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산동 인쇄골목
인생은 선택의 연속, 어린 시절 가업家業이 출판이었다. 타향살이 첫 직장이 출판사였으니 필연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경력에 비추어 비록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았더라도 어쩌면 본능처럼 이끌렸을 수도 있다. 그때부터 출판, 광고기획, 그리고 디자이너로, 때론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것은 온전히 그때 선택이 결정적이었다.
의지가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자위한다. 준비된 이에게 찾아오는 행운, 즉 세렌디피티의 법칙을 믿는다. 최근에 작업실을 옮겼다. 탁월한 선택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만 3년 달서구 생활을 과감하게 접고 집과 가까운 중구 남산동으로 왔다. 나보다 나를 더 나답게 보아주는 한 갑자 아래 띠 동갑들 배려에 사무실 한쪽에 컴퓨터 책상 하나와 책꽂이를 마련할 수 있었다.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마음도 자세도 가다듬었다.
더불어 오롯이 생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 달서구 생활은 대중교통에 한 시간 가까이 부대껴야 했지만, 작업실을 옮긴 후부터 천천히 걸어서 30여 분이면 충분하다. 인생 후반기, 여전히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삶이라도 이때만큼은 온갖 번뇌에서 벗어난 느낌이어서 참 좋다. 성모당 골목을 지날 때면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숙연해지는 느낌을 즐긴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상을 향해 소원 하나 넌지시 흘리고 걷기도 한다.
좁은 골목을 굽이돌자 철컥철컥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100여 년을 한결같이 대구․경북 출판 산업을 선도했던 남산동 인쇄골목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이 딱딱하고 차가운 쇳소리가 감성을 자극하면서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낸다. 코로 훅 빨려드는 잉크 냄새가 먼 기억을 헤집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린 시절이 뒤죽박죽 펼쳐진다. 시리고 아프고 아련하고 답답하고, 행복하고 신나고 즐겁고 따뜻한 추억들이 뒤범벅되어 속절없이 파고든다. 자동화란 꿈도 꾸지 못한 시절, 수동식 인쇄기를 돌리기 위해선 막노동과 다를 바 없었다. 그야말로 고사리손이라도 보태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었으니 온 식구가 매달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기억에 의존하면 지금쯤 남아 있다면 남산동 인쇄박물관에 전시품으로 뭇 사람들 관심 받을 법한 기계들이었다. 어머니가 투명한 종이 한 면에 찹쌀풀을 먹여 햇살에 잘 말려놓으면 아버지는 그것을 잘라다가 해먹(일반적으로 벼루에 갈아서 사용하는 먹과는 다른 물감 같은…, 당시에는 ‘해먹’이라고 불렀다)을 접시에 떼어내 오구로 선을 긋고 글을 썼다. 여러 문중의 족보나 문집을 만들기 위한 첫 작업이었다. 코끝에 돋보기를 걸친 아버지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도록 각인 되어 잊히지 않는다. 한복차림으로 단정하게 앉아 가느다란 붓을 잡고 세로로 한자漢字를 써내려가는 모습이 아들 눈에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글을 쓰면, 그다음은 형들과 어머니 몫이었다. 아버지가 쓴 원고를 인쇄기 매끈한 석판石板에 올려 팔 힘을 이용해 돌에 입혔다. 그런 후 물걸레질한 후 롤러로 잉크를 묻혀 압력을 통해 한지에 인쇄해 냈다. 물걸레질을 한 터라 글자에만 잉크가 묻어 아버지가 쓴 글씨가 인쇄되어 나왔다. 인쇄된 한지를 식구들이 둘러앉아 네 등분으로 접었다. 그리고 페이지 순서별로 정렬해 하나씩 뽑아 순서를 맞춘다. 풀을 바르고 구멍을 뚫은 후, 연붉은 치자 물을 들인 표지를 입혀 빨갛게 물들인 실로 엮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책마다 표제를 써서 붙이면 작업이 끝난다.
납품 날이 되면 일을 맡긴 문중 대표들이 우리 집을 찾는다. 적게는 스물, 많게는 오십여 명이 주로 토요일을 정해 책 검수와 함께 일종의 출판기념행사를 벌였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평소 꿈도 꿀 수 없었던 쌀밥에 잡채와 고깃국, 감주, 문어와 수육을 맛볼 수 있었다. 책이 잘 나왔다는 칭찬이 거듭되면 아버지 어깨에 금빛 가루가 내려앉았고, 어머니 볼에는 볼그레한 희망이 묻어났다. 잉크, 종이 등 재룟값을 치르고 나면 목돈이 생겼다. 봄에 시작해 가을에 끝나는 이 일은 우리네 일 년 농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게 마련된 목돈으로 한겨울을 날 채비를 마칠 수 있었다.
신은 장난치기를 즐기는 듯했다. 평온을 넘어 나른한 행복이 집안에 넘치자 시샘하듯 운명의 신이 형을 도심의 하이에나로 만들어버렸다. 집에는 온전히 사람 손으로 움직이는 수동 오프셋 인쇄기가 하나 더 있었다. 아버지 발이 넓었던지, 큰형 영업력이 탁월했던지 알 수 없었으나 경상북도 내 공립 초․중․고등학교 졸업장과 표창장을 인쇄했다. 족보나 문집이 끝나면 곧바로 졸업 시절을 맞아 정신없이 보내야 했다. 밤새워 인쇄하는 날이면 어머니는 간식을 장만해서 날랐고, 형들이 교대로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대신했다. 그렇게 애써 마련된 돈을 낚아챈 큰형이 도심 빌딩 숲으로 모습을 감췄던 것이다. 어머니 가슴에는 그동안 인쇄했던 글씨들이 덕지덕지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었지만, 어김없이 시간은 흘렀다. 눈물도 말라버린 채 현실을 극복한 어머니는 다시 일어섰다. 그러나 시시때때 가슴을 짓밟고 타향에서 방황하는 형이 떠오를 때면 어머니는 긴 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막내아들도 날벼락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갈 형편이 못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때 서점에서 일했다. 일 년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마치 주홍글씨처럼 삶에 붙어 따라다닌다. 서러움이 앞섰고, 버릇처럼 앞서는 주먹질이 이때 생겼다.
현실을 인정하고 새롭게 출발하기에는 문제가 또 있었다. 대한민국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 작은형이 군에 입대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집에는 희망은커녕 어둠뿐이란 것을 재차 깨달았다. 이젠 큰누나와 어머니가 인쇄기를 돌려야 했다. 그렇게 3년이 버티자 기적이 일어났다. 첫눈이 멈칫거리며 내리던 날 빈털터리가 된 큰형이 돌아왔다. 형은 눈물로 용서를 구했고, 어머니는 돌아온 탕아를 절규로 용서했다. 형 옆에는 얼굴이 동그랗고 피부가 뽀얀 젊은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매일 반복되며 살아나는 영상 속에서 같은 길을 걷는다. 100년 향수길 인쇄골목에서 풍겨오는 진한 잉크냄새, 한 치 오차도 없이 철컥 철컥 반복되며 돌아가는 인쇄기소리, 이에 뒤질세라 차르락 차르락 제본기 입 다무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고, 높이 쌓인 종이와 기계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비록 경기가 예전 같지 않다곤 하지만, 언젠가는 지난 날 번성했던 그때로 돌아가겠다는 듯 얼굴에 열정이 넘친다. 낡은 건물, 입을 꼭 다문 출입구에 ‘○○출판사’ 흐릿한 간판이 아침 햇살을 빌어 길손에게 인사한다.
치자색 책표지를 닮은 인생의 가을, 후반기 삶에 필연처럼 찾아온 인연, 새로운 터전 남산동 인쇄골목이 내 삶에 있어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희망의 가교인지도 모른다. 미미한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는,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생산되는 인쇄물처럼 변하지 않은 진실, 지난날 자양분에 노력을 더하면 색다른 결과물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실주의자는 기적을 믿는다. 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 글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까르페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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