친구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작은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이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아내가 경비실의 CCTV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강아지는 바로 우리 해피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 중 한 명은 우리가 알고 있는 7층집 딸이었다.

7층집 딸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 아내가 직접 그 친구 초등학생 여자아이 집을 찾아갔다. 아이는 처음부터 잔망지게도 발뺌을 하고 나섰다. 문도 다 열어 주지 않고 빼꼼히 열어둔 채였다. 부모는 부재중이었다. 몇 번을 좋은 말로 설득해도 이 아이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오지 않았고 집에도 없다고 끝까지 딱 버텼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문을 확 열어젖히고 들어가 온 집안을 뒤져 찾아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아이와 어른이 싱강이를 벌이는 중에 아내의 귀에 순간적으로 해피가 자주 하던 바닥 긁는 소리가 느껴졌다. 촉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제 딴에 집을 지킨다고 그러는 건지 집에 택배 아저씨나 외부인이 방문하면 해피가 물어뜯을 듯한 기세로 달려 나간다. 누가 잡으며 가로막기라도 하면 놓아 달라고 세차고 빠르게 발버둥을 친다.

그때 들었던 바로 그 네발로 빠르게 바닥을 긁 소리가 어렴풋이 아내의 귀에 다시 들려왔던 것이다. 잡고 있다고 절대 순순히 잡혀있을 우리 해피가 아니다. 더 기를 쓰며 심지어는 발톱까지 세우고 네 발을 사방으로 내젓는다. 이렇게 바둥거릴 때는 아무도 못 말린다. 영리한 우리 해피가 엄마 목소리를 듣고 엄마가 온 줄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상황을 간파한 아내가 숨을 크게 한번 들이킨 후 그리고 세게 내뱉었다. 그리고 침착을 유지한 채 집안을 향해 크게 한마디 했다.

"해피~"

그랬더니 해피가 듣고 방비를 뚫고 집 안쪽에서 쏜살같이 문 앞으로 달려 나왔다. 문간에서 언니가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동안 그 동생조차 해피를 잡고 몰래 끝까지 숨기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학생이 되어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무척 설레었고 창가 바깥풍경을 보기 위해 창가 좌석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 그리고 당일 시간에 맞춰 비행기에 올랐다. 마침내 원하던 창가좌석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창문으로 보니 넓은 공항이 훤히 바라다 보였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바깥 풍경을 막 구경할 참이었다. 옆 좌석에 앉아있던 어떤 어린 꼬마가 제 엄마를 향해 자꾸만 창가 자리에 앉아 바깥구경을 하겠다며 보채는 것이었다. 그러자 엄마가 아이를 달래기는커녕 창가에 앉아 있던 대학생 그분에게 말했다. 아이가 비행기를 처음 탔고 창가에 앉아 바깥구경을 하고 싶다는데 어른이 양보 좀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엄마의 염치없고 당당한 태도에 이분은 순간 당황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는 이십년여년만에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거지만 이 아이는 열 살도 안 돼서 벌써 타보는 비행기잖아. 누가 더 처음인가. 더군다나 나도 창가에 앉아 구경하고 싶어 어렵게 창가좌석을 구해서 타게 된 건데.'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두말 않고 기꺼이 자리를 아이와 아이엄마한테 양보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창가자리로 바꿔 앉은 지 얼마 안 가 곧 잠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내내 그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이 분이 또 어느 날 기차를 타고 갈 때였다. 자리에 앉아 오는데 그날따라 기차가 만원이었고 입석 손님도 매우 많았다. 얼마 안 가 옆에서 엄마와 같이 서서 기대고 가던 아이 하나가 배가 아프다며 엄마를 졸랐다. 그리고 엄마를 쳐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엄마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곧 내릴 거니까 그때까지 꾹 참으라고 하며 아이를 달랬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이 분이 일어섰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를 향해 자리를 양보해 드릴 테니 아이와 앉아 가시도록 권했다. 그런데 아이 어머니는 괜찮다며 감사하다며 한사코 아이와 앉아가기를 거절했다. 손님도 힘드실 텐데 그리고 우리는 얼마 안 가서 내리게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 분은 비행기에서 만난 아이와 기차에서 만난 아이 중 누가 더 잘 자랄 것 같냐고 그리고 나중에 크면 누가 더 세상에서 쓰임 받으며 잘 살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나는 단연코 우리 해피를 몰래 데려가서 숨기며 없다고 끝까지 거짓말했던 그 아이와 동생이, 지금쯤은 청년의 나이가 되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자라고 크게 성장할 것을 믿고 바란다.


오늘 다시 우리 해피사랑나무아래에서 아빠를 바라며 고요한 쉼으로 기다리고 있을 우리 해피를 보러 간다. 나무아래 아무렇게나 나 있는 잡초도 모두 제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해피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도 볼 생각이다.


해피 안녕~ 우리 해피 안녕~ 잘 있었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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