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류시인 이바리기 노리코
한글의 매력에 빠져 죽을 때까지 윤동주와 한국을 사랑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 윤동주를 사랑한 여인, 나 또한 그녀를 사랑하기로 하였다.
일본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그녀의 작품 중 ‘내가 가장 고왔을 때’라는 시다.
피해자 의식에 함몰된 한탄이 아니라, 패전의 무기력함에서 군국주의 멍에를 벗어나 홀로 서려는 빛나는 여성의 어휘가 가득하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도 그녀는 변함없었다. 1975년 10월 31일 쇼와 천황이 기자회견에서 전쟁 책임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쟁 최고 책임자, 제국의 절대적 제왕이 웃기게도 ‘언어의 기교’ 운운하며 구렁이 담 넘듯 얼버무렸다. 놀랍게도 일본 지식인들, 언론까지도 일사불란하게 이 말에 대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대단한 민족성이다. 그런데 여류시인 이바라키 노리코는 달랐다.
(‘사해파정四海波靜’에서)
이바라키 노리코, 패전 일본에서 아무도 말 못 하던 때 당당하게 천황을 비웃으며 울분을 토한 여자였다. 무엇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윤동주를 그리워한 여인…. 당시 한국인보다 더 한글을 사랑했던 시인, 한글을 일러 시치미 딱 떼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속담의 보고이며, 해학의 숲이라고 하였다. 늦게 한글을 사랑한 일, 윤동주가 살아 있을 때 알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던 시인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필자가 일본인이라서 애써 외면했던 시, 결국 이 글을 쓰면서 그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이바라키 노리꼬 시집》두 권을 샀다. 절판된 시집 한 권은 중고 서점을 통해 구입했다. 밤새워 눈을 비벼가며 읽고 또 따라 쓰면서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그가 그리워졌다. 궁금증이 과하면 그리운 법, 짧아서 처삼촌 벌초한 듯한 머리에 맑은 눈동자가 이처럼 어울릴 수도 있다는…, 단아한 감성을 숨긴 듯 반듯한 입술과 콧매가 흡입력이 있다. 그러나 흑백사진에서 어딘지 모를 슬픈 고집이 보인다.
한글과의 만남은 1956년 쉰 살 때 남편과 사별한 후 이바라키 노리코는 자기 치유의 한 방법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사실 열다섯 시절부터 있었다”고 고백한 그녀는 김소운(수필가) 씨가 이와나미문고에서 펴낸 『조선민요선』을 읽은 후 그 속에 실린 한국어 단어들의 소박함과 기지에 끌렸다는 것이다.
한글 공부는 10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녀가 배운 한글은 ‘한국인들이 쓰는 언어’ 이상이었다. 한글은 “마치 뜨개질 기호 같은 문자”였고 “그 울림이 낭랑하고 아름다운 언어”였다고 찬하였다. ‘바람둥이’ ‘치맛바람’ ‘땅꾼’ 같은 기발한 명사에 놀라는 한편,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 ‘구관이 명관이다’ ‘밤새도록 울다가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다’는 식의 한국 속담의 표현력에도 감탄하였다. 《한국어로의 여행》 《이웃나라 말의 숲》 등 한글로 된 책을 쓸 만큼 한국어를 사랑한 그녀다.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쓴 시를 소개한다.
-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를 읽고 그녀의 노력으로 윤동주의 시가 일본 현대문국정교과서에 무려 11쪽이나 실리게 한 시인이다. 그리고 윤동주 의문의 주검을 파헤치려 애쓴 사람이었다. 시인은 윤동주의 죽음이 일본 검찰의 손에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 통한의 감정을 갖추지 않고서는 윤동주 시인을 만날 수 없다고 해설에 썼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일본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1984년 가을에 윤동주 친동생 윤일주 씨를 만난다. 그는 건축을 전공한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마침 도쿄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 객원 교수로 일본에 와 있었다. 윤동주 시집에 ‘아우의 인상화’라는 시가 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의 실제 주인공인 동생을 만난다는 것에 너무나도 감정적이고 기뻤다고 표현하였다.
일본의 한국 식민지 통치의 상흔을 묘사한 또 다른 시도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 총독부에 다녀오다 전문-
그리고 그녀도 인간인지라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그녀답게 스스로 부고를 써서 준비해두었다.
무릇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인생의 끝 역시 이처럼 정직해야 한다.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은빛 그리움으로 코팅하고 떠난 시인, 그녀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부럽다. 그야말로 전 질량을 바쳐 스스로 주인 되는 삶을 살았던 내면의 풍경이다.
한국인이라면 시인 윤동주와 이상화, 이육사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러나 이들 민족시인 보다 우리에게 더 친근한(?) 시인이 있다. 친일시를 당당하게 써서 일본 천황에게 바쳤던 시인 서정주가 이들보다 훨씬, 천 배나 편하게 살았으며, 만 배쯤 행복한 삶을 살다가 85세에 죽었다. 더구나 생전에는 부와 명성까지 누리며 그가 길러낸 제자들만도 우리 문학계에 널리 퍼져 그의 영광에 빛을 더하고 있다. 혓바닥이 장구채 놀 듯 현란한 것처럼, 문장으로 감탄을 이끌어낸 뛰어난 시인….
그는 생전에 친일행각을 단 한 번도 사죄나 반성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다. 더구나 군사독제시절 친일시보다 훨씬 추한 ‘전두환 헌시’까지 써서 헌납했다. “내가 광대냐?”며 당당하게 거절하던 동생 서정태 선생이 더 그리운 까닭이다.
시선詩仙의 머릿속에 티끌만큼이라도 갈등이 있었더라면 참 좋겠다. 스스로 실수나 실패를 자인하는 이를 ‘결백한 실패자(Good Loser)'라고 한다. 실패나 실수를 찬하는 게 아니다. 실수를 숨기거나 타인에게 떠넘기는 모습보다, 문제를 찾아내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용기요 지혜라는 뜻이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고, 숙성해 지는 것이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누군가 역사를 향해 질타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걸쭉한 핏덩이를 가득 문 반성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뒤늦게 역사를 공부하면서 인류는 폭력과 살육의 연속이었단 사실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무지한 인간이 신념을 지니면 더욱 무서운 법, 만약에 신이 있다면 인간이 얼마나 광폭한지, 얼마만큼 폭력적이고 악해질 수 있는지, 자기 이익에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를 실험 중일 것이다.
글이란, 수필이란 고고한 학이나 단아한 난초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외면하면서 존재할 수 없다. 상시분속(傷時憤俗), 즉 “시대를 상심하고, 시속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고 하였던 다산 선생의 말을 떠올린다.
* 참조 : '이바라키 노리코 시집'- 스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