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내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1부 채식주의자, 2부 몽고반점, 3부 나무 불꽃에 묘사된 주인공 영혜의 모습은 기이하게 묘사된다. 나 또한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도대체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물론 지금 다시 그 책을 읽는다고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작가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인 영혜를 '폭력성을 밀어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다.'라고 표현했다. 1~3부에서 묘사되는 영혜는 전반적으로 힘이 없고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로 표현된다. 소설 속 영혜는 화자로 등장하지 않으며 그녀의 주변인인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모두 영혜와 대척점에 있는 관계이자 동시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영혜,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영혜가 원하는 삶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소설 속 마지막 3 나무 불꽃에 의하면 영혜는 인간이 아닌 나무가 되고자 했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해치지 않는 그런 것이 되고 싶은 나무 말이다.
주변 인물로 묘사되는 남편, 형부, 언니는 독자와 다르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영혜를 이해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직업도 있고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은 영혜의 행위를 일체 이해하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 자신의 행위(폭력)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족이라는 법적, 혈육적 틀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영혜의 행위는 및 인정되지 않았다. 영혜 또한 자신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지만 주변인을 포함하여 세상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 속 영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이고 납득 가능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신념에 의해 삶을 살아가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이 모습이 독자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는 행위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끝내 주변인들은 영혜의 모든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의 삶을 망가뜨릴만한 폭력을 저지르고 만다. (입에 탕수육을 쑤셔 넣는 행위, 예술이란 명목 아래 관계 등)
영혜는 푸르고 두꺼운 나무가 되고 싶었다. 누가 봐도 멋있다고 느껴지는 푸른 나무. 하지만 영혜는 잎사귀 하나 없는 깡마른 나무가 되었다. 아무렇지 않지 않게 그녀를 있는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다시 말해 그녀에게 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푸른 나무가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삶 안에서도 크고 작은 폭력이 난무하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폭력은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영혜의 가족은 우리처럼 평범하지만 끝내 영혜와 반대에 있는 사람이었다. 인간이고 싶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인간과 가까우면서 동시에 반대되었다. 그렇다 작가 한강은 인간의 폭력을 영혜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단순한 폭력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의 폭력이 너무 싫어서 더 이상 인간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