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디 하자
경상도 말로 '단디 해라'는 '실수하지 말고 앞뒤 전후를 살펴 야무지게 일처리 혹은 처신하라'는 의미다. 늘 잘할 수는 없다. 100번 잘해도 한번 실수하면 100번 잘한 것이 허사다. 다만 실수 한 번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회복의 발판을 삼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내게 일등공신인 모닝을 운전해서 농협에 농약을 구매하러 가기 위해 대문 밖으로 차를 후진했다. 시골에 내려와 외부로 나갈 때 언제나 하는 똑같은 운전 방식이다. 그래서 여태까지 실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렇게 후진한 상태로 핸들을 우측으로 최대한 감고 직진하면서 핸들을 좌측으로 서서히 풀어주면 된다. 그런데 조금 더 안전하게 출발하고자 앞으로 약간 전진했다가 핸들을 안쪽으로 감고 후진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면 차가 도로와 나란히 위치하게 되어있다. 이 운전도 이미 수없이 경험했던 터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일등공신 모닝이 한순간 착각으로 깨어지고 부서진 채 덜거덕 덜거덕 듣도 보도 못한 소리까지 내면서 농협까지 겨우 갔다. 주차장에 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남들 보기에 민망해서 일부러 길 건너 공터에 주차했다. 그리고 필요한 약제를 구매했다. 매주 약제를 구매할 때마다 평균 20만 원 정도 비용이 나간다. 적은 비용이 아니다.
마침 동네 이웃 동생뻘 되는 2층집 사는 정사장이 농약살포 상담차 거기에 와 있었다. 정사장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근처 가까운 곳에 카센터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없으면 한 시간 거리 시내로 가거나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가까운 타 시군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여기서 10분 거리에 카센터가 있다고 소개해 주었다. '말 그대로 시골 카센터'가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 당장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박살 난 전조등 하나라도 수리가 되어야 한다. 옆구리 찍히고 찌그러진 것은 놔두고라도.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 참에 아예 새 차로 바꿔야 할까. 차를 맡기고 집에 오고 나서는 그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던 렌터카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동기에게 장기렌터카를 문의하기도 했다.
이틀 뒤 수요일쯤 수리가 될 거라고 했는데 맡긴 지 수 시간도 되기 전에 벌써 수리되었다고 카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저장된 카센터 전화번호가 뜬 것을 보고 처음에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수리가 어렵다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할까 봐서. 그러나 타지에서 부품을 구해가면서까지 빨리 수리를 해 주어 너무나 감사했다.
수리비는 생각보다 아주 적게 나왔다. 그러나 시골에서 서울까지 KTX로 3번 이상 왕복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경상도 말을 또 쓰게 된다. '무다이'(쓸데없이 안 해도 될 일을 하게 되는 것) 일을 만들어 사서 고생을 하고 없는 비용을 들였다.
내가 무심코 저지른 실수는 '차를 뒤로 빼면서 착각으로 기어를 R이 아니라 D에 둔 채 엑셀레이터를 밟았던 것'이었다. 밟자마자 여지없이 차가 앞으로 나갔고 그대로 쾅~ 가만히 서 있는 한쪽 대문 모서리에 부딪혔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었다. 그대로 직면할 뿐. 범퍼가 내려앉고 전조등과 안개등이 박살 나고, 차체 앞부분 우측 찌그러지고 터지고, 워셔액 통은 깨어져서 바닥이 흥건 등등. 실수가 아니라 착각에서 발생한 일이다. 내 운전방법이 이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그러나...
바둑에서 완벽하게 상대의 수를 읽고 나서 다음 수를 알면 뭐 하나. 착각을 해서 바둑돌을 잘못 놓는다면 악수도 이런 악수가 없다. 장기판에서는 물리기라도 할 수 있지만 바둑판에는 어림도 없다. 화투판에서는 낙장불입. 칠을 내야 하는데 똥 쌍피가 나도 모르게 내손에서 먼저 떨어진다면 호되게 당할 수밖에 없다. KTX를 타다 보면 자주 발생하는 일이 있다. 무슨 계획이 있어 표를 이상 없이 잘 예매를 해놓는다. 당일 서둘러 역에 나와 열차를 타보면 내가 앉을자리에 누군가 먼저 앉아있다. 알고 보면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닌 것이 맞다. 내가 타야 하는 열차는 오늘이 아니고 내일 열차인 것이다. 날짜를 착각하고 예매한 탓이다. 이밖에도 열차 호실을 잘못 알고 제자리인 줄 착각하고 앉아있다가 쫓겨나는 사람도 더러 있다. KTX 아니 열차 낭인이다.
사고를 낸 직후 이제 차를 수리 맡기면 앞으로 시골은 어떻게 왔다 갔다 하나.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하나. 답답한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차한테도 미안한 일이었다. 주인 잘못 만나 괜한 고생이다.
어떻게 해서 이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 갑자기 왜 그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일까.
오랜 기간 오늘과 똑같은 실수는 실상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오늘만큼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적은 없었다. 만약 도로상에서 다른 사람이나 남의 차를 대상으로 한 이 같은 추돌사고였더라면 어쩔 뻔했나.
더 큰 사고를 막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겸손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회복불능의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붙이지는 않으신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에 감사하다.
오늘 일을 계기로 다시금 이러한 착각을 하지 않도록 운전에 더욱 오감을 총동원하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낯선 탓에 늘 죄충우돌이지만 위험할 때는 항상 '단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