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잘 차려진 밥상을 본다. 수만 가지 음식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모든 음식이 다 군침이 돌게 한다.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기뻐 탄성을 지른다. 이 많은 음식을 해내느라 오랜 시간 주방의 요리사는 뜨거운 열기를 견디고 끓는 물에 손을 데이고도 아직 병원에 가지 못했다.
서울에서 아들이 온다는 이야기를 엄마가 들었다. 아들은 내려와 엄마가 오랜만에 차려주신 제대로 된 닭백숙을 잘 먹었다. 그리고 용돈을 드리고 바쁘다며 하루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엄마는 자식 며느리 잘 먹이고 싶어 아픈 몸을 이끌고 읍내에 가서 장을 봐왔다. 벌써 몇 년째 허리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다른 병까지 겹쳐서 서랍 안에는 약봉지가 종류를 모를 정도로 쌓여있다. 병원 한번 가고 싶어도 혼자서 가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 안에서 한 꼬마아이가 천방지축으로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있다. 아빠로 보이는 남자는 전혀 아이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참다못한 한 사람이 아이 아빠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아이 아빠는 그저 죄송하다고 할 뿐이다. 그러면서 양해를 구했다. 병으로 입원해 있던 아내의 사망연락을 받고 곧바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 가는 중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그제야 잠잠해졌다.
과자를 만드는 공장의 한 직원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앉아 불량품을 골라내는 작업을 십 수년째 하고 있다. 그는 이 작업에서 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생산방식을 설계하고 도입한 직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기에 불량품을 골라내는 직원의 일자리가 생겼고 매월 봉급이 나왔다.
직장에 다니고 있을 무렵 찾아오시는 고객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회의 때마다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고객 중 누구는 간밤에 심한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기분전환으로 옷을 사기 위해 넣고 있던 적금을 깨러 올 수도 있다. 혹은 학교 가기 싫다는 사춘기 자녀를 달래고 달래서 겨우 학교에 보내놓고 아들 이름으로 통장하나 만들려고 내방한 사모님도 있을 수 있다.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된 것이 아니다. 저마다의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다.
사과밭에 농약은 그냥 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여름 푹푹찌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새벽에 나와야 한다. 얼마나 힘들고 부담되든지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이룬다. 그야말로 바짝 긴장모드다.
또한 분무기도 언제나 완벽하게 작동되어 주는 것도 아니다. 호스 연결 잠금나사가 갑자기 풀려버리는 바람에 약제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졸지에 온몸으로 농약 흠뻑쇼를 맞는다. 약친다고 약만 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인 결과들이 전부 녹아들어 있다.
알고 있는 어떤 한 사람은 보기에는 잘 나가고 있고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몇 달 전 사랑하는 외동딸이 20층 아파트 창문을 뛰어내렸다.
어떤 사람은 졸지에 아내와 이혼했다. 친구들과 야유회 간다더니 바람이 난 것이었다. 그들은 당일 같은 골프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바로 앞팀에서 아내는 바로 뒤따라오는 팀에 남편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매스컴을 통해서 잊을만하면 접하곤 하는 연예인의 갑작스러운 죽음들. 그들의 삶을 황폐케 하는 이유 즉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괴로움과 절망이 그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동네 이웃 동생집 고양이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바로 옆에서 논다.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기도 하고 제법 높은 나무에도 올라간다. 솎은 사과 열매가 떨어질 때 하필 머리를 콩 맞기도 했다. 미안하다.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일손을 잠시 멈추고 손 내밀어 쓰다듬어주면 그대로 살며시 앉는다. 어떤 마음으로 왔을까. 너는 무얼 믿고 나에게 온 거니? 단순히 간식 주는 사람으로만 여기고 있지 않을 것이다. 기대고 의지하고플 정도로 믿음이 쌓였을 것이다. 나는 시골에서 이 아기고양이와 소통하며 산다.
모두 고만고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말 못 할 사연들,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세상에는 차고도 넘친다. 겉으로의 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안으로는 저마다 엄청난 인생이 줄기에 매달린 감자알처럼 줄줄이 매달리고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밭으로 가서 풀을 뽑고 사과열매 솎아내고 사과열매 무게로 아래로 쳐진 가지를 받쳐주거나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는지 누구와 통화하며 위로받고 힘을 얻고 있는지 또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어떤 속생각을 품고 사는지 꿈은 무엇인지 어떻게 이루어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조차도 이렇게 남들이 알지 못하는 모습들이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하물며 다른 이들이야 오죽할 텐가.
조금은 더 숙이고 동정적인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쉽게 판단하고 살아왔던 것들에 대해 작게나마 빚을 갚으며 남은 인생 살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