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아 너마저
작은 미뜽 밭에서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마치고 나니 해가 서산에 기울었다. 오늘은 이쯤해서 마치고 그만 들어갈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아 있는 해를 문득 바라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친 김에 가지치기 진도를 더 빼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집에 잠시 들렀다가 발길을 다시 마당방우 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구월이를 비롯해서 '새끼 고양이' 또 그의 새끼 고양이들도 보고 싶었다.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집에서 사과 택배 준비하느라 벌써 일주일도 넘게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까만 콩을 닮은 '새끼 고양이'의 어린 새끼가 여전히 눈에 선했다. 세상에 나온지 한달 여가 채 되지 않았는데 콩이 한 알 구르듯 이곳 저곳을 쪼르르 나다니곤 했다.
잠시 집에 들렀다가 나오며 그들에게 줄 맛있는 캔 간식을 하나 챙겼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난 번보다 좀더 자랐을 새끼 세 마리도 있고해서 넉넉하게 캔 두 개를 챙겼다.
밭 입구에 들어서자 말자 '새끼고양이'가 나를보고 달려왔다. 캔을 꺼냈다. 캔을 따기 전 늘 하던 방식대로 고양이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캔을 바닥에 대고 통통쳤다. 그러면 엄마 고양이 구월이가 근방 어디에서 든지 재빨리 뛰쳐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구월이가 나오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고양이 집주인이 보이지 않아 남의 닫힌 창고 문을 함부로 열어 볼 수도 없었다. '새끼 고양이'밖에 없었다. 엄마 고양이 구월이는 닫힌 창고 안에서 늘 그러했듯이 '새끼 고양이'의 갓난 어린 새끼들을 제 새끼마냥 끼고 돌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럴지도 몰랐다.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데 '새끼 고양이'가 와서 옆에서 놀아 주었다.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기도 하고 발라당 뒤집어 눕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배를 만져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전에 보다 더 내 곁에 많이 머물고 있는 '새끼 고양이'더러 걱정하며 말했다. 밥값 이제 충분히 했으니 돌아가서 네 새끼들 젖물리고 돌보라고. 알아들은 것인지 애앵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전에 없이 이 소리를 혼자서도 가끔씩 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나 낯선 외부 침입자가 얼씬거리고 있지 않나 하고 여겨서였다.
날이 어두워졌다. 집주인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내곁에 붙어 있다시피 하는 '새끼 고양이'를 안았다. 그리고 창고 문을 살짝열어 디밀고 들여보내 주었다. 그리고 문을 닫으며 안녕 잘자~내일 다시 만나자하고 인사하고 돌아섰다.
다음 날 즉 어제였다. 밭에서 가지치기 하기 전에 캔 간식을 꺼내 두드렸다. 새끼 고양이가 나왔다. 구월이는?아직도 어린 손주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을려나~ 다시한번 캔을 땅에대고 탕탕쳤다. 잠잠했다. 또다시 탕탕~
캔 간식을 혼자서 다 먹고 난 '새끼 고양이'는 여전히 일하는 내 곁으로 찾아와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하마터면 밟힐 지경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새끼 고양이'가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반가워해서인 줄로만 알았다. 애앵애앵하며 우는 소리를 내는 것에도 무관심했다. 다른 때완 조금 다르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런가보다 했을 뿐이었다.
집주인 0대표가 나와 마찬가지로 가지치기 하다가 식사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닫혔던 창고문을 활짝열어 놓았다. 일손을 멈추고 인사도 나눌겸 0대표를 찾았다. 그러면서 곁눈으로 고양이들이 머무는 데를 둘러 보았다.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0대표한테 물었다. 어제도 왔었는데 구월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캔 간식 주면 달려 나오는데 왜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다른 때 같았으면 "어디 마실 나갔겠지요~ 온 들판이 다 제 집인걸요" 할텐데 0대표의 입에서는 아무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0대표가 말했다. "집나간지 5일 되었어요. 혼자만 나간게 아니라 새끼의 새끼, 손주 고양이들도 다 데리고 한꺼번에 나갔다 아임미꺼."
그러면 겨우 한번 본 콩이도~ 충격이 왔다. 구월이는 이 집에서 7~8년을 지내온 고양이었다. 이집의 터줏대감이었다. 그런데 그조차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다니... 야생은 그들에게 무서운 곳이었다. 안전한 곳이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새끼 고양이'가 어제 오늘 왜 그랬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엄마와 세마리 새끼를 모두잃고 혼자가 되어 슬프고 외로웠던 것이었다. 또한 두려움이 커져서 안전한 곳으로 의지할 데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0대표가 하는 말. 새벽에 창고에 나오면 '새끼 고양이'가 다가 와 무릎 위로 올라 오겠다고 안간 힘을 쓴다는 것이었다. 혼자 되어 힘든 탓이었다. 의지할 곳 그리고 피할 곳을 찾는 것이었다. 일하는 내 곁에서 그렇게 오래 머물러 주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잃어버린 엄마와 제 새끼들을 찾아 부르느라 울음소리를 그렇게 자주 내었던 것이었다.
구월이가 자주 나와 있던 길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다. 야생에서 살고 있는 이 작은 고양이들한테 한시라도 위협이 도사리지 않을 때가 없었구나 하는 것을. 그들에게 삶이 곧 치열한 전쟁었다. 오늘 이 순간 내게 와서 캔간식을 맛있게 먹고 곁에서 놀아주는 것 조차도 야생을 이겨내기 위한 그들만의 처절한 생존 본능임을. 그들에게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기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도무지 안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그들의 세계다.
구월이와 손주 새끼 고양이 셋이 걱정과 달리 어딘가에서 잘 머물다가 어느날 갑자기 눈앞에 짠~ 하고 보란 듯이 다시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