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대한 추억
*배고픈 분은 열지 마세요^^*..
잘 먹는다. 양 볼이 터질 듯 밀어 넣고선 우걱우걱 씹고, 꿀떡 삼키고 또 후루룩 빨아들인다. 떡두꺼비 파리 감추듯,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텔레비전 일명 ‘먹방’ 프로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예기치 못하게 추억이 호출당하는 경우가 있다. 아득히 먼 곳에 존재했던 옛 맛이 소환된 터였다.
화면 가득 가마솥에 시래기가 뽀얀 김을 올리며 익어가고 있다. 시래기 고등어조림을 보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소복소복 밤새 소리 없이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생일인 양 은근히 설랬다. 부엌에 들어가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에 왕겨를 움켜 넣고 풍로 돌리기를 자처했다. 몸도 따뜻하거니와 어머니가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다. 시래기 고등어조림이 익어가는 냄새에 머리를 주억대며 부엌을 훔쳐보던 아버지 주름진 얼굴이 영상이 되어 살아난다. 이불을 개고 방 청소하던 누나의 볼멘소리와 어머니 잔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한 편의 파노라마가 되어 속절없이 가슴에 파고든다.
고등어조림의 달고 짭짤한 맛, 양념이 잘 밴 시래기는 꽁보리밥을 천하에 둘도 없는 진미로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생선조림 양념장을 만들 때면 어김없이 아랫입술을 살짝 베어 문 어머니 영상이 재생된다.
돌이켜보면 저마다의 음식에 사연이 묻어 파문을 일으키곤 한다. 부드럽고 포슬포슬한 감자에는 남모를 아픔이 있다. 감당하지 못할 더위를 예고하듯 아침 해가 사정없이 떠오르던 날이었다. 채소벌이를 하던 어머니는 새벽 일찍 오일장을 찾아 떠난 날이었을 법했다. 어머니 대신 누나가 아침밥을 챙겼다. 그날따라 감자가 반이 들어간 보리밥에 감자볶음, 감잣국이 상에 올라왔다. 철없는 남동생의 매몰찬 투정은 누나 눈을 마르지 않는 샘으로 만들었다. 누나 기억 속 존재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지워지지 않은 영상 하나가 감자밥을 가난했던 시절의 메타포로 만들어버렸다.
삼치구이 양념장을 만들 때마다 형수의 애틋한 온기가 느껴진다. 양파, 호박, 당근, 대파를 잘게 썰 때 도마소리가 경쾌했다. 간장과 설탕, 다진 마늘과 후추, 참기름을 넣고 잘 섞어 준비해둔 채소와 버무린다.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손질한 삼치를 가지런히 올리고 버무린 양념장을 골고루 끼얹어 중불에 익혔다. 삼치가 양념에 익어가면서 내는 달고 깊은 간장 향에 형수의 오만가지 정성과 미래에 대한 꿈이 짙게 배여 있었다. 간이 골고루 배어들게 한 번씩 끓는 양념을 숟가락으로 떠서 삼치 위에 적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저런 지난한 삶터에 몸을 담근 그녀로서 행복을 꿈꾸는 의식이지 않았을까. 양념을 달달 긁어 남은 밥을 비벼서 먹을 때 고인이 된 형이 아른댄다.
유난히 면 요리를 좋아하는 까닭은 어머니가 길들인 것이다. 밀가루를 차지게 반죽한 후 홍두깨에 밀가루 옷을 입힌 뒤, 안반 위에서 요술을 부리면 점차 반죽이 얇게 펴지면서 면발도 늘어났다. 그렇게 해서 식구들 저녁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푸성귀 가득 들어간 칼국수에 양념장을 살짝 올려 후후 불어가며 먹을 때 면발은 어떤 식감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맛있다. 어머니 나이가 되면서 칼국수를 앞에 두면 어머니 갈라진 손가락 끝이 향수를 부르는 고명이 된다.
식은 밥 한 그릇으로 식구가 배불리 먹는 방법도 있었다. 큰 냄비에 콩나물 한두 주먹 넣고 김치 잘게 썰어서 남은 밥과 함께 끓인다. 냄비 가장자리에 희망이 부풀 듯 거품이 일며 팔팔 끓기 시작하면 밀가루 수제비 얇게 떠 넣고 한소끔 더 끓였다. 누나들은 ‘꿀꿀이죽’이라고 불렀지만, 일명 경상도 갱시기의 완성이다. 반상에 둘러앉아 정신없이 먹다 보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포만감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이불을 펴고 잠을 청해야 했다. 대부분 겨울철 저녁은 이렇게 해결했다. 요즘에야 술 마신 다음 날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가시지 않은 술기운에 동공 풀린 눈이지만 머리에 수건을 두른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쇠고기 육회를 입에 넣을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대로 떠오른다. 제법 큰 일거리가 들어온 날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손도 덩달아 신명을 탔다. 고기를 썰던 주름진 어머니 손등이 생생하다. 두꺼운 칼에 썰려나가던 빨간 육질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색이다. 갖은 양념을 섞어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뿌렸을 때 퍼지는 향기는 가난한 기억을 지우고도 남았다. 안방 개다리소반 위에 따끈하게 덥힌 청주가 식어가는 몸을 안타까워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양반다리를 한 채 군침을 삼키던 아버지 후두돌기가 유난히 솟은 모습으로 보아 생애 가장 더디게 흐른 시간이었을 법하다. 젓가락으로 육회 몇 가닥 집어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아들 입에 넣어주던 아버지처럼, 아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
부뚜막에 앉아 모처럼 하얀 쌀밥과 함께 냄비 채 먹던 두부조림은 미래를 약속받던 음식이었다. 어느 봄날 토요일 오후, 학교에서 허겁지겁 돌아왔을 때 꽉 들어찬 손님들로 분주하던 집은 마치 잔칫날 같았다. 가업이 출판이라 온 식구가 달려들어 어려운 일을 끝내고 결과물에 대한 칭찬이 아버지 어깨에 금빛 가루를 내려앉게 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어머니 발그레한 얼굴에도 희망이 깔려 있었다. 지금도 두부조림을 만들 때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뒤에서 요령을 알려준다. 냄비 바닥에 다시마를 넓게 깔고 무를 평평하게 썰어 올린 후 그 위에 다시멸치를 아끼지 않고 넣은 다음 두부를 두툼하게 펼친다. 미리 만들어둔 양념장을 골고루 넣고 자작하게 조려내면 맛있다는 아이들 말이 메아리가 되어 먼지 쌓인 앨범을 펼치게 한다.
음식을 만들거나 맛볼 때 시리거나 따뜻한 기억이 소환되곤 한다. 깨진 유리 조각을 통해 해를 바라보던 유년의 아롱진 추억을 떠올리면 군침이 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어떤 음식은 한 입 떠 넣을 때마다 누군가 옆에 있는 듯 느낀다. 입에 착 달라붙는 된장찌개의 깊은 맛, 속이 따뜻해지는 김치찌개의 감칠맛, 정이 담긴 안동식혜, 시원하면서 곰삭은 동치미, 비 오던 날 먹던 배추 부침전은 늘 어머니 아버지를 불러내곤 한다.
삶이 잃어버린 것의 목록이라면, 그중 대부분이 사랑하는 것들이다. 다행히 음식 하나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담겨 있다. 사랑을 맛보게 해준 음식이 삶의 원천이자 생명이란 뜻이다. 비록 소박할지라도 행복은 어김없이 대물림 된다. 시장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두부 한 모와 콩나물 한 봉지를 산다. 뭘 만들지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라면 어떡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