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하나에 거는 기대

예비된 성공자

by 장현수

새벽에 일어나 집 뒤 밭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었다. 이른 해가 벌써 떴지만 우리 지붕과 담벼락에 가려 햇빛은 아직 밭에까지는 닿고 있지 않았다. 새 아침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즐거운 새 아침이었다. 잠시 후 두두두두하고 앉아서 운전하는 농기계 하나가 지나간다. 신형 예초기인 듯싶었다. 농사 2년째 초보자라 농기계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 사용하는 지도 잘 모른다. 토마토를 따다 말고 허리 펴고 일어서서 코앞으로 지나가는 농기계를 바라보았다. 마을이장이다. 어제도 송백 농기계수리센터 갔다 오면서 길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눈인사라도 나누고자 했지만 고개 한번 돌리지 않으시고 이장님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두두두두거리며 끝까지 그냥 지나가고 만다. 아쉬웠다. 생각이 다 있으시겠지 하고 여기며 돌아서서 하던 일 계속한다. 그런데 그분의 무뚝뚝한 표정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분의 삶에 대해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농협에 갔다. 문을 열며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하고 들어선다. 고개를 들지 않는 직원들의 시선은 컴퓨터에 가 있다. 나의 인사를 받아 줄 여지가 아직 없어 보인다. 일주일 만에 들렀는데 인사 나눔이 없이 밍숭밍숭 창구에 앉아 있자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2년 전 처음에는 인사에도 반응 없는 직원들을 보며 속상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직원들의 일상이 늘 그렇다. 특히 농협은 조합원 체제라 누가 오더라도 늘 그분이 그 분일 경우가 많다. 가족 같아서일까. 인사 없이도 살아가는 데 있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면사무소에 갔다. 누구도 고개 들고 바라봐 주는 분이 없다. 그냥 인사하고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상대방이 나하고 인사를 나누지 않았어도 담당 창구에 가서 필요한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기꺼이 응대를 해 주신다. 단, 찾아온 사람이 묻는 만큼만. 약간 억울할 때도 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사망신고하러 갔을 때 담당자가 없다고 딴 데 가서 하시라고 응대하는 여직원분이 계셨다. 다른 데 가서 할 땐 하더라도 面民 한 분이 돌아가셨다면 형식적이라도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언론에서 공무원의 급여가 너무 적다고 그만두는 공무원들도 많다고 하니 마냥 공무원들만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과 같이 박봉에 행정 서비스도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자리를 지켜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할 뿐이었다. 남아서 계시는 분들이 진짜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여겨진다.


매주 교회에 간다. 서있는 사람을 보고도 인사를 나누지 않고 그냥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찾아가서 손 내밀고 먼저 악수를 청하며 겨우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을 한다. 심지어는 하나님 뵈러 왔지 너 보러 온 것 아니다고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썰렁하다. 세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 안에서는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이 좋겠다. 인사를 나눌 생각이 없다면 인상이라도 부드럽게들 하시면 좋겠다. 화난 표정으로, 숨듯이 피해 가는 듯한 모습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콱 막힌다. 내게 얼마나 나쁜 미운털이 박혔으면 이럴까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정말 부족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분들도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 분들을 축복하여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카페에 간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맛있게 마시고 싶어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합창하듯 먼저 "안녕하세요~"하고 맑은 인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다. 눈을 마주친 직원이 아무도 없다. 누군들 어떠리. 인사는 받았고 시원한 한 모금 커피만 있으면 되기에. 이번 7월은 너무나도 덥다. 밖에 나서는 순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손수건을 지니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벌써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왜 맨날 땀이 나고 나서야 이 생각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기다리고 있는데 "작가고객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순간 반응하고 일어서 달려 나간다. 직원이 드디어 내게 눈 마주치며 "작가고객님?" 한다. 자신 있게 "네 맞아요"하고 놓여 있는 커피 쟁반을 기쁘게 받아 든다.


은행에서 평생을 근무했다. '갑'과 '을'이 너무나 일상이었던 시절~ 한분 고객님이 방문해 오시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선 버선발로 문 앞까지 달려 나가 맞이한다. 고마우신 고객님~ 그리고 준비한 사은품과 차 한잔을 내어 드린다.

찾아오시는 고객님들이 심심하지 않으시도록 매월 반짝반짝한 신나는 행사를 진행했다. 강원도 횡성의 감자와 옥수수, 횡성한우, 이천의 신선한 켐벨포도, 방울토마토, 충주사과, 음성의 주먹만 하게 큰 알밤 할인 판매행사, 주제를 달리 한 작가 분들의 그림과 조각, 금속공예, 퀼트 작품 전시회 등등. 심지어는 거래 업체와 협업으로 진행하며 관계성을 더욱 돈독하게 꾸려 나갔다. 이러한 가운데 많은 분들과 많은 기업들이 우리를 통하여 새롭게 일어나고 기업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었다. 그것이 기쁨이었고 즐거움이었다. 내 집을 이렇게 찾아주시다니 너무 감사하고 뿌듯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고등학생인 듯한 여학생이 내게 "안녕하세요"하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나도 모르고 저도 처음 본 얼굴일 것이다. 어린 학생이 낯선 사람에게 인사 먼저하기 정말 쉽지 않았을 터이다. 시험을 앞두고 있는지 문제집을 들고 외우고 있었다. 원래 그럴 계획이 없었는데 여학생이 내릴 때 "공부 열심히 하세요~" 하고 따뜻하게 먼저 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이 진짜 시험 잘 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인사만 잘해도 축복을 받을 일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여긴다.


잘 생기고 멋진 것만 바라는 요즘 세상에서 굳이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누구인지도 모를 이에게 자기를 낮추며 상대방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부터 할 줄 아는 청년들은 비전이 있다고 본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출한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누가 알아주지 못할까. '인사하나 만 잘해도'하는 말도 있지 아니한가. 누구이든 간에 하나같이 왜 힘들고 소외받고 괴로운 일이 없겠는가.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라도 남을 향해 내 표정을 고치고 눈빛하나라도 선하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성공한 삶의 태도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겪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생에 있어서 '예비된 성공자'임에 틀림이 없다.


길에서건 농협에서건 면사무소에서건 교회에서건 남들이 하지 않는 특출한 자기만의 이러한 능력-인사-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기를 바란다. 100원 받았다고 100원어치만 일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100원 받는 일이지만 150원 같이 50원 더하면 바라보거나 지켜보고 있던 누군인가로부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반드시 얻게 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받았던 것이 많았다. 다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갚아나가거나 나누어 줄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