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아기집
8월이 되자 사과 열매는 어른 주먹이상으로 자라고 있다. 농사용어로는 '비대'해지고 있다고 표현한다. 사과 열매가 커지면서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나뭇가지는 자꾸만 땅을 향해 늘어진다. 점점 더 굵어지게 되면 아예 바닥에 닿을지도 모른다. 땅에 닿은 사과는 상처가 나기 때문에 상품성이 사라지고 만다.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지대를 사용하여 미리 가지를 받쳐 주어야 한다. 지지대는 "Y"자 형태의 고임목을 사용한다.
지난주에 이미 두 가지 방법으로 사과나무를 고정시켜 주었었다.
한 가지 방법은 고임목을 써서 가지를 받쳐 준 것이고 또 한 가지 방법은 비닐 끈을 사용해서 아래로 쳐진 가지를 다른 윗가지에 묶어서 위로 들어 올려 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주 내려와 보니 모두 허사가 되어 있었다. 야무지게 해놓지 못한 탓이다. 다 담시리(경상도 말 꼼꼼히) 했어야 했는데 그야말로 대충대충 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고임목으로 받쳐 놓기만 하면 바람이 불어 조금만 흔들려도 가지는 고임목에서 이탈하고 만다. 그리고 줄을 묶어 고정시켜 놓았던 가지조차 끈이 풀려서 가지가 다시 아래로 처져 있었다. 나름 땀 흘리며 어렵게 한 작업인데 초보자라 방법을 모르고 요령이 없었던 탓이다.
밭에 나와 답답한 마음에 고민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집안 동생이 무슨 일인가 하고 보러 왔다. 그리고 내가 해놓은 일을 보더니 '이래서는 안 된다'며 나뭇가지를 고정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었다.
고임목을 할 때는 고이는 부위에 끈으로 반드시 나무와 꽁꽁 묶어 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고임이 어그러지고 만다. 그리고 끈은 낡았거나 단단히 묶기 어려운 것을 피해야 한다. 낡은 것은 금방 줄이 터져 버리고 두꺼운 것은 제대로 묶이지 않아 가지가 이리저리 몇 번 흔들리면 쉽게 풀려 버린다. 이랬으니 같은 일을 두 번씩이나 해야 하는 수밖에.
창고 뒤쪽 이것저것 쌓아 놓은 데서 쓸만한 끈을 찾았다. 부모님 계실 때 사용하시던 것이다. 그러나 끈이 조금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딱딱하면 잘 묶이지 않는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버리기도 아깝고 대안이 없어 써보기로 했다. 감겨있는 다발의 양이 많아서 통째로 들고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용할 만한 양이 되기까지 감긴 끈을 길게 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뭐지 하고 있는데 눈앞으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하고 뛰쳐나갔다. 뭔가 느낌이 왔다. 몇 달 전 흰 고양이 한 마리가 배가 불러 있었는데 요즘은 보이지 않아 궁금하던 차였다. 그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는 이 구석진 곳을 찾아 새끼를 낳고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나 싶어 끈 다발 뭉치 뒤쪽을 좀 더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솜처럼 하얀 털이 삐어져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쫑긋 솟아 있는 작은 귀도 보였다. 다른 한 마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겁을 먹었는지 소리도 없이 미동도 없이 죽은 듯이 그대로 얼음이 되어 있었다.
상황 파악이 되자 나는 풀고 있던 끈을 그대로 두고 뒷걸음질 쳐서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도 모르게 그만 새끼 고양이들의 보금자리를 건드린 것이었다. 나로 인해 놀랐을 새끼 고양이들한테 미안했다.
그러고 보니 가끔씩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어디선가 왠지 새끼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했다. 그 소리가 너무 작아서 다른 곳이겠거니 여겼다. 그런데 설마 여기일 줄이야. 나무를 묶어야 하는 끈은 어떤 것을 써야 할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차를 몰았다. 그리고 15분 거리 면 사무소가 있는 마을 철물점으로 갔다. 거기서 끈을 새로 샀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히려 더 나은 끈을 구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천으로 된 질긴 과수원용 끈이었다.
고양이 새끼들이 다 자라고 그들이 먼저 보금자리를 떠나기 전에는 당분간 그 근처에는 얼씬도 말아야겠다. 새 생명들이 보금자리에서 자랄 동안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얼마 지나고 나면, 가을쯤 되려나, 그때쯤 우리 집을 찾아오는 여러 고양이들 중에 오늘 나로 인해 놀랬던 어린 새 식구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궁금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 서울에서 이 권사가 보내 준 간식용 참치 닭고기 캔 선물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