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21

어머니의 鄕愁

by 장현수

집뒤 텃밭에서 쪽파를 한움큼 뽑아왔다. 그리고 양지쪽을 향해 벽을 기대고 앉아 하나씩 까기 시작한다. 익숙한 자리 익숙한 모습이다. 어머니가 하셨던 그대로다. 다른 자리도 많지만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늘 앉으셨던 그 자리를 고집스레 잡는다.


따온 사과를 고르고 망에 넣어 박스에 담아 택배를 보낸다. 창고 들어서면 바로 그 일하는 자리다. 어머니가 늘 앉으셨던 그 자리. 동그랗게 만든 작은 쿠션은 때가 묻어 꼬질꼬질하지만 그대로다. 거기 앉아 오랫도록 일하셨다. 이제 그 자리는 내 차례가 되었다.


보일러 기름통이 있는 작은 창고에 어머니가 쓰시던 호미가 그대로 있다. 손잡이가 낡았다. 호미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있다. 그 호미를 들고 밭을 파고 고랑을 낸다. 그리고 어머니가 하시던대로 무엇인가 심어본다. 콩밭도 보리밭도 이 호미하나로 어머니의 손을 모두 거쳤다.


거실 소파에 앉는다. 어머니가 늘 자주 앉으시던 그 자리다. 일하고 오신 후 잠시나마 소파에 기대 피곤한 몸을 맡기곤 하셨다. 오늘 나조차도 어머니의 그자리에 그렇게 앉아 본다. 그리고 소파에 기대어 어머니처럼 온 몸을 맡긴다. 주변은 고요하고 마음은 평온하다.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계신 어머니.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문이 덜컥하고 열린다. 그순간 열린 문 뒤로 따라온 바람 한줄기가 어머니의 얼굴을 스친다. 어머니가 잠시 눈을 뜨신다. 그리고 내다보니 아버지다.


"머하노~ 물한그륵 퍼뜩 떠다도고 보자. 지게 한 짐 지고 날랐더니 목이 마르데이"


"야아(예)~"하고 대답하고 어머니가 일어서신다. 그리고 부엌으로 곧장 향하신다.


갓등 밭으로 나가는 길에 장미꽃 넝쿨이 우거진 집대문이 있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 집짓고 멋내느라 꾸며놓은 것이다. 시골 이곳에 그런 집이 몇 집 더 있다. 집안에 잔디밭도 있다. 심지어는 풀장을 만들기도 한다. 화단이 예쁜 집도 있다. 오밀조밀 희고 검은 조약돌로 마당을 하기도 한다.


장미꽂 대문 앞 바윗돌에 어머니가 앉아 잠시 숨을 고르셨다. 세월이 가면서 어머니의 허리통증이 더해만 갔다. 소복소복 붉은 장미꽃송이들 앞에서 어머니는 환한 웃음을 지으셨다. "니도 앉아바라" 하며 손으로 탁탁 바닥을 털어내며 옆자리를 내주셨다.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김치~ 하며 셀카를 찍었다. 그 바윗돌. 언제나 기억하는 그때의 어머니 자리이다.


밖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고구마를 쪄내 오신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있는 고구마다. 손으로 집었더니 데일만큼 뜨겁다. 가운데를 뚝 자른다. 속이 노랗다. 한입 베어무니 달고 맛있다. 하나 먹고나서 손이 간다. 내친김에 아예 그릇을 비울 요량이다.


어머니를 따라 집뒤 텃밭에 여러 종류의 먹거리를 심고 가꾸었다.

고구마를 심었다. 줄기가 잘 자랐다. 어머니처럼 잎과 줄기를 따서 삶고 말렸다. 물에 불리면 나물할 수 있다. 굵직 굵직한 고구마를 수확했다. 호박도 심었다. 애호박도 열렸고 누렁호박도 많이 달렸다. 고추도 가지도 대파도 무우랑 배추도 심었다. 오이까지 심었는데 팔뚝만하게 자랐다.


내년에는 노랑콩을 심고 가을이면 콩잎도 따보고 싶다. 콩을 수확하면 어머니가 하신대로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볼 것이다. 어머니가 만든 두부는 쉽게 문드러지는 요즘 파는 두부와 다르다. 두텁고도 단단했다. 그리고 끼니 한번은 때울수 있을 만큼 튼실하고 야무졌다. 이웃집 0 대표가 갖고 싶어하는 붕어빵 기계사러 갈때 대구 서문시장 따라가서 기어이 맷돌을 하나 사올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밭의 큰 축이었던 아르재 밭은 사정이 달라졌다. 고종시 감나무와 대추나무들 그리고 곁에 섰던 밤나무 매실나무 두릅나무들이 베어지고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고사리가 나고 돋나물을 캐던 자리도 일체 흔적을 잃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셨지만 국가지정 등산로에 편입되면서 모두 내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땅 주인조차 더이상 어머니도 나도 아니다. 그곳을 일일이 돌보시던 어머니의 모습만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먼저가신 어머니...그럼에도 내년 봄오면 동네 인근 숲에는 여전히 뻐꾹새가 어김없이 날아들 것이다. 그리고 저미도록 또다시 저리도 울어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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