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판테아였다. 매우 아름답고 기품 있는 부인이었다. 고결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적국에 사로잡힌 바 된 몸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남편과도 헤어진 상태였다. 남편이 잠시 동맹국인 타국으로 전쟁동참 요청을 떠난 사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BC 6세기 말경 메디아는 앗시리아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었다.
왕명에 의해서 그녀를 곁에서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지킨다는 의미보다 보호하고 돌보아 주도록 명령을 받은 그였다. 그는 왕이 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부인의 아름다움과 고운 마음씨 그리고 기품에 대해 왕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는 절대 자기가 맡은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자기처럼 고결하고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마음속으로 돈과 좋은 말(馬)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를 바랄지라도 그 모든 것이 올바른 것의 한계를 넘지 않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선언하듯 말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왕은 근심 어린 눈빛을 친구에게 보내며 그 미인에게 절대 눈길을 오래 두지 말 것을 권고했다. 불이 그것에 닿는 사람만 태우듯이 아름다운 여자는 멀리서 바라볼지라도 어느새 남자의 마음에 들어와 불을 지피고 열정으로 타오르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부인의 아름다움과 고운 마음씨 그리고 넘치는 기품을 날마다 가까이하면서 이 남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 부인에게 깊이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필사적인 사랑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동안 남자는 왕명을 받들어 부인을 극진히 대해 주었고 부인 또한 남자가 자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고맙게 여겨 하녀들을 통해 차와 음식을 준비해 주었다. 그 남자가 병들었을 때는 필요한 약을 구해 주며 손수 정성껏 돌보아 주기도 했다.
이 남자는 이러한 부인을 향해 나날이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러나 부인은 먼 곳에 가있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이 남자가 공식적인 일로써가 아닌 개인적인 사심으로 다가올 때는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왕의 친구인 이 남자와 왕과의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자기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었다. 때로는 부인에게 사랑을 얻지 못하면 물리적인 힘이라도 사용하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불안해진 부인은 결국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보호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친구인 그 남자를 불렀다. 그리고 엄중히 경고했다. 그 남자가 수치심으로 울면서 죽을 것을 두려워하자 왕이 또한 위로해 주었다. 신(제우스 신을 포함한 그리스 신들)들도 사랑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그리고 왕 자신도 만약 아름다운 여인 곁에 남겨졌을 때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을 정도로 의지력이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그를 그 자리로 보낸 왕 자신도 책임이 있음을 밝혔다.
판테아는 왕에게 늘 감사했다. 왕의 경건심과 자기 절제력 그리고 자기와 같은 포로 된 사람들을 위한 깊은 배려는 비록 적국이지만 이 땅에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판테아는 왕에게 자기 남편을 불러올 수 있도록 본국 앗시리아 왕이 모르게 편지 쓰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간의 정황을 아내의 비밀스러운 편지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된 그녀의 남편은 최상의 기병전력 약 1천 명을 데리고 본국 앗시리아가 아닌 적국 메디아의 왕에게 왔다. 그리고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왕을 기쁘게 할 것을 다짐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운명에 처해있던 이들이 왕의 배려에 힘입어 재회할 수 있게 되자 판테와와 그의 남편 아브라다타스는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남편 아브라다타스는 즉시 왕이 치르고 있는 전쟁터에 참가하기를 결정했다. 적장 크로이소스가 이끄는 리디아와 이집트 등의 연합군을 상대로 한 전쟁이었다.
(리디아는 오늘날 튀르키예가 위치한 아나톨리아 반도 중서부 전역을 차지한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개 교회 중 사데 교회가 이 지역의 수도 사르디스에 있었던 교회이다.)
판테아는 남편을 위해 그녀의 남은 전 재산을 털어 금으로 만든 흉갑과 투구 그리고 손목 보호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발까지 덮는 자주색 튜닉과 자주색으로 물들인 깃털도 마련해 주었다. 남편에게 갑옷을 입혀주며 판테아는 알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남편에게 당신은 나의 가장 귀한 보석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전차에 올라타는 남편을 향해 자기 목숨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바로 자기라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을 향하여 당신과의 사랑을 두고 맹세하건대 당신이 용감한 군인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면 불명예스러운 사람과 함께 사느니 당신과 함께 무덤 속에라도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그럴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녀는 남편에게 그동안 왕에게 많은 감사의 빚을 졌고 전쟁포로로 있을 동안 노예나 불명예스러운 이름의 자유민으로 두지 않고 그의 형제의 부인처럼 대해 준 것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을 바라며 최고의 진실한 친구를 얻게 될 것이라고 왕에게 약속했던 사실을 알려 주었다.
판테아의 남편 아브라다타스는 부인 판테아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판테아에게 훌륭한 남편이 되고 그들 부부에게 명예를 베푼 왕에게 최고의 진실한 친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전차에 올랐다. 미처 작별의 입맞춤을 못한 판테아는 남편의 전차 문에 입맞춤을 하며 승리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었다.
판테아의 남편 아브라다타스는 가장 강력한 적의 밀집전투대형을 향해 100여 대의 전차를 이끌고 돌진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진 적의 밀집전투대형을 최후까지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쌓인 시신과 온갖 파편들이 기어코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전차는 튕겨지고 그와 같이 돌격하던 동료들이 밀집대형의 이집트 적군으로부터 포위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살육을 면치 못했다.
왕이 전쟁에서 승리 후 적장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를 붙잡았다. 그리고 주위를 향해 판테아의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한 보좌관이 "폐하 그는 죽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모두가 겹겹이 쌓인 밀집대형을 피해 갔지만 그와 동료들은 돌격하다가 모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판테아는 남편의 시신을 직접 찾아 마차에 실어왔다. 그리고 죽은 남편의 얼굴을 곱게 치장해 주고 고개를 양 무릎사이에 묻은 채 바닥에 그대로 가만히 앉았다. 시신을 묻기 위해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이 이 슬픈 현장으로 달려왔다
왕이 도착하자 판테아는 남편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자기 책임이라고 말했다. 왕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주도록 자신이 남편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자기에게 닥칠 일보다 오직 왕을 기쁘게만 할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왕이 같이 울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자기를 위해 죽은 자의 부인에 대한 동정심으로 가득 찼다.
판테아는 남편에 대한 애도를 더 하고 싶다며 모두에게 물러가 있도록 했다. 그녀의 곁에는 유모만 남았다. 그녀는 유모에게 자기가 죽으면 남편과 '같은 덮개'로 덮으라고 지시하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지니고 있던 단도를 꺼내 단숨에 제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남편의 가슴 위에 머리를 댄 채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육체적인 사랑만이 유일한 사랑이 될 수 없다. 비록 적국의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가 되기 전 가졌던 귀한 신분에 맞게 명예를 잃지 않도록 자기를 존중해 주고 배려해 준 왕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았다. 반드시 갚아야 할 빚으로 알고 이들은 끝까지 함께하며 나아갔다. 이것이야 말로 삶을 빚진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이들이 보여준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다. 가장 귀한 예의이고 태도이고 반응이다. 구걸하거나 구차하지 않는 존귀한 삶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품격을 더욱 높여준다.
판테아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과 더불어 목숨으로 한꺼번에 그 모든 빚을 갚았다. 그리고 이들은 짧고도 고귀한 사랑을 완벽하게 완성하였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승리자이다. 이것이 이들의 인생이 끝나서도 사람들과 역사 앞에서 영원히 빛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