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이후

노랑이의 일상

by 장현수

연속 2주내내 영하의 날씨다. 한기가 스며들고 손과 발이 시리다. 추위에 장사없다. 햇빛마저 숨죽이고 있다. 포근한 햇살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무엇보다 바깥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눈에 익은 고양이들 걱정이 커서다. 특히 노랑이다.


연말연초 서울가느라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난 원인모를 환란으로 노랑이는 죽다 살아났다. 브라운과 초롱이는 추위까지 겹쳐 목숨마저 잃었다. 마당을 놀이터로 모이던 13마리 고양이는 후유증 탓인지 전처럼 모이는 경우가 없어졌다. 밤이 되면 초롱이 어미 할멈부터 현관문 앞에서 줄서서 간식을 기다리던 일도 이제 사라졌다. 휑한 마당을 보고 있노라면 13마리 고양이들이 붐볐을 때가 지나간 한 때의 꿈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한가득 부어놓은 사료는 고양이들이 드나들지 않으니 쉽게 줄어들지를 않고 있다. 더군다나 노랑이 어미 모닝과 여동생 흰둥이는 아예 모습을 감췄다. 노랑이와 함께 세 식구가 우리집을 터전으로 줄곧 살아 왔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살아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나머지도 그렇다. 브라운이 8월 정도에 태어난 노랑이 보다 한 달여 빨리 태어났고 초롱이는 노랑이보다 세 달정도 늦게 태어났다. 이들 야생 고양이들은 태어나서 지옥같은 겨울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이다. 한파속에 그들은 무슨일로 또 그렇게 당해야만 했을까.


모두 디아스포라가 된 이후 어떻게 노랑이만 남았다. 이제 어느정도 회복이 되어 상처도 아물었다. 털에도 윤기가 조금씩 살아났다. 그러나 노랑이는 혼자다. 같이 놀아주는 고양이가 없다. 흩어진 이후로 초롱이 어미 할멈과 파란 눈동자 페르시아(아! 페르시아 너는 앞서 간 브라운의 어미잖아~) 등이 먹이 찾아 들르긴 하지만 예전같지 않다. 하루에도 여러번 모습을 나타내곤 했는데 이제는 며칠에 기껏 한두번 정도다. 이들이 왔을때 혼자 심심하던 노랑이가 슬며시 다가가면 자리를 피하든가 위협을 가하는 소리를 내거나 급기야 앞발을 들어 공격을 시도한다. 그리고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초롱이 어미 할멈과 조우한 노랑이

줄곧 노랑이는 혼자다. 같이 있어주거나 놀아 줄 이는 나밖에 없다. 사료는 물론 간식도 챙겨주니 내게 많이 낮익은 듯 보인다. 가끔 가까이서 맞닥뜨리기도 한다. 노랑아 노랑아 뭐하니 하며 쉴새없이 노랑이와 소통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쉽게 경계를 풀지는 않는다. 분명히 내가 누구인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일하거나 가만히 있으면 내곁을 스치듯이 지나가기도 한다. 가까이 있을 때 내가 뭐라고 계속 말을 걸면 투명한 맑은 눈으로 쳐다본다. 그러다가 제 볼 일 본다고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 나간다. 그래 본들 찾아와 주는 다른 고양이도 없다. 여전히 혼자일거면서 일부러 바쁜 척하는 것인지도~


우리 집안에서 노랑이를 세번이나 잠을 재웠다. 난생처음이고 그런 유일한 고양이다. 온통 상처입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일 때 간식으로 유인한 것외 나머지 두번은 제발로 들어왔다. 나는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 두었을 뿐이었다. 밤새도록. 바깥 찬공기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노랑이는 소파에 있다 내방으로 살며시 들어왔다. 노랑이 덕분에 이불빨래를 세번했다. 큰 것 작은 것 골고루~


집을 새로 사주기 전 박스 집에 담요깔아 주었을 때는 아궁이 옆이라 나와서 혼자 불을 쬐기도 했었다. 불이 사그라들면 아궁이 가까이 다가오고 불꽃이 살아나면 멀찍이 떨어졌다. 새벽과 저녁 그리고 영하의 기온을 보이면 낮에라도 노랑이를 위해서도 불을 지폈다. 그리고 오랫도록 탈 수있는 굵은 통나무를 땠다. 긴 시간 타게하기 위해 일부러 연기 잘 빠지도록 하는 환풍기마저 꺼두었다.


그런데 요며칠 사이 달라진 게 있다. 노랑이와 창고안 새 집에서 같이 자며 놀아주는 형이 하나 생긴 것이다. 얼룩이다. 태어나기로는 노랑이보다 5~6개월 빠를 것이다. 13마리 고양이들이 모일때도 가끔씩 눈맞춤을 했던 얼룩이다. 눈을 바라보고 어디갔다 오느냐고 물어보면 멀뚱멀뚱 마주보며 내게 왜 그러냐는 투였다. 노랑이집에 얹혀사는 것을 알고 보답을 하는 건지 알 수없다.


추운 이런 날씨에 같이 살던 엄마도 동생도 없이 아직 어린 노랑이에게 한집에서 등을 기대고 체온을 나눌 형이 생긴 것은 고무적이다. 친해져서 노랑이가 얼룩이 형한테 장난을 걸기도 한다.

그럼에도 노랑이보다 더 자란 얼룩이는 집밖으로 혼자 한참 나다니다 들어온다. 그럴때 노랑이는 집에서 여전히 혼자가 된다.

햇살 아래 혼자인 노랑이

노랑이의 활동반경은 거의 우리집 담장안이다. 창고안 그리고 마당 또다시 창고안 또다시 마당이다. 누군가 집 직장 집이라더니 노랑이가 판박이다. 오늘은 어쩐지 창고 담장을 지나가더라 싶었는데 언저리 딱 거기까지였다. 더이상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창고에서 사과 선별작업을 하루종일 하고 있는 동안 노랑이 동선이 내 눈에서 크게 벗어 난 적이 없다. 다친 것처럼 왼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고 눈가가 젖어 있기도 했는데 오늘 가까이서 자세히보니 깨끗하게 나은 듯이 보인다.


그리고 많이 명랑해진 것같아 퍽이나 마음이 놓인다. 밥도 찾아 잘먹고 물도 오래 길게 잘 마신다. 맛있는 참치 간식이나 연한 닭고기 살을 내놓아도 먹을 만큼만 딱 먹는다. 나머지는 노랑이 근처에 오는 운좋은 다른 고양이 몫이다. 다른 고양이들이 노랑이 먹는 간식 메뉴를 봐서라도 노랑이와 가까이서 잘 지내 주었으면 좋겠다. 노랑이가 바깥에서 활발하게 뛰어 놀 수 있도록 아직 추운 영하의 날씨가 끝나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날들이 어서 오기만을 바란다.

한집에 살기로한 얼룩이 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