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것이나 나와 가장 먼 그대
전신거울 앞에 섰다. 시간을 투자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끔하게 꾸미려 애쓴다. 인간상품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필요하다면 썼다 벗었다 자유자재인 가면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절박함도 있다. 사실 유무를 떠나 삶 자체가 지식과 감각으로 다져진 세련된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경험상 창을 등지고 앉아야 승률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햇살이 주는 실루엣이 환상 그 이상의 이미지를 높여준다. 안타깝게도 히틀러가 청중을 향해 연설할 때 자주 애용하던 방법이다. 햇살을 마주한 젊은 여자가 눈을 땡그렇게 뜬 채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머리에 서리가 내린 건너편 남자의 실체가 궁금하다는 뜻이다. 그 옆에는 갑의 입장에 익숙한 듯 중년 남자가 왼팔을 의자 등받이에 걸친 채 삐딱하게 앉아 실눈을 뜨고 아래위를 훑는다. 여자에겐 반백이 주는 겸손이 부담으로, 남자에겐 상대편 의도된 지적 이미지가 승부욕을 자극하는 듯했다.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지 않은 관공서다.
그들 머리에 나란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할 필요가 있다. 신뢰를 주기 위해 목소리는 물론 손짓과 표정 하나하나에도 집중한다. 어느 순간부터 남자가 조금씩 자세를 바르게 고치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질문을 던진다. 설득에 다가간다는 방증, 비판적 시각이 옅어지며 긍정적으로 변해간다는 뜻이다. 이때를 놓쳐선 안 된다. 마지막 결정타를 가해야 한다. 감춰둔 비장의 한 수, 상대가 예상치 못했던 덤을 안겨주며 물러설 곳을 제거한다.
준비한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완벽하게 발휘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일어나서 악수한 후 묵례로 마무리하고 돌아선다. 앞모습에서 뒷모습으로 자연히 의무교대가 이뤄질 때다. 확연하게 느낀다. 그들은 문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내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일을 맡겨도 될까? 라는, 확신을 점검하기 위한 본능이다. 이때 몸동작이나 보폭, 흔들리는 팔, 어깨와 뒷머리 등 어느 것 하나 어색하게 보여서는 곤란하다.
하나 더 남았다. 재차 앞모습이 나설 차례다. 문 앞에 도달했을 때 뒤로 돌아 사무실 전체를 향해 고개 숙이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최대한 자연스러우면서도 격조 있게……. 다분히 의식적이지만 무의식적 진실인 양 보여야 한다. 그런 후 재차 뒤를 보이며 여유 있게, 그러나 빠른 동작으로 경계를 벗어난다.온전히 밖으로 나온 후에야 긴장을 푼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합작한 더할 수 없는 승리다.
모 지방정부 관광지 연구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알뜰하게 준비해간 기획서를 기반으로 완벽하게 설명한 후, 돌아서 나올 때 출구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 최악을 보이고 말았다. 뒷모습을 의식해 돌아서 멋쩍게 웃어준다는 것이 일그러진 얼굴을 해 보였다. 결국 그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 앞에서 심어주었던 확신이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뒷모습에 의해 허깨비 기침처럼 날아 가버렸다. 돌이켜 생각해도 필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때부터 관공서나 큰 사무실에 들어서면 본능처럼 구조와 출입구, 심지어 화장실까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뒷모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학생회장 투표가 있었다. 여전히 불가사의하지만, 압도적 최다득표를 얻었다. 의자에서 일어서는 경쟁자 등이 보였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쉬움이 자작하게 깔려 있었다. 어느 봄날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삽짝을 나서던 아버지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해거름이 되자 약주에 취한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돌아왔다. 어머니가 반기자 말없이 입술로 웃었다. 돌아서 사랑방으로 들어갈 때 아버지 등과 어깨에는 삶에서 오는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기대했던 약속이 일그러진 것이리라. 돌아서는 어머니는 평소보다 더 왜소하게 보였다.
물건을 하기 위해 도회지로 떠나던 큰형의 자신감 넘치는 앞모습과 달리 돌아서는 발길에는 허영이 거품처럼 뭉글뭉글 솟고 있었다. 그런 형이 불안했다. 역시 틀리지 않았다. 그길로 도시의 하이에나로 변신해 무려 삼 년씩이나 네온사인에 몸을 숨겼다. 맏아들에 대한 무한신뢰가 어머니 눈을 가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꽁꽁 싸맨 채소 보따리가 어머니 삶이었다.
어수선한 꿈을 꾼 어머니는 타지에서 혼자 살아가는 아들 안부가 궁금하다며 찾아왔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들을 기적처럼 살려놓고 병원 문을 나서던 어머니 뒷모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좁은 어깨와 등에 햇살은 굴절되어 비추고, 빛을 타고 내려온 천사가 금가루를 뿌려주는 듯했다.
큰 사건을 겪은 후는 더 심하게 드러난다. 며칠 전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평소와 달리 과장된 말과 표정으로 반기고 돌아서는 등 뒤로 텅 빈 걸망이 걸려 흔들리는 듯했다. 친구에게 지난한 사정이 들킬까 급급했던 것이다.
사회에서 만난 벗과 모처럼 회포를 풀었다. 피곤했던 탓에 한 잔 더 하자는 제의를 거절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환한 얼굴로 인사를 나눈 뒤 돌아서 가던 벗의 어깨에 외로움의 물결이 일렁였다. 어두운 골목을 추적추적 홀로 걸어가는 벗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마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난 후의 텅 빈집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리라.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와 절대로 마주할 수 없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기만 한 뒷모습이 궁금했다.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카메라를 의식한 뒷모습이 이보다 생소하고 어색할 수 없다. 뒷모습을 단 한 번도 의식하지 않고 살았는데, 나를 내가 확인하려니 어색할밖에.
재차 확인이 필요했다. 두 개 거울을 통해 뒤를 본다. 이런 젠장! 나는 뒷모습조차 의식적이다. 어느 때보다 의식하고 보아서다. 살아 있는, 진솔한 내 뒤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무의식의 뒷모습이 분명 나지만 내 것이 아니다. 본능처럼 감정을 이입한 타인의 것이다. 뒤는 마주한 이를 속이지 못한다. 앞모습이 의식적인 가면극이라면 스스로를 밝히지 않는 뒷모습은 정직하고 진실함 자체다. 결국은 바른 생각과 양심과 상황에 따라, 본성에 맞춰 달라지고 있음을 알았다.
공개 사업에 대비해 알뜰하게 준비한 기획서를 들고 거울 앞에 선다. 표정과 손짓을 섞어 반복해 연습한다. 머리를 재차 매만지며 눈에 힘을 주며 확신을 불어 넣는다. 할 수 있다며 응원한다. 목을 감싼 티셔츠를 바로 하고, 윗옷을 걸친 뒤 머플러로 포인트를 준다. 돌아서며 거울을 훔쳐보았다. 아뿔싸! 지구 중력에 살이 늘어지고, 목이 뒤틀린 중늙은이가 눈에만 힘을 주고 있다. ‘피식’하고 콧김이 샌다. 완전히 돌아서자 거울만이 나를 본다. 세상으로 떠밀리는 날 거울이라도 응원해주길 바란다.
통통 튀는 젊은이들 아이디어와 경쟁하기에 한계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래도 도전장을 내듯 파이팅을 외치며 목표를 향한다. 목에 힘이 들어가자 유난하게 상체가 뻣뻣하다. 몹쓸 일이다. 뒷모습을 의식하고 살아가야 한다니…. 온전히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된 것일까.
잘 늙은 사람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라는데, 뒷모습은 이를 필수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속성을 지녔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적절하게 풍기는 인품, 비울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정직한 등과 겸손이 물든 어깨를 가졌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 모두 유연하지 못한 삭막한 내 정서의 책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