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스 대왕은 기원전 8세기 경에 쓰인 이사야서 성경의 예언(이사야 45:13)대로 바빌론을 함락시키고 정복한 후 이스라엘과 유다 민족을 다시 본래의 고향 땅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기원전 6세기 경의 일이다.
포로로 사로잡은 채 자기 나라로 끌고 가는 경우는 많지만 포로 된 자들을 해방시켜 주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그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관용의 제왕이다. 관용은 상대방을 극진히 배려하는 행위이다.
십자군 전쟁의 대항마였던 쿠르드족 출신 이슬람 살라딘도 내가 아는 관용의 사람이었다.
사람의 목숨은 누구에게나 귀하다. 하나뿐이다. 그리고 목숨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참으로 제한적이다.
기원전 200년대 중국 한나라에 한신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부하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장수였다. 어느 날 그가 일개병졸의 상처에 입을 대어 고름을 짜냈다. 이 모습을 본 병졸의 어머니는 내 아들이 곧 죽고 말겠구나 하면서 크게 탄식을 했다. 이 아들은 얼마 후 한신이 이끄는 전쟁터에서 주저 없이 선봉에 섰다가 기어이 하나뿐인 목숨을 잃었다.
이 병졸처럼 목숨조차 아깝지 않을 정도로 존경할만한 사람이 있는가. 스스로 혼자 잘 나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얼마든지 있다.
고레스는 군사들에게 많은 전리품을 나누어 주는 것에 대해 자기 재산을 쌓는 것보다 더 기뻐했다. 그는 돈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고 여겼다.
어느 날 그는 동맹군의 장수와 내기를 했다. 둘 중 누가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내기였다.
그 장수는 자기 소유의 많은 재산을 자랑했다. 고레스는 대답대신 바로 친구들에게 전령을 띄웠다. 보낸 편지는 긴급하게 큰 자금이 필요한데 친구로서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령이 되돌아왔을 때 받아 온 편지를 고레스 자신은 읽지도 않았다. 그는 그 편지들을 내기를 걸었던 장수에게 내밀었다. 고레스의 친구들은 모두 하나같이 큼직 큼직한 금액을 썼다. 그리고 그것을 곧바로 보내주겠다고 쓰여 있었다. 친구들이 보내 주겠다고 한 금액은 상대 장수가 가진 재산보다 훨씬 많았다.
놀란 장수에게 고레스는 말했다.
'돈은 가지고 있으면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비록 많이 가지지 않았더라도 도와줄 그만한 친구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부자다. 나누고 도와줄 친구들이 가장 안전한 돈 보관처다'
고레스의 친한 장수 한 사람이 신분이 높고 부자인 집안의 어여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고레스에게 말했다. 고레스가 그 고귀한 여인을 아내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재산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당시 옛날에는 결혼 지참금 제도가 있었다. 이 물음에 장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자기가 그 여인의 집안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것이 고레스의 의자 위에 있다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왜냐하면 폐하가 나의 친구이기 때문이죠."
그는 진심으로 고레스를 따르며 친구로 대했다.
고레스 대왕은 메디아, 리디아 그리고 앗시리아를 멸망시켰던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대제국 페르시아를 열었다. 수많은 전쟁에서 그는 적을 단순히 적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살상을 가하며 싸우려고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각 나라의 왕들은 그들의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이웃나라에 대한 침략과 약탈을 일삼았다. 넓은 땅과 수많은 백성들 그리고 엄청난 전리품은 그들 나라의 부와도 직결되었다.
그러나 고레스의 신념은 항상 동일했다. 지배자 즉 왕이 그의 백성보다 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왕이 악하면서 백성들을 잘못했다고 불러 함부로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 일인가 하고 반문했다.
야욕을 품은 왕들이 그들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싸우러 나올 때 고레스는 싸움을 하기 이전에 그들에게 먼저 물었다. 싸워서 모든 것을 잃고 파멸로 갈 것인지 아니면 백성들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정복당한 땅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왕보다 고레스를 더 칭송하고 따랐다. 고레스는 땅을 이루고 살아가는 백성들과 선하게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통치자들에 대해 평화와 안녕을 베풀었다. 휘하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일일이 찾아가서 물었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서로에 대해 예의 바르고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고레스를 믿고 따랐다. 때문에 싸움에 이기면 의례히 벌어지는 무자비한 약탈은 있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전쟁의 결과물 즉 전리품들은 참전한 이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고레스의 휘하에 고브리아스라는 한 장수가 있었다. 그는 곱게 늙은 외모의 앗시리아 사람이었다. 원래 그는 비옥한 한 성읍의 주인이었다. 일천마리의 말이 있어 앗시리아 왕에게 수시로 바치는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고레스를 찾아왔다. 자기 자신을 부하로 받아주고 앗시리아와 싸울 때 같이 나가 싸우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는 원래 용감하고 잘생긴 아들이 있었지만 앗시리아 왕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 날 아들이 왕과 같이 사냥을 나갔다. 큰 곰을 발견하고 왕이 먼저 쏘았다. 그러나 맞추지 못했다. 그러자 고브리아스의 아들이 쏘아서 곰을 쓰러뜨렸다. 이어서 나타난 사자도 그러했다. 왕은 맞추지 못했지만 그 아들은 쏘아서 사자를 넘어뜨렸다. 왕은 불길처럼 타오르는 시기심과 질투심 그리고 모멸감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곧바로 창을 날렸다. 창끝은 그 아들의 가슴에 날아가 그대로 꽂혔다. 용감하고 잘생겼던 아들은 그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고브리아스 노인은 분하고 원통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비록 적이지만 들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고레스를 믿고 드디어 찾아오게 되었다.
어릴 적에 많이 읽었던 위인전들이 떠오른다. 모두가 나라를 구한 존경할만한 분들이었다. 왕이고 장군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도 있고 장군도 있고 정치인, 스포츠맨, 연예인 등 알려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존경하고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금은 학교 선생님들마저 존경받지 못하는 그런 시대다.
어떤 일자리가 있어 찾아갔더니 첫 만남 임에도 일꾼 취급하듯 가차 없이 함부로 대하는 대표가 있어 놀랐다. 배려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따르는 직원들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여전히 눈부시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사람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눈물의 결과 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위치에 있다면 모두가 쉬어갈 수 있도록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타락한 고대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유황불 멸망을 자초했다. 義人 열 사람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10이라는 숫자는 그 당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최소의 숫자 단위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조차도 하나님께 그 이하의 의인이 있다는 핑계를 더 이상 내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 혼자 잘나서 되는 일이 절대로 아닌 것이다.
고레스의 위대함은 전쟁에서 싸워 이기고 수많은 영토를 차지한 것에 대해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는 관용의 정복자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품을 줄 안 사람이었다. 사적인 욕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위대한 군주였다.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나서도 그를 향해 각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함께 하기를 원했다.
대영박물관에 소장 전시 중인 키루스 실린더(고레스 원통)에 고레스 칙령이 고대 설형문자(쐐기문자)인 아카드어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성경에 나오는 유대민족의 해방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축을 위한 지원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I am Cyrus" 나는 키루스(고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