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4

약육강식

by 장현수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사과밭으로 나왔다. 사과나무 병해충 방제를 위함이다.

약제살포를 위한 긴 호스를 밭에서 가장 먼 가장자리까지 펼쳤다. 그리고 다시 동력 분무기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벌써 숨이 차고 온몸에 열기가 느껴진다. 시동을 걸었다. 약제호스로 약이 정상적으로 유입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약제 분사구가 있는 밭 가장자리 호스 끝으로 내려갔다.


분사기를 들고 사과나무를 향해 살포를 시작했다.

손잡이를 당기니 약제가 세차게 뿜어져 나갔다. 직사 분무로 20미터 이상 날아가는데 꼭 총을 쏘는 느낌이다. 낚시꾼들의 표현대로 '손맛'이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다. 이 맛으로 수동 약제살포하는 의미를 갖는다. 굳이.

SS(Speed Spray) 농약살포기는 운전하며 이동하는 자동식 기계살포기다. 수동으로 4시간 이상 살포할 것을 15분이면 끝난다.


이 좋은 기계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기계 값이 수천만 원대로 비싼 것이 첫째 이유다. 아직 귀농귀촌 2년 차에 선뜻 구입하기란 무리다. 마이너스 1년 차에는 준비하느라 적자폭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면서 밭은 밭대로 한해를 그대로 묵힌 바 되었다.

그리고 작년 본격 1년 차로 들어서서는 적자폭이 더 깊어졌음에도 판매할 수 있는 사과수확을 전혀 얻지 못했다. 묵힌 사과밭은 심한 해거리를 했다.


SS기를 구매하거나 좀 더 편리한 농기계를 위한 비용지출은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다. 효율성이나 어느 정도 수확량과 수익이 확인되면 그때 가서 고려해 볼 문제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사고 위험성이다. 경사가 있고 비탈진 밭이어서 초보자가 다루기에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사이를 500리터 약제를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만만찮다. 앞으로 이 농사 일과 이 밭 요모조모에 더 많은 경험이 쌓여야 하고 더 익숙해져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그리고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열기가 불을 뿜는 듯하다. 500리터 통으로 두 통 반을 살포해야 하는데 아직 한 통조차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과나무를 살리고 맛있는 사과열매를 수확할 기대가 커기에 앞으로 남아있는 살포량을 가급적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샷건 놀이하듯 분사기 조절기를 꽉 쥔 채 물줄기를 최대한 멀리로 쏘아 보냈다. M60 기관총을 연발로 '다다다다'쏘듯이. 약제 압력에 밀려 가지가 휘어지고 바로서기를 반복했다. 사격장에서 명중한 표적이 넘어갔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듯이. 통쾌한 느낌이다.


더운 열기를 이렇게라도 멀리 쏘아 보낼 수만 있다면 좋겠다.


한여름 무더위에 농약을 살포하는 일은 과수 농가에게 진짜 만만찮은 일이다. 이는 병충해와의 전쟁이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야 할 싸움과도 같다. 싸움을 승리로 끝내기 위해서는 이 더위쯤은 반드시 견뎌내야 한다. 이 순간 사과나무의 병충해들조차도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11월 수확을 앞두고 적어도 8월까지는 이들과 계속 싸워야 한다. 거의 매주 한 번씩 이 전쟁을 치러야 한다. 병충해도 주어진 생명인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막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사과나무와 사과열매를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다.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병충해들에게 사과나무와 사과열매를 모두 내주어야 한다. 병충해와 나와의 싸움은 지키느냐 뺏느냐다. 약육강식이다.


우리 밭 옆에 살고 있는 손대표네 창고에 고양이 세 마리가 살고 있다. 엄마, 언니, 아기 고양이다. 셋이서 특히 막내 아기 고양이가 정말 재롱둥이다. 나를 포함 근처 농부들 여럿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기 고양이가 제 언니 고양이와 숨고 딩굴고 나무에도 오르는 등 여러가지 재주를 부리는 것을 보고 모두 즐거워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박수까지 쳐준다. 이때 누가 모자를 벗어 관중석을 돌면서 수고비라도 걷었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밤이 되면 고양이들이 자고 있는 창고 근처로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는 너구리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수상한 동물이 있다고 한다.


엄마 고양이는 그동안 수차례 새끼를 낳았다. 거의 3개월에 한 번 꼴이다. 그렇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개체는 손에 꼽을 지경이다. 작년에 난 언니 고양이도 셋 중에 살아남은 그 하나다. 언니 고양이는 뒷다리를 심하게 절고있다. 가다가 쉽게 주저앉으며 잘 넘어진다. 다른 강한 동물에게 잡혀가다가 심하게 물린 탓이다. 살아남았지만 야생에서 버티기에는 여전히 약한 몸이다. 다 자라서 시집갈 정도가 되었음에도 최근에 또 한차례 물려갈 뻔했다는 것이다. 목덜미에 새로 물린 자국이 선명했다. 이 언니 고양이가 앞으로도 잘 살아남기를 바란다.


막내 아기 고양이조차도 셋 중 살아남은 하나다. 다른 두 마리는 쥐도 새도 모르게 다른 동물들이 와서 물어갔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속상하고 마음 아파할 때마다 옆집 손사장은 본인도 처음에는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내보니 약육강식의 자연의 법칙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동네 어떤 한 아주머니가 하루는 날 잡아 고등어를 구웠다. 다음날 여러 마리의 고양이 사체가 마을 이곳저곳에서 발견이 되었다.

이 아주머니는 채전밭을 가꾸고 있었다. 밭에 심어놓은 채소를 고양이들이 와서 파헤치자 피해를 입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고양이들을 없애야 되겠다는 마음을 몰래 품었다. 그리고는 고등어를 구웠다. 거기다가 독성 농약을 묻혔다. 그리고 밭에다 조용히 갖다 놓았다.


인간적으로 사람이 동물들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을 혐오한다. 그러나 자연계로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며 합당한 약육강식이기에 어떻게 해야 옳은지 나로서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정글의 사자가 식사하고 있는 것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그들이 먹는 것이 다름 아닌 다른 동물의 살과 피다.


인간들끼리는 서로 도우고 살피며 사는 것이 당연하거니와 동물들에게 조차 사랑을 베풀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까.


7월 넷째 주 무더위에 농약을 살포하며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생각난다.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한잔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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