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대 홍문관 부제학 자암 김구의 유배객 삶
* 뭇 유배객의 이상과 한이 머문, 이성계의 전설이 살아 있는 남해 금산
남규문이 탄 배가 건너 노량에 닿자 준비된 노새를 끌어 동행과 함께 한 점이 되어 사라졌다. 빈 바다에는 자신과 자신의 손을 꼭 잡고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고 있는 아이만 남아 있었다.
뒤돌아서 오는 길에도 아이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자신의 긴 걸음에 맞추어 종종걸음을 걷고 있었다. 마치 지금 손을 놓아버린다면 다시는 영영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손끝에 힘을 주며 온기를 전해왔다.
그렇게 둘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아침의 붉은 해는 바다를 물들이며 치솟기 시작했다. 노량바다에서 적소 죽림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달리 뜻이 없는 자암은 문득 이 아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는 중간 새벽에 출항했던 배들이 막 돌아와 잡은 물고기를 힘차게 내리는 뱃사람들과 간간히 인사를 나누던 자암은 먼데를 바라보며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네 이름이 무엇이라 했더냐?”
“.......”
“어허~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느냐?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재촉하듯 고개를 돌리니 아이는 땅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없었다. 단지 종종걸음으로 잡은 손에 힘을 가해왔을 뿐이다. 묻지 말라는 뜻이자,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 것처럼 느꼈다. 또 그렇게 둘은 말없이 걸었다. 처음과 달리 자암은 아이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아이는 죽림의 적소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옆 작은 바위로 향했다. 그리곤 바위에 다다르자 평평한 곳을 골라 턱을 괴고 먼 바다를 넋을 놓은 듯 바라보며 앉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아이의 모습을 자암은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자암도 아이를 따라서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아이가 바라보는 그곳을 함께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평온한 침묵을 깨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였고,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하였노라. 밝은 해가 아래 세상을 굽어보며, 가이없는 이내 충정을 밝게 비추리라.”
자암은 귀를 의심했다. 예사롭지 않은 아이인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정암 조광조가 사약을 앞에 놓고 임금을 향해 읊었던 글을 아이의 입에서 나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네가 이 글을 아느냐?”
“.......”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구나! 열을 갓 넘긴 네가 정암 선생이 마지막에 읊었던 글을 외우고 있다니......?”
그래도 아이는 조광조가 읊었다는 시를 외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신진사류들이 반정공신들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임금을 요순시대처럼 만들고자 성군의 꿈과 왕도정치를 구현하였으나, 결국 탐욕과 권력에 눈이 먼 무리에게 그 뜻을 꺾어야 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하겠냐만, 이제는 한낱 바람에 날린 꽃잎이니 벌써 문드러져 형체도 없는 것이야 비단 그 뜻뿐이겠느냐? 역사를 후퇴시키고, 어쩔 수 없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류들의 지혜가 안타까울 뿐이로다!”
자암은 정암의 글을 낭랑한 목소리고 읊던 아이가 더 이상 말이 없자 자신이 가슴에 묻어놓은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는 미동도 없이 먼데 바다와 산을 바라보며 있었다.
“네가 아주 묘한 재주를 가졌구나! 사람의 가슴속에 고이 묻어둔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그러한 재주를 말이다. 허허허!”
그때였다. 아이가 처음으로 자암의 얼굴을 돌아보며 말을 했다.
“의금부 감옥에서 정암 선생님과 모두 함께 옷을 찢어 쓴 편지를 임금님께서 읽지 않으셨다는 것을 아시나요?”
“알다 뿐이겠느냐! 결국 그 무리의 암수에 걸린 미련한 우리가 아수라장 궁궐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충정을 상감의 진심에 호소하는 길이었지만, 훈구세력들이 그것을 전해줄리 있겠느냐?”
“임금께 전하고자 했으나 임금께서 들이지 말라하셨답니다. 아마 자신의 의지가 약해질까 그것이 두려워했던 것이겠지요!”
“너는 그것을 어찌 알고 있는 게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딱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기로는 너무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 훈구세력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들이 앉아서 당하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는가 봅니다.”
“네 말이 과연 옳다. 그러나 임금과 생각이 같다는 생각이 자신감으로 이어지면서 역풍을 불러일으킨 것이지.”
“일설에 의하면 정암 선생께서 그리 잘생기셨다면서요?”
“얼굴에 빛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지. 처음 딱 마주한 순간 그 눈 속에 빨려들 것 같은 흡입력과 온화한 모습, 그리고 단정한 몸가짐이 더했으니, 만난 지 일각이 되지 않아 그와 뜻을 함께하리라 맹세하게 되었단다.”
“그 보셔요, 매우 잘생겨서 화를 당하신 경우입니다. 오랜 임기 동안 아무런 치적이 없는 임금이시니 질투야 얼마나 많으셨겠습니까? 함께 암행이나 미행(微服)을 다녀도 백성 눈에는 정암 선생이 더 윗전처럼 보였으니, 신하보다 아랫사람으로 취급당한 임금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여자의 질투가 오뉴월에 서리가 생긴다면, 남자의 질투는 두고두고 곰팡이가 되어 남아있지요.”
이 녀석 입에 아교를 칠해놓은 줄 알았더니, 한 번 터지니 봇물처럼 쏟아냈다. 그러나 다소의 억지가 있기는 했으나 그리 틀린 말이 아닌지라 대화가 점차 즐거웠다.
“하하~ 참 재미있는 말이구나! 남자의 질투는 곰팡이라. 악취가 난다는 말이로구나! 진정 네 말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감께서 그렇게 일순간에 등을 돌리시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느니라. 홍경주(洪景舟)①의 딸 희빈 홍씨가 달콤한 감 즙을 이용해 궁궐의 나뭇잎에 ‘주초지왕(走肖之王)’②이라 써 놓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모함이라는 것인데, 그것을 묵과한 왕의 심정을 진정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정암을 위시하여 군신관계를 떠나 우정을 나누던 상감께서 지난날의 감정들을 일순간에 돌렸다고는 믿기 어려우나 훈구파의 등살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 아니더냐?”
“그렇긴 합니다만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임금을 가르치려한 신하를 곱게 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지요? 그리고 성리학을 유일한 정치사상으로 뿌리내리고자 소격서③를 폐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 일이나, 자신을 금상의 자리에 올려놓은 훈구공신들의 공록들을 들추어 낸 것은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하여도 정치적 생명을 단축시킨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하긴 지난날 한 밤중에 술을 들고 찾아온 전하와의 추억이 있는 선생님의 시각에선 단순히 서운함을 넘어서 정치구도의 매몰찬 시류에 생각이 많았겠습니다.”
“정녕 네가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그렇다고 잘못을 빤히 알면서도 그냥 넘어간다는 것은 유학을 중시하는 선비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더냐? 백번 죽는다 해도 그 뜻은 굽히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네가 전하와의 일까지도 소상히 알고 있는 게로구나!”
자암은 임금을 생각하며 감정이 복받치듯 잠시 숨을 고르며 눈을 감고 회상에 잠겼다. 아마도 지난날 임금과 나누었던 그때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
자암은 옥당에서 관대도 벗지 않은 채 숙직하던 차 〈광목〉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누구냐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괴이하게 여겨 살펴보았더니 금상(중종)께서 궁궐을 나와 거닐다가 글 읽는 소리에 끌려 별감에게 술과 안주를 들려 자암을 찾아왔던 것이다. 깜짝 놀라 달려 내려가 마당아래 엎드리니 중종이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침내 임금과 신하가 벗이 되어 술을 주고받았던 그때를 추억했다. 그리고 임금의 권유로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자암은 지그시 눈을 감고 그때인양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는구나. 오늘이여 즐겁구나. 오늘이여.
예부터 이제까지 유례가 없는 오늘이로다.
매일 오늘 같으면 무슨 일이 성가시리오.
자암은 친히 찾아 친구의 관계로 정을 나누자는데 감복하여 절로 시흥이 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들은 임금은 무척 좋아하셨다. 그리곤 다시 한 번 불러보라 청하니 자암은 즐겁게 노래했으니, 또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이었다. 아이는 그 모습은 옆에서 잔잔히 지켜보고 있었다.
오리의 짧은 다리가 학의 다리가 되도록
검은 까마귀가 해오라기가 되도록
무궁토록 복을 누리셔서 억 만 세를 누리소서.
이 노래가 끝나자 중종은 크게 기뻐하며 자암에게 노모가 계신다는 것을 알고 담비 갓옷을 선물로 내렸다. 오리의 짧은 다리가 학의 다리가 되도록 억 만 세를 누리라니 이보다 더한 축원이 또 있었을까?
그렇게 둘은 말이 없었으나 자암의 눈에선 감정에 복받친 작은 눈물방울이 고여서 흘렀다. 그것은 얼마간 추억과 더불어 서운함과 펼치지 못한 자신의 좌절된 꿈의 결정체였다. 아이는 소매에서 깨끗하게 다려진 무명수건을 내밀었다. 마치 좌절된 꿈의 소중함을 담아내려는 듯.
바다에서 바람이 일어 뭍으로 내달렸다. 바다를 스친 차디찬 바람은 지난날 회상에 젖은 젊은 유배객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또한 지금까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다름 아닌 어린 아이란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야, 바람이 몹시 차구나! 오늘은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유배객에게는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란다. 특히 나처럼 주위의 도움과 사랑이 과분하게 넘치는 사람에겐 더욱 그렇단다. 그러니 다음을 기약하고 이제 돌아가지 않으련?”
그 말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리고 올라올 때와는 달리 앞서서 바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렇게 얼마를 내려가다 뒤를 돌아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을로 들어서자 총총히 골목으로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암은 기이하고, 예사롭지 않은 아이라 느꼈으나 갑자기 밀려오는 허전함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적소의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지필묵을 찾아 먹을 갈았다. 오늘에 있었던 일을 글로서 적어볼 요량이었다. (계속)
남해의 진산 망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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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自菴) 김구(金絿, 1488년~1534년)는 조선 중종(中宗) 때의 명신으로, 학문과 예술에 깊은 소양을 지녔다. 특히, 안평대군(安平大君), 양사언(楊士彦), 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반기의 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독특한 서풍을 일컬어 그가 서울 인수방에 살았다고 해서 인수체(仁壽體)라 했다. 중국인들이 자신의 글씨를 사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선지 그의 글씨가 아주 귀하다.
① 홍경주洪景舟/ ~1521.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세운 반정공신. 훈구파의 일원으로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일파를 몰아냈다.
② 주초지왕走肖之王/ 남곤, 홍경주 일파가 희빈 홍씨를 사주하여 감 즙을 이용해 나뭇잎에 ‘주초지왕走肖之王’이라는 글을 써 놓아 벌레가 그것을 갉아먹음으로서 ‘조 씨가 왕이 된다.’라고 하여,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류를 제거한 기묘사화를 일으키게 된다.
③ 소격서昭格署/ 나라에 지변이 생겼을 때 일월성진(一月星辰)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다. 유교를 숭상하던 나라의 궁궐에서 행했던 다분히 도교적 의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