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감정이입

엔니오 모리코네를 만나다

by 박필우입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사랑하는 영화계 거장들의 말이다.

“신이 의심되면 엔니오를 들어라.”

“그의 음악에는 시도 있고, 산문도 들었다.”

“그의 음악은 태양계를 넘어 다른 은하계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버스에서 내려 큰 우산을 함께 받쳐 쓰고 걸었다. 꿉꿉한 날씨와 달리 토요일이라는 심정적 행복의 마법이 발휘되고, 조조영화라는 이름이 주는 묘한 낭만과 멋이 설렘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후드득후드득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발걸음에 맞춰 음박을 탔다.

눈물이 많아졌다. 어두워서 거리낌 없이 흘릴 수 있다는 현실이 더 많은 눈물샘을 자극했나 보다. 때마침 오른쪽 가장자리 속눈썹이 눈동자를 건드리며 더 많은 눈물을 응원했다. 무턱대고 동요하는 설명될 수 없는 감동은 나이에 정비례하는 듯하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이후 두 번째다.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눈물샘이 이내 자극됐다. 화면에서 기립 박수가 쏟아질 때 함께 일어서 박수칠 뻔도 하였다. 《스타워즈》 시리즈 ‘한스 짐머’ 정도만 알던 내가 이제야 엔니오를 만난 것은 무지를 넘어 공감각적 빈곤 때문이었다. 한 편의 영화에서 그동안 가슴 한구석 숨죽이고 있던 자각에 마중물을 부은 것이리라.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포스트 / 출처 위키백과


눈은 새로운 것에 환호하고, 귀는 익숙한 것에 반응한다. 딱 그랬다. 화면에 눈이 떠지고 낯익은 음악에 귀가 열렸다. 알랭 들롱과 장 가뱅이 열연한 ‘시실리안’에서 열 살 나를 기꺼이 영화관에 데려가 주던 동네 형을 불러냈다. ‘황야의 무법자’가 휘파람을 불며 골목을 누비던 어린 시절 친구를 데려다 놓았고, ‘시네마천국’에서 은빛 머리칼 반짝이며 바라보던 아버지 시선을 느꼈다.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은 시간을 건너뛰며 ‘시티오브 조이’를 보며 세계여행을 꿈꾸던 내 청춘을 불러냈다.


일찍부터 엔니오 재능을 알아본 스승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내게도 한 분이 계신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수학에 젬병인 터라 시험 답지에 해답 대신 장문의 글을 남겼다. 미술대학을 희망하는 나는 수학보다 미술 실기에 더 매진해야 한다며, 저의 순수한 꿈을 매로 다스리지 말라고 부탁드렸다. 다음날 매를 각오하고 등교하였다. 그러나 기본 점수를 주며 네 놈은 미술대학보다 국문과를 가야 한다며 응원하던 담임선생님, 이죽이죽 잇몸을 드러내며 웃던 모습이 그립다.


그의 음악에는 색이 담겼고, 리듬에 방정식이 숨었으며, 영상에 맞춘 운율에 당신만의 철학이 철저하게 깔렸음을 알았다. 속된 말로 딴따라라는 아웃사이드 고독 속에서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위대한 대중성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네거티브 경계를 없앴다. 총소리가 난무하는 서부극에 오케스트라를, 전통 클래식에 난데없이 들려오는 음 이탈과 소음이 어우러져 묘한 감동을 짜냈다. 반향의 힘, 둘을 넘어 셋이 주는 혼란함 속의 조화가 마치 삼위일체 완성으로 연결하는 듯했다.


장르의 충돌과 부조화가 네가 처한 현실에 용기를 잃지 말라고 용기를 주는 듯하였다. 샘을 깊게 파려면 넓게 시작하란 말처럼, 그의 세계는 음악뿐만이 아니라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지식과 지성적 감성이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경지다. “넌 그림과 글, 역사까지 이것저것 다 하려 하니 되는 것이 없어!”라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다양한 지식에 목말라하는 내가 모처럼 마음에 들었다. 필사적인 발버둥치고는 제법 의젓하다는 의미로 위로한다. 결국 순수문학에서 벗어나 스토리텔링 작가란 명목으로 곁불을 쬐던 시절의 나를 응원했던 것이다.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은 없다. 미국 아카데미는 엔니오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아니, 후보에 여섯 번이나 올렸으면서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가혹했다. 그는 아카데미 수상의 딜레마에 빠질 법하였지만, 오히려 노구를 이끌고 세계로 시네마 콘서트 투어를 다닌다. 78세가 된 그에게 아카데미는 마치 선심 쓰듯 공로상을 안긴다. 그리고 십여 년이 더 지나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헤이트풀 8》으로 아카데미 선택을 받는다. 88세 노구에 떨리는 손으로 아카데미 트로피를 든 엔니오를 보자 눈물이 흘렀다. 아내가 힐끗거렸지만, 이때만큼은 게의 치 않았다.


나는 미끄러짐에 익숙하라고 늘 되뇐다. 숱하게 공모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빈번히 외면당하기 일쑤다. 좌절하기엔 오기가 반발한다. 낙방의 고배를 들고 쓰디쓴 잔을 들어 나의 미래를 위한 보약으로 갈무리한다. 그리고 돌아서서 스스로 꺾이지 않는 용기를 칭찬한다. 이내 컴퓨터를 켜고 써 놓은 글을 읽고 퇴고를 거듭한다. 뒤틀린 문장, 오묘하게 표현하려다 기름기 넘치는 문장, 가식에 넘치는 문장에 스스로 닭살이 돋는다. 분고지(焚稿識), 즉 가을 낙엽을 태우듯 내가 쓴 원고를 미련 없이 버린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한다. 200년 후 세대는 마에스트로를 어떻게 기억할까? 늘 팬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우스갯소리로 시작되었지만, 아무도 흘려듣지 않았다. 답은 우리가 예상하는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한스 짐머가 감동을 섞어 “그의 음악은 우리 인생에서 사운드트랙”이라는 말처럼 엔니오는 나 같이 평범한 삶에도 단단하게 의미를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장장 2시간 30여 분이 그렇게 지나가고, 영화 스크린에 엔딩 크레디트까지 앉아 있기는 미증유의 일이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한 인간의 일대기를 증언, 혹은 간증의 시간은 어둠을 남긴 채 그렇게 위로 올라갔다. 반대로 내 마음은 신의 간택을 받은 듯 환하게 변했다. 참 모처럼 만의 경험이다. 진정 그의 표현처럼 영화음악이 두 발로 일어선 역사의 현장을 함께한 감동을 누렸다. 하늘의 별은 저마다의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나 또한 나만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터이다. 이제부터라도 말이다.


공모전 수상을 위해 낯설게 하기란 명목으로 뒤틀리거나 미끈거리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문장을 쓴 후, 아무도 풀지 못한 수학문제를 푼 것처럼 자찬하는 일은 도무지 못할 짓이다. 둥글어서 미끄러질지언정 일그러진 마침표를 찍을 수 없지 않은가. 차라리 엔니오처럼 필연적인 운명에 즐겁게 당하고야 말테다.




엔니오가 아내와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입구에서 경비원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단 이유로 발길을 돌리면서 다시는 한국을 찾지 않겠다고 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음악과 영화음악에 공헌도는 인정하나 나이는 헛먹었다. 아니겠지?



2023 대구예술지원금에 선정되어 올 12월에 나올 책 원고 중 맛보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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