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게, 거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과연 누구였겠나? 결국 권력과 금력을 가진 기득권자들 아닌가. 그러하니 반대 압력이 상상도 할 수 없었네. 대동법은 전국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웠지. 내막을 알면서도 허기진 배를 채우려 안달이었네. 뿐인가, 서인이니 동인이니, 남인 북인 모두 서로 헐뜯고 자고나면 분탕질이니, 시정잡배들 하는 짓거리들과 다를 게 무엇이었나? 그 꼴이 보기 싫어 당쟁의 피해를 최소화 하고자 이항복의 의견에 따라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을 등용하는 등 탕평책으로 고루 관리를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그놈, 희대의 간사한 놈 이이첨이란 놈이 다 말아먹었지. 젊은 신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구를 죽여야 한다는 상소뿐이었고, 만인지상의 자리라 해도 말 뿐이고 허울뿐인 임금질이었네.”
광해군은 이이첨이란 말이 나올 때면 가는 턱이 떨렸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자신을 폐위시킨 서인이나 능인군(인조)보다 이이첨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보였다.
“하긴 후대세상도 별 다를 바가 없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자신들 찻값 아끼려고 하층민 목숨 옥죄는 상황이니 말이옵니다!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방금 임금의 자리는 허울뿐이라 하였사온데 그럼 창덕궁 중건은 그러했더라도 무리를 해가면서 경덕궁과 인경궁을 또다시 창건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옵니까?”
이 대목에서 광해군의 안색이 붉게 변하였다.
“아 참 그놈 집요한 구석이 있구만 그래, 대신들 꼴 뵈기 싫어서 도망치려 했던 것이네. 이제 되얐는가?”
광해군은 억울하게 유배당한 자신을 위로하고, 선정에 대한 칭찬을 기대한 것인지도 몰랐지만, 부끄럽게도 실정을 물고 늘어지는 놈에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경계인이며, 유랑민이라 여기는 놈은 광해군의 유치한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말이 빈정거리듯 튀어나왔다.
“하이고, 그리된 사연이 있었습니다. 수긍이 가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딱히 이유가 되지 못함은 전하 스스로도 잘 아시지 않사옵니까? 왕권강화를 염두에 두다가 보니 일에 선후가 바뀌신 게지요? 아니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천하의 개똥이① 랑 놀아나다 보니 개똥이 밖에 뵈는 게 없어 그리되신 것이 아니옵니까?”
아뿔싸! 결국 서로가 만나고 나서부터 노심초사했던 말이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놈은 개똥이 일만큼은 조심스레 접근을 해야 한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 나왔던 것이고, 광해군 또한 이 대화에 있어서 개똥이 만큼은 놈의 입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결국 놈은 고개를 천천히 아래로 처박았고, 광해군은 떨리는 마른 턱을 위로 치켜뜬 사연이다.
“기어이 그년 이름이 나오게 되는구만. 그래 어차피 이리된 것 속 시원하게 말해봄세. 김상궁(개똥이 김개시金介屎)이 선대왕의 성은을 입은 것은 사실이네, 또한 그년이 비방을 썼다는 것은 나도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자네 말처럼 쒝쉬한 것은 사실이지.”
이 대목에서 광해군은 지난 과거의 묘한 장면을 떠올리는 듯 얼굴이 붉어지며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반대파들로부터 왕의 여자를 건드렸다는, 폐륜이라고 공격을 받으셨는데, 진실이 무엇이옵니까? 후대 세상에는 동정표라는 게 있어 한번 불기 시작하면 벌떼같이 몰려드는 게 민심입지요!”
“그래? 음…, 솔직히 그년이 가까이 오면 가슴이 뛰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네. 가는 눈매가 꼬리를 달고, 갸름한 얼굴에 촉촉한 입술은 색이 촤르르 흘렀지. 그렇게 선대왕이 승하하시고 엉덩이 살랑대며 의도적으로 내게 접근을 하는데 건장한 내가 감당이 되지 않더구만. 그 뒤로는 그냥 상상에 맡기겠네, 알아서 생각하게.”
“결국 그리되셨습니다. 뭐 건장한 남자로써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개똥이를 감싸고 그녀에게 의존했다는 것에 대해선 뭐라 하시겠습니까? 또한 개똥이가 올린 약밥을 드시고 선조 임금께서 승하하셨다는데, 이 일을 두고 전하와 모의해서 선대왕을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이긍익②이 지은 <연려실기술>에 나와 있습니다만 이 일은 어찌된 것이옵니까?”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겐가? 이긍익이란 작자가 내 누군지 알 수 없으나 입방아 찢기 좋아하는 작자 야사 한 줄 가지고 짐을 몰아세우다니, 어이가 없구만. 내 아무리 보위가 탐이 났더라도 천륜을 저버릴 수가 있었겠는가! 그년 마음대로 취한 행동일 수 있어도, 나와함께 모의했다는 말을 부디 후대세상에서 제대로 밝혀주시게. 그러나 그년의 말을 짐이 잘 들어주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 돌이켜보면 참 후회되는 것이지만, 기실 그년이 대신들을 요리조리 주물리고 다녔으니, 당시 그년에게 대신들 정보를 입수한 것도 사실이네. 그년은 인목대비 아비 김제남과도, 뿐인가? 이이첨 놈과도 친분을 쌓고 있어 여러 정황상 내 가까이 두고자 한 것뿐이네. 더 이상은 묻지 말게. 나를 원수처럼 생각한 인목대비가 썼다는 <계축일기癸丑日記>에도 그런 내용은 없질 않는가!”
“<계축일기>를 인목대비가 쓴 것이옵니까? 저는 대비의 측근 나인이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년이 그년일세. ‘척’ 하면 삼척이고, ‘툭’ 하면 감 떨어지는 소리 아닌가?”
“흐흐 알겠사옵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내일 다시 올까요?”
“아니, 내 앞으로 남은 날이 얼마 없는 것 같으니 그냥 마무리 하세.”
“진정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럼 이제 명과 후금 사이에 줄타기 외교를 펼치셨는데, 후대세상에서는 찬반이 분분합니다. 진정으로 강홍립에게 밀지를 주어 적당히 싸우다 투항하라고 하셨나이까?”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또다시 전쟁을 치른다? 그런 개뼈다귀 같은 것들이 주둥이로 나불거릴 뿐이었지. 나약한 우리가 어찌 선봉에 서냐면서 처음 출병요구에 응하지 않았지. 걱정이 태산이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네. 그러나 결국 출병을 하게 되었는데, 짐이 대원수 강홍립에게 밀지를 내렸던 것이네.”
“당시 조정대신들 분위기는 어떠했나이까?”
“비변사를 중심으로 조정에서는 임진왜란 때 도움을 준 명나라에 보은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늦은 감이 있으나 즉각 출병을 서둘러 명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들이 분분했지. 그러나 생각해보게, 명은 기울어가는 해라면 후금은 떠오르는 태양이니, 이 나라 이강토를 다시 외세의 발굽 아래 짓밟히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결국 파병을 하게 되었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후금의 그늘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느릿느릿 행군하고, 후금의 군사를 만나게 되면 얼마간 전투를 벌이다 투항하라고 한 것은 사실이지. 명나라 연합군과 함께 했으니 명의 눈치도 있어 어찌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할 수 있었겠는가?”
여기서 광해군의 눈은 의지에 찬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가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놈을 바라보았다.
“후에 강홍립이 후금에 끌려가 십여 년 동안 조선에 각종 군사정보를 전해준 것으로 아는데, 어찌하여 정묘·병자호란 때 그리 아작이 난 것이옵니까?”
“진정 몰라서 묻는 것인가? 생각해보라, 이이첨을 비롯한 비변사는 적국에 항복한 주제에 주는 정보는 더럽다고 정파를 초월하여 분개하던 대신들이 어찌 한심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결국 그 썩을 이이첨놈도 죽임을 당했지만, 서인 놈들이 반정을 일으켜 짐을 몰아내고 능양군(綾陽君)을 세웠는데, 한심하게도 친명배금정책이라니? 정묘호란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지. 반정이란 허울 좋은 이름에 떠밀려 보위에 오른 능양(인조)의 삼전도 치욕은 어찌 설명하려하는가? 대갈통에 피가 줄줄 흘렀다지? 흥 썩어빠진 대명률? 그렇게 혼이 나고도 의리니 뭐니 해서 철없는 백면서생들이 주자학이니 뭐니 해서 떠들어대니 또 당한게지. 반성을 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실력을 키울 생각도 없이 주둥아리만 나불거린 결과를 보면 잘 알지 않겠나? 내 그리 실리외교를 입에 올렸건만 저들이 하는 짓이란 쯧쯧쯧…….”
“그러나 반대로 명을 버리고 후금을 택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실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입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백성이 죽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50만 가까이 끌려가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삶을 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또한 어찌어찌하여 살아서 돌아왔다고 해도, 순절하지 못하여 조상에 대죄가 된다는 기막힌 현실이 줄어들지 않았겠느냐. 내피곤하니 잠시 쉬다가 다시 나누세.”
광해군은 길고 긴 장탄식처럼 말을 잇고는 긴 대화에 피곤해 눈을 감고 잠시 회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리고 움직임 없이 가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놈은 전하께서 피곤기와 따뜻해진 방바닥 덕에 잠에 든 것이라 생각하고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사라졌다. 방안은 전처럼 어두움만이 가득할 뿐이었고, 작은 몸체하나 아랫목에 조용히 누워있었을 뿐이었다.
*
며칠간 광해군은 꿈을 꾸지 않고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때문에 놈도 광해군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해했으나, 광해군의 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하의 꿈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현듯 전하와 마지막일거라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꿈을 쫒았다. 그렇게 들어선 전하의 방은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하 오늘도 꿈을 꾸셨나이까?”
“요 며칠간 달게 잘 수 있었네. 그런데 오늘은 어찌하여 그대 낯빛이 슬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놈 안부에 답하는 광해군의 가느다란 음색에 정겨움이 묻었다. 광해가 억지로 일어나려 몸에 힘을 주니 놈이 다가와 등을 바치고 천천히 일으키는데 놈의 눈에 눈물이 글썽 고이는 것을 보았다.
“허어~ 그 무슨 썽글한 꼴을 보여 짐의 맘을 스산하게 만드는 것인가?”
“예, 전하 그동안 미천한 후손이 전하의 심기를 어지러이 했사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놈은 이제 이렇게 전하의 용안을 뵙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습니까. 근 보름간 전하와 지난 역사를 논했으나 그러함에도 전하 가슴에 눌린 원의 덩어리들을 다 풀어 드리지 못했으니 또 어찌 애닳지 아니하며, 후손들의 오해를 풀만한 사연을 미천한 머리로 다 헤아리지 못했으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 오리까! 또한 ‘조’나 ‘종’이 아니라 ‘군’이라며, 묘호조차 갖지 못한 군주란 불명예 또한 바뀔 일 없어 세자시절 불리던 그대로 이어야 할 것이니, 또 어찌 원통하지 아니하다할 수 있겠나이까!”
“그대는 심히 염려치 말라. 후대세상에서 짐을 어떻게 보던지 짐은 아무 걱정이 없느니라. 진정한 역사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 아닌가. 부디 짐의 이야기를 반면교사로 삼고 다시는 이 땅에 아픈 사연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노라! 그리고 그동안 그대가 있어 행복하고 또 즐거웠느니라! 내 마지막 가는 길에 그대가 벗이 되어주어 고맙고 또 고맙도다! 그러하니 후대에 돌아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라.”
놈은 그동안 자신이 필요에 의해 우격다짐으로 찾아왔지만, 도리어 자신을 염려해주는 광해군 말에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느라 애를 쓴 것이 허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놈의 눈에선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정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던 모양이었다. 놈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예, 전하! 이제 마음 편히 가지시고…….”
말을 마친 놈은 일어서 광해군에게 큰 절을 올린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광해군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생겨났다. 놈은 다시 팔을 뻗어 처음처럼 고이 눕혀놓으니, 광해군은 놈의 손을 꼭 잡고 피곤하다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은 편안히 잠에 든 모습이었다. 어쩌면 살풋 미소를 짓는 모습이기도 했다. 놈은 점점 잡힌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때는 1623년 음력 7월 1일, 67세의 나이로 질곡을 겪었던 왕 광해군은 한 많은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돌연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소낙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름 하여 광해우였다. 이때부터 음력 7월 1일마다 돌연 비가 내린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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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역대 군주 가운데 제주 땅을 밟은 유일한 인물이다. 제주도에서는 음력 7월 1일에 내리는 비를 ‘광해우(光海雨)’ 라고 부른다.
① 개똥이 / 광해군 당시 상궁 김개시金介屎의 본명이다. 조선 역사에서 악녀로 묘사되는 여인 중에 가장 으뜸으로 평가된다. 선조 때부터 상궁으로 흉악하고 약았으니 계교가 많았다고 한다. 실록에‘비방秘方으로 갑자기 사랑을 얻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비방이란 아마 성적기교를 뜻하는 것이기도 한데, 선조에 이어 광해군에게도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한편 김개시가 올린 약밥을 먹고 선조가 죽었다는 사실에서 그녀가 광해군과 모의해 선조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연려실기술>에 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그것으로 인해 광해군은 그녀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반대파로부터 부왕의 여자를 건드린 패륜이라 하여 탄핵의 근거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인조반정 후 정업원에 숨어 있다가 잡혀 참수되었다. 또한 당대의 권력자 이이첨과도 친분을 쌓았다.
②이긍익 / 원교 이광사의 아들로 '연려실기술'을 지었다. 신임옥사와 이인좌의 난으로 멸문에 가까운 화를 당했고, 20세 때 아버지 이광사도 나주괘서사건에 연루되어 평생을 귀양살이하다가 죽었다. 이 일로 인해 이긍익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해석하는 학자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