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콩키스타

알함브라궁전

by 장현수

어떤 점심 식사모임에서 한 사람이 최근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이야기하고 몬세라트 수도원의 검은 성모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수도 마드리드와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 갔던 이야기도 해주었다. 풍성한 이야기보따리였다.

창밖으로는 아까부터 추적추적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가로수 은행나무 잎들마다 빗물이 따라 흐르고 있었다. 비가 올 줄 알고 주문한 것이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막걸리와 파전이 먼저 피타이저 음식으로 나왔다. 비 오는 날 막걸리 파전에 스페인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떠들썩하게 나누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알함브라 궁전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군가가 문득 '레콩키스타'라는 말을 꺼냈다. 이 말은 관심 있는 사람들 외에 접하기 쉽지 않은 스페인의 역사 용어다. 더구나 친한 사이로 가볍게 모여 식사를 나누는 오늘 이 자리에서 들을 수 있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레콩키스타는 어느 정도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꺼내거나 언급하기 쉽지 않다.


'레콩키스타'는 '재정복'의 의미로 즉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서 가톨릭 진영이 이슬람 세력을 반도 밖 북아프리카 일대로 완전히 몰아내는 그동안의 전 과정을 말한다. 즉 이슬람 세력이 들어와 차지하고 있던 고토를 모두 회복하기까지의 긴 싸움이기도 하다. 781년여 동안 그들은 싸워왔고 드디어 목표를 이루었다. 마무리 주역은 이사벨라 여왕과 남편 페르디난도 왕이다. 여왕은 신대륙탐험가 콜럼버스를 있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슬람은 무함마드에 이어 약 30여 년 짧은 정통 칼리프 시대를 지나 우마이야 왕조가 이슬람 왕조를 계승했다.


우마이야 왕조 말기에 수도인 다마스쿠스에서 파견되어 북아프리카 일대를 점령 통치하고 있던 무사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우연히 서유럽의 끝단 이베리아 반도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가 통치 관할하고 있던 현재의 모로코 땅에서 이베리아 반도는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 맑은 날에는 바다 건너 그 땅이 훤히 바라다 보일 정도였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최단 14km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짙은 코발트블루를 띠는 바다를 한참 동안이나 응시하고 있던 무사는 드디어 휘하장수 타리크를 불렀다. 그리고 그를 선발대로 삼아 일단 바다를 건너 그 땅으로 넘어가 그곳이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지시했다. 얼마 후 부하장수 타리크로부터 매우 긍정적인 보고가 들어왔다. 프랑크와 고트족을 밀어내고 그 땅에 들어와 차지하고 있던 서고트족 왕국은 심각한 내분으로 혼란 중이었다. 그들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서 외부의 침략을 막아 낼 단합된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를 파악한 무사는 직접 그 땅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용맹한 사막 유목민 베르베르 병사 1만 명을 데리고 들어가 파죽지세로 서고트족고 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불과 몇 년도 안 돼서 북쪽 끝 피레네 산맥 언저리까지 몰아붙였다. 이슬람 세력이 드디어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슬람의 정착이 이로써 그 땅에 이루어졌다.


우마이야 왕조는 6명의 왕이 90여 년 정도 짧은 기간 존속하다가 아바스 왕조에 의해 멸망했다. 이때 우마이야 왕조의 한 왕자가 이곳 이베리아 반도로 피신해 와서 '후 우마이야' 왕조를 잠시 열기도 했다.

이슬람 세력이 이렇게 해서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한때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곧 하나로 뭉쳐있던 이슬람 왕국이 해체되고 각각 작은 독립세력으로 분할되었다. 이에 따라 이슬람의 전체 세력이 급속히 약해졌다. 교황의 지원을 받게 된 가톨릭 진영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레콩키스타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이들은 무슬림 소국들을 하나하나 차례로 함락시켜 나갔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슬람 왕국은 반도의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국이다. 이 왕국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바로 알함브라 궁전이다. 기타 작곡가 타레가의 명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유명하다. 알함브라 궁전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무언가 모를 깊은 쓸쓸함과 심연의 애잔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워싱턴 어빙이 쓴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는 신비에 묻혀있던 알함브라 궁전이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나스르 왕국 즉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왕국의 또한 마지막 왕이었던 보압딜이 나라를 위하기보다는 개인적 욕심을 더 크게 앞세우게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는 왕위를 노리고 외부의 적인 가톨릭 세력을 끌여들였다. 그들에게 나스르 왕국으로 통하는 비밀의 길을 따라 이끌며 궁전의 내부세력들을 모조리 축출했다. 그리고 원하던 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왕의 자리를 제대로 누려 보기도 전에 이제는 나라를 뺏기 위해 진짜 적들이 나타났다. 보압딜이 왕이 되고자 그들을 몰래 이끌고 왔던 그 비밀의 통로를 통해 가톨릭 세력들이 한꺼번에 내습했다. 이로써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이끌고 온 군사들에게 순식간에 왕궁이 함락되고 급기야는 나라를 잃었다. 1492년에 일어난 일이다.

보압딜 왕이 나라를 잃고 쫓겨가면서도 그는 나라보다 오히려 알함브라 궁전을 매우 아쉬워하며 걱정했다고 한다.


이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800년 전 기세등등하며 건너왔던 그들의 선조들의 길과는 반대로 쫓겨가는 길에 서있는 그들의 행색은 볼품이 없었다. 옷차림의 남루함과 초라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그들은 버티느라 며칠을 굶었는지도 모른다.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가는 무어인들 앞에 놓인 지중해의 바닷길은 어둡고 검기만 했다.

그들은 북아프리카 일대 모로코를 포함한 땅으로 되돌아와 이로써 역사의 전면에서 조용히 사라져 갔다.


작은 식사모임을 통해 오늘 의도치 않게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적 배경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에 감사하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스페인, 무엇보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이 내 마음 깊은 곳으로 잔잔한 물결로 스며든다. 헤네랄리페 여름궁전, 코마레스탑, 대사들의 방, 사자의 정원, 아벤 세라헤스의 방, 두 자매의 방 등등...

그리고 그때의 그 이슬람 사람들은 아직 이베리아 반도 그 땅을 떠나지 않았고 모두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은과 크리스털의 신비한 등잔을 켜고 리라의 음을 들으며 살고 있으며 때가 되면 다시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말위에서 갑옷을 한채 창을 들고 지하에서 올라오게 될 거라고 하는 남아있는 전설도 확인하고 싶어졌다.


한적한 날 나뭇잎들이 팔랑팔랑 시원하게 잔잔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아침 무렵이 좋겠다. 요새 알카사바에 올라 그라나다 시내를 한눈에 조망하고 싶다. 멀리로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은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고 싶다.

그때 내 작은 귓가로는 여전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좋았던 이 땅 낙원을 모두 잃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지친 무어인의 마지막 한숨... 떠나온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을 잠시나마 뒤돌아보기 위해 멈추었을 한 언덕 위에도 이 한줄기 음악이 흘렀으면... 떠나가는 그들에게 잠시의 쉼이라도 도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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