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읍내에서 벌어진 일

시계 수리를 맡기다

by 장현수

오래된 벽시계를 수리점에 맡겼다. 디자인이 예쁜 시계로 바꿀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러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는 시계라서 쉽게 떠나보내기가 어려웠다.

이 시계는 예전에 직장 다닐 때 한 고객님이 개점 선물로 주신 시계다. 여기에는 주석으로 세공된 아기천사가 달려있다. 사업추진으로 힘들 때마다 아기천사가 곁에서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래 사용해서인지 한번 고장이 나고 나서는 고치기가 어려웠다. 건전지를 바꾸는 등 간단한 조치로는 어림도 없었다. 몇 번 애를 써보다가 결국 포기한 채 싸서 구석에 방치해 두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시골집으로 가지고 내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서재 벽면에 걸었다. 작동은 되고 있지 않지만 추억이라도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며 가며 가끔 볼 때마다 정지되어 있는 시계의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억지로 벽에 걸려있는 듯했다. 정지해 있는 것보다 맞게 돌아가는 시계라야 할 것 같았다.


벽에서 시계를 내렸다. 혹시나 해서 새 건전지를 끼웠다. 그리고 시 분 초 침을 핸드폰 시각으로 맞추었다. 그런데 시곗바늘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떨어뜨렸거나 크게 흔들린 적도 없는데 왜 고장이 났을까 또다시 궁금했다.


처음으로 손목시계를 차 본 적은 중학교 때였다. 도회지 나가 계신 집안 어른이 쓰시던 헌 시계였다. 시계를 차고 학교 다니는 나날은 즐거웠다. 친구들이 자주 시간을 물어주어 우쭐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한번 고장 나니 수리를 할 수가 없었다. 면단위 마을에는 사진관과 동네의원까지는 들어와 있었지만 시계 수리점은 없었다. 시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고장 난 시계를 여러 날 더 차고 다녔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직접 시계를 차고 있지 않더라도 어디서든지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한 시대다. 그럼에도 시계를 고쳐가며 살려야 하는 일은 변함없이 지금도 생기는 것이다. 시계가 귀했던 중학교 때 그 때나 시계가 너무나 흔한 지금 이 때나 똑같다.


벽에서 떼어 낸 시계는 제법 묵직했다. 금속으로 외장을 장식해 놓았기 때문이다. 엔틱 한 시계이기도 하다. 시골 읍내로 나가서 시계 수리점을 찾았다. 어느 한 곳이 있어 시계 수리를 맡길 수 있었다. 어르신이 주인이었다. 수리를 다한 후에 연락을 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2주일째는 아예 먼저 찾아가 보았다. 보내 놓았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오래된 시계라서 따로 또 큰 도시 전문 수리점으로 보내서 수리를 의뢰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간단한 수리가 아닌 듯싶었다. 수리비용이 꽤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3주일이 지나자 드디어 연락이 왔다. 시계를 수리해 놓았고 찾아갈 수 있다는 연락이었다. 기대를 하며 수리점을 찾아갔다.


가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오래된 시계에다가 수리하는데도 3주일이나 걸렸다. 예상밖의 수리비가 나올 것 같았다. 아마도 10만 원 이상은 나오지 않을까. 시계수리 하나에 이 정도는 너무 과하지 않은가. 새로 하나 사고 말지 그리고 제대로 된 수리나 될까 싶었다.

내가 괜히 수리를 맡겼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수리를 취소하고 새로 벽시계를 살 걸 하는 때늦은 후회도 들었다.

여름 한낮에 날씨조차 무척 더웠다. 더워서인지 길거리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서는 땀이 연신 주르륵 흘러내렸다. 속상한 생각에 슬슬 짜증마저 차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비용은 비용대로 들면 나는 이 시골읍내에서 제대로 걸려든 것일까. 갈수록 손님이 줄고 있는 시골읍내 시계 수리점으로 볼 때 어떤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이 오래된 벽시계를 들고 와 수리를 맡기고 갔으니 모처럼만에 그야말로 봉이라도 잡은 것일까.

답답한 심정을 아내한테도 하소연했다.


수리점 맞은편 좁은 왕복 2차선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먼저 확인했다. 12시 40분. 굳은 표정이 되어 수리점 문을 훅 하고 밀치고 들어갔다. 속마음을 숨긴 채 인사를 먼저 나누었다. 그리고 시계를 받았다. 시계가 정확하게 돌아 가는지 시 분 초 침부터 확인했다. 고쳤다는 시계의 시간이 방금 수리점에 들어오면서 먼저 확인한 시간과 틀리거나 아무렇게나 되어 있다면 한번 따져볼 참이었다. 그러나...


시계는 정확하게 현재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를 보고 나서 감정적인 마음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그러나 주인은 수리비용을 바로 말해주지 않고 있었다. 일부러 뜸 들이며 시계를 만지작 그리고 있는데도 계속 조용하기만 했다. 뭘까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큰 액수의 금액을 부르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출입문 밖에서 빵빵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차해 놓은 차를 빼달라는 신호였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주인에게 물었다.

"얼마예요?"

주인이 대답했다.

소리가 작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다시 또 물었다.

"얼마라고 하셨죠?"

주인이 다시 대답해 주었다. 분명히 들었는데 이번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칠만 원이 아니고 칠. 천. 원?"

하고 다시 되물었다.

"예. 칠. 천. 원. 주시면 됩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스스로 부끄러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품처럼 차올랐던 감정이 순식간에 폭삭 땅바닥까지 내려앉았다. 그리고 한순간 세상에서 제일 순한 양 같은 사람이 되었다. 수리점 주인의 얼굴은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시간을 들여가며 수리를 하고도 고작 7천 원만 부르다니.

들어올 때의 표정과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의 표정으로 바뀐 채 수리점 문을 살며시 당기며 밖으로 나섰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인이 잘못 알고 말한 건 아닐까. 혹시나 틀렸다면 언제라도 되돌아가서 돌려줄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수리점 주인으로부터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다시 전화했다. 생각보다 무척 작게 나온 시계 수리비 이야기를 했다. 의외라며 아내도 놀라워 했다. 아내는 더운 날씨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한잔 뽑아서 주인에게 인사하며 가져다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내의 이 말에 바로 오던 길로 다시 차를 돌렸다. 그리고 스벅카페 드라이버쓰루 매장에 들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주문했다.


커피를 들고 시계 수리점 문을 조심스럽게 살며시 열고 들어갔다. 주인은 아직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주인에게 가져온 커피를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더운 날씨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영문을 모르는 주인은 건네주는 커피를 받아들고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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