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그리고 보름달을 찾아

by 장현수

카메라를 들었다. 달집 태우는 장면을 찍을 심산이었다. 현장에서 보다는 멀리서 전체 장면을 담고 싶었다. 동네 모퉁이를 돌아 우리 밭 근처로 갔다. 거기서는 강변 공터에서 달집 태우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올 터이기에.


강변 공터에 달집이 높이 세워져 있었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119소방차도 대기하고 있었다. 근동 모든 마을의 대표들이 모여 주관하는 것이었다.


정월대보름 밤 달집 태우기는 올 한해의 풍년 농사를 바라면서 마을사람 모두의 마음을 모아 행하는 지역 축제였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소나무 진액을 넣어 불을 붙인 깡통을 돌리며 쥐불놀이를 하기도하고 어른들은 징과 꽹과리 그리고 북과 장고를 치며 흥을 돋구기도 했었다.


시간이 되어 달집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불꽃이 솟아 올랐다. 설치 해놓은 스피커를 통해서는 징과 북 그리고 꽹과리 소리가 요란한 농악이 울려 퍼졌다.


셔터를 바쁘게 누르고 있는데 우리 밭 옆집 손대표 부부가 달집 태우는 현장으로 같이 구경하러 가보자며 이끌었다. 식사자리도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 부부 덕분에 처음으로 시골 고향행사를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 있었던 해가 얼마였던가. 40년이면 족하다.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 행사를 구경하며 즐기고 있었다. 달집 근처 둘러서 있는 군중들에게로 불꽃의 열기가 훅 훅 와 닿았다. 타고있는 대나무에서 '타악 타악' 마디 터지는 소리가 온 하천변을 울렸다. 때로는 불똥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튀었다. 참여자들과 구경꾼들이 몰고 온 저마다의 포터 트럭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길가로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점점 불꽃은 더욱 강해지고 어둠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노래자랑 한마당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오늘 밤 잠들기는 글렀다. 정월대보름달이 어느새 하늘 한가운데 높이 떠있다. 하루종일 잔뜩 흐려있었는데 구름이 언제 모두 걷혔는지. 개기월식과 이로인한 블러드 문은 짙은 구름에 가려 벌써 물건너갔다. 그렇지만 오늘 같은 정월대보름, 밝은 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늦게나마 부랴부랴 나섰다. 크게 찍기위해 옥상에서 600미리 망원렌즈를 최대로 당겨 보았지만 그러나 야구공만하게 나올 뿐이었다.

이래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었다. 축구공만한 꽉 찬 달을 담기 위해서는 달이 지는 새벽까지 기다려야 하겠다.

구름에 가렸다가 잠시 나타나 보인 일부 개기월식


자정이 지났다. 혹시나 하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하늘에 달은~ 예상과 달리~ 보이지 않았다. 완전일식에 들어갔나. 별이라도 보여야지 싶어 또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사라졌던 구름이 어느새 다시 온 하늘을 덮고 있었다. 어디쯤 있나 달을 자세히 찾아 보았다. 흔적이라도.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다.


밤새 구름이 걷히기를 바랬다. 새벽에 다시 은쟁반같이 밝고 큰 달, 정월대보름달을 볼 수 있도록. 구름이 갔나 있나 수시로 나가 살펴 볼일만 남았다. 결국 오늘 밤 잠은 다 잔 것 같다. 새벽 한시 지나 또 밖으로 나가보았다. 공기가 찼다. 무엇보다 여전히 달은 보이지 않았다. 제발 새벽되기 전에 구름아 걷혀라.


새벽 4시에 나가 보았다. 여전히 달은 구름에 가려 종적을 감추고 있었다. 아마도 전 하늘에 깔린 구름으로 인해 달을 더 이상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실망스러웠다. 한가닥 기대마저 놓지는 않고 있었지만. 또다시 기다려야지. 그러다가 늦은 잠에 푹 빠지고 말았다. 늦바람 무섭다더니 늦잠도 못지 않았다.


다섯시에 다시 나가보고 싶었는데 눈떠보니 다섯시 오십분. 달을 찍기에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몰려 왔다. 그렇지만 현관문을 밀치고 밖으로 급히 나왔다.


그런데 참 놀라운 일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에 달이 떠 빛나고 있었다. 구름은 걷히고 동그란 자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동쪽으로부터 밤새 옮겨 온 달이 이제 서쪽으로1/5 하늘을 남겨놓고 있었다. 구름은 이제 한점이라도 달을 가리고 있지 않았다. 온 하늘 가운데 달이 오직 그 가운데에 있었다. 렌즈에 닿으니 더욱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이윽고 달은 점차 내가 원했던, 화면 가득차게 찍을 수 있기를 원했던 바로 그 모습으로 변해갔다. 달은 지면서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지는 달을 찾아 서둘러 들판길로 나섰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곳으로 달만 보고 따라갔다. 그리고 나만의 촬영지를 찾아 갈대 숲을 배경으로 먼저 셔터를 눌렀다. 온전한 달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치기 아까웠다. 거의 1미터 길이 렌즈 그리고 그 무게를 떠받치느라 두 팔이 아팠다. 거기다가 일순간의 초점을 잡기 위해서 호흡마저 아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흔들림 방지를 위해 계속 호흡을 멈추었다. 숨이 가빴다.

들풀을 품은 달


그런데 방해꾼, 구름이 또 나타났다. 갑자기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다. 구름떼가 한순간 달의 모든 것을 뒤덮었다. 하늘 전체가 구름이었다.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구름사이 틈새라도 달이 보일 수 있기를 바랬다.


구름 사이사이 1~2초간 달이 빼꼼 얼굴을 비추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찍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이제 달도 서산으로 많이 기울었다. 달을 쫓아 끝까지 시선을 집중했다. 하늘을 온통 뒤덮은 구름이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흘러 가기를 바랬다. 그러나 구름은 서쪽하늘 전체를 뒤덮고 있었기에. 다시 걷힐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구름으로 인해 화려했던 달빛 무대의 막은 이제 내린 셈인가 싶었다.


돌아 서려는 찰나 구름을 뚫고 달이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순식간에. 급히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어두컴컴한 밤에 내내 혼자서 이러고 는 나를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그들은 무슨 생각을 까. 경상도 말로 하면 (할 일없이) '욕 본다'거나 (기가차서) '참 욕본다'고 했을지도.


달이, 지는 달이 따라오는 나를 이제서야 알고 눈치챘나 보다. 서산 너머로 지고 있는 모습을 아낌없이 내게 허락하고 있었다. 구름을 벗어난 달의 환한 모습에 황홀함이 들었고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구름을 벗어나는 달의 모습

불그스럼한 보름달 그것도 올해의 정월대보름달이 장엄하게 내 눈앞에서 서서히 지고 있었다. 그 모든 장면 하나하나를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장소를 옮길 수도 없었고 전혀 자세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달과 물아일체를 이루었다.

서서히 달이 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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