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작가 분투기

싸가지와 야마리

by 박필우입니다



젊은 시절 광고 밥을 먹을 때다. 지방이지만 제법 그럴싸한 기업체 광고디자인 부서에 근무할 때였으니 그나마 광고 계통에서 이름 석 자 정도는 알려졌던 시절이다. 전국광고 공모전에 연거푸 입상할 만큼 실력이 되었고, 경쟁업체와 아이디어를 다투던 때라 잠시도 한눈팔 겨를이 없어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동기들이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며 밤이 깊도록 술잔을 기울이곤 하였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친구 하나가 불쑥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심벌과 로고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고맙다면서 얼마 주겠냐고 되물었다. 친구는 이내 실망한 표정이 되어 대충 만들면 되지 친구 사이에 돈을 요구 하냐며 화를 냈다. 웃음이 나왔다. 당시에 동석했던 친구 중 식당을 운영하거나 부인이 옷 가게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친구 식당에 가서 공짜로 밥 달라소리 한 적 없고, 옷 가게서 남편 친구라고 옷 공짜로 입고 나오지 않는다.


잘 돌지 않는 머리에 그동안의 경험, 그리고 연필 한 자루가 자산이다. 물리적이며 물질적인 투자가 아닌, 마치 그냥 얻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을 이해시키기엔 역부족임을 실감하였다. 그래서 10만 원부터 1억 원까지 아주 다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네가 술값 계산하라며, 즉석에서 호가 10만 원 하는 로고라며 곧바로 스케치해 건넸다. 그걸 받아 든 채 웃지도 화내지도, 어이없어하는 친구 표정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나는 이놈을 기래기라 부른다



어제 아침, 늦잠을 잔 뒤에 일어나니 실업자에게 무려 세 통의 부재중 전화가 들어 있다. 각각 다른 인물들이라 혹시 싶었다. 그래봐야 이 무더운 날씨에 쥐꼬리만 한 원고료 제시하면서 마치 대단한 일거리 선심 쓰는 양하겠지만, 그래도 노느니 싶어 전화했다. 상대편에서 아주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이내 실망했다. 그마저도 아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역시 돈과는 거리가 먼, 아니올시다. 마지막 세 번째 이번만은 기대하며 걸었다. 무척 반갑게 받는다. 그러자 쌍글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는다.






초대장, 인사말, 기획서 초안, 동영상 시나리오를 비롯해 홈페이지 대문 초안 손봐달라는 부탁 전화다. 물론 언제 밥 한번 먹자, 술 한 잔 하자, 놀러 오면 잘 대접하겠다. 등등 물질적인 대가 없는 현실감 없는 공허한 소리뿐이다. 이는 곧 수고비 따위는 언감생심 생각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딱 잘라 거절할 수 없는 내 여린 열정이 문제를 일으켰다.


“일단 초안 보내보세요.”


메일로 받았다. 그러나 초안이라 할 것도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 과제물 모임에서도 이따위 결과물은 제출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당최 알 수 없는, 한글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순서나 방향 역시 엉망진창이다.


이 말은 곧 기획 단계부터 손수 새롭게 작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간적인 여유도 없는 말 그대로 화급을 다투는 일들이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급행료는 따따블로 받는다고 말해주었다. 저 너머 잠시의 침묵…. 그 속에는 글 좀 쓴다고 빼기냐? 잠시 긁적거리면 되는 걸 너무하는군!, 돈만 밝히는 놈! 등등이 담겼음을 안다.


그렇다고 대충 써서 넘겼다면 그래서 네놈은 싸구려 삼류 작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이 정도는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심지어 도시 브랜드 네이밍도 공짜로 해달라는 공돌이도 있다. 해가 바뀌면 회사나 지방정부 새해 사자성어나, 망년회 때 건배사까지 주문받을 때 그야말로 욕이 저절로 터진다.


나무삼류작가보살~~

그나마 날 기억하고 내 이름을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더위를 참고 머리통을 싸맨다. 그리고 일정에 맞춰 넘겨드렸다. 물론 재능기부라고 생각하였다.


며칠 후 세 분(?)께서 순서대로 전화를 주셨다. 보낸 원고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재차 수정 요구다. 심지어 사진자료까지 당당하게 요구하는 이처럼 싸가지 없는 인간들을 어쩜 좋아? 결국 내 폴에 지쳐 컴퓨터 책상에 머리를 디릿따 박았다. 그리고 천장에 대고 욕지거리 날리려다 참았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목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싸가지요, 하나는 야마리다!
이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욕은 먹지 않는다.



냄비에 라면 물이나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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