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8대 현종 / 불륜의 씨앗으로 태어나 모진 길을 걷다
운명이었던가? 어느 날 목종은 빼어난 용모의 유행간이라는 사내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매우 사랑한 나머지 그에게 합문사인의 벼슬을 내리니 목종의 총애를 등에 업은 유행간 마저 국정을 농단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었다. 유행간의 소개로 외모가 뛰어나고 강건한 신체를 가진 발해출신 유충정이라는 사내도 함께였으니 국사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문무백관들도 이 두 놈의 턱짓과 손짓에 지시를 따르게 되니 재앙은 다가오고 있었다.
이 뿐만 아니다. 천추태후와 김치양 그들 앞에는 커다란 걸림돌이 있었다. 천추태후의 동생 헌정왕후와 숙부와의 불륜에서 생겨난 아들 순詢이 있었다. 왕순은 12세 때에 대량원군大良院君에 봉해졌으며, 어머니 계보가 아니라 아버지 계보로 보았을 때, 비록 불륜이라 하나 태조 왕건의 혈통을 이어받은 손은 왕순이 유일했다. 당연하게도 다음 보위 일 순위가 왕순에게 돌아갈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천추태후는 그의 존재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되도록 빨리 왕순을 제거해야만 했다.
천추태후는 강제로 왕순의 머리를 박박 깎이고 숭교사崇敎寺로 출가를 시켜버렸다. 그러나 승려로 만든 것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천추태후는 왕순을 죽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졸지에 승려의 몸이 된 왕순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를 동정하는 스님만이 유일한 버팀목일 뿐이었다. 태어나자말자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에서 함께 살다가 돌아왔으나 겨우 12살이 되던 해에 승려가 되어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방식을 동원한 살해의 위협과 싸워야 했다.
처음 머리를 깎고 들어간 숭교사 주지는 큰 별이 절 마당으로 떨어져 용으로 변했으나 다시 사람으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 기이하게 여긴 주지승은 왕순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며 잘 보호하고자 하였으나, 1006년 천추태후에 의해 다시 양주 삼각산아래 신혈사神穴寺로 옮기게 되니 늘 죽음과 맞서는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궁궐에서 보내온 음식이라며 대량원군 왕순에게 들이라 강압했다. 아무래도 수상하게 여긴 신혈사 주지승은 왕순에게 들이기 전에 앞마당에 음식을 풀어놓았더니 새들이 날아와 쪼아 먹고 죽으니 이후부터 더욱 조심하게 된 것이다.
이후 몇 번의 자객이 왔으나 미리 땅굴을 파놓고 그 위에 침대를 놓아 왕순을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그의 삶은 모질었지만 목숨은 질겼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절집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삼각산 위에 올라가 몸을 피하였으며, 먼데 하늘과 녹색의 파도를 치는 산등성을 바라보며 자신의 뜻을 세워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왕순은 점점 자라 17세가 되었다. 그는 목종이 병중이란 것을 알았다. 그럴수록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살해위협은 목을 옥죄어 왔다. 왕순은 가만히 앉아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나이가 들었고, 그는 비밀리에 목종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자신을 지켜줄 생명줄의 편지를 목종의 사랑은 받고 있던 유행간에 의해 중간에서 없어지고 말았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불타는 단풍을 보며 왕순은 답답한 심경을 이기지 못해 사찰 뒤 삼각산에 오른 직후였다. 마침 하늘이 도왔는가? 때를 같이하여 궁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는 김치양에게 빌붙어 목종의 행동을 고해바치는 환관과 호위병사들이었다. 그가 가지고온 것은 임금이 내리는 보약이라며 어서 왕순을 찾아 먹여야 한다고 눈을 부라리며 졸랐다. 그러나 주지승은 천추태후가 보낸 독약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이리저리 핑계를 댔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속세에 탁발을 나갔으니 며칠이 있어야 돌아올 것입니다. 아깝지만 당장 먹일 수 없으니 두고 가시면 빈승이 알아서 잘 챙겨드리겠습니다.”
이에 당황한 환관은 얼굴빛이 변했다. 그리고는
“어허~ 이거 큰일입니다. 꼭 대량원군이 드시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라 하셨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뭐에 그리 걱정입니까? 경치 좋은 이곳에서 며칠을 쉬시다가 돌아오면 그때 먹는 것을 보고 가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주지승은 짐짓 궁에서 나온 환관을 떠보았다. 그 말을 들은 환관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주지승의 말은 자신을 믿는다는 투였으니 필시 아무 의심 없이 약을 먹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바삐 돌아오라 하셨으니 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대량원군이 돌아오시면 스님께서 꼭 잘 챙겨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며 목종의 거짓안부까지 전하며 돌아가니 주지승은 합장하며 전송했다. 그리고 곧바로 약을 쏟아버리니 흙색이 붉게 변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바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우러러 보며 장탄식을 쏟아낸 왕순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되돌아보았다. 지금은 비록 그들에 의해 사찰로 내쳐진 것이지만, 자기연민에 빠져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토록 집요한 천추태후의 살해 음모를 지금껏 잘 피해 왔으며, 언제일지 알 수 없으나, 태조의 유일 혈통인 자신의 입지가 공고해지리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병중인 목종의 심경에 어떠한 변화를 감지했다. 부쩍 잦은 살해기도가 궁궐의 정황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더불어 남색을 밝혔던 임금이라 후손이 없음은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유배의 몸에서 곧 해방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삼각산 바위에 올라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백운봉에서 한 줄기 물이 내려오고,
이 물은 저 멀리 만리길 바다로 통하니
비록 지금은 바위아래 졸졸 흐른다고 업신여기지 말라.
얼마 후에는 용궁에까지 가리라.
천추의 한을 지녔지만 얼마나 뜻 깊고 희망을 잃지 않은 글인가! 점점 생각이 넓어지자 그의 희망도 움트기 시작했다. 불륜에 의해 태어난 자신이지만 왕족의 유일한 혈통의 자존은 잊지 않았으며, 불가의 가르침과 어린 시절 성종임금께서 가르친 유학의 도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학문을 접하며 소양을 넓혀가며 북방의 오랑캐 거란과 말갈에 대한 경계심도 키워가며 나라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누워서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저 멀리 산 너머의 이상을 꿈꾸면서 알록달록 단풍이 든 만추의 색상을 이불삼아 한 숨 자고 나니 해는 벌써 저만치 넘어가고 있었다.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정신을 맑게 한 후 산을 내려오니 주지스님의 표정이 그때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것은 필시 대궐에서 자신을 해코지 하기위한 모종의 무엇이 있었던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님은 저녁공양 후에도 아무 말씀이 없었다. 다만 낮에 주무시고, 밤이면 정신을 맑게 가지니 어찌하면 좋을까 걱정만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왕순은 낮이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 후 구석진 곳을 찾아 잠을 청했으며, 밤이면 아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작은 발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웠으며, 산새소리의 음색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누구에게 세월은 유수와 같았지만, 왕순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또 그렇게 몇 달을 허비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더 이상 망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희망을 걸어 다시 목종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의 처지와 지금 자신을 죽이기 위한 김치양의 행위를 적나라하게 적어 보냈던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이번에는 다행이도 유행간이 아닌 목종의 다른 연인 유충정이 그 편지를 가로채 읽어보니 김치양의 과욕이 드러나 있는지라, 그들이 권력을 잡으면 자신들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염려해 병중에 누워있는 목종에게 전달했다.
말년에야 정신을 차린 목종은 왕순의 편지를 읽은 후 김치양이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급해졌다. 목종은 충주부사 채충순을 은밀히 불러 신혈사로 한시바삐 왕순을 데려오도록 하는 한편,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변방을 지키고 있던 서경의 도순검사 강조康兆를 도성으로 불러들여 김치양일파를 제거하고 병권을 안정시켜 그동안 혼탁했던 도성을 초심으로 되돌리고자 했다. 그는 강조의 충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어찌 사람의 뒷일을 알 수 있었을까? 자신이 불러들였던 강조에 의해 폐위되고 죽음을 면치 못했으니 말이다.
목종의 명을 받은 강조는 오천의 군사를 몰아 개경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방관하고 있었다. 그것은 김치양과 헌애왕후가 왕을 살해하고, 왕명을 날조하여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소환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백성들 사이에선 왕이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분분했으니 강조는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헌애왕후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강조가 개경으로 들어오기 전에 생포하기로 마음을 먹고 중간에 군사를 배치해둔 상태였다. 이 사실을 안 강조의 부친이 급하게 편지를 써서 아들에게 보냈다.
_이미 왕은 죽고 없다. 천추태후와 김치양 일파들이 반란을 꿈꾸고 있는데 지금 뭤을 하고 있는 것이냐? 한시바삐 대궐로 들어가 역적들을 처단하고, 국난을 평정하여 새로운 왕을 옹립해 태조왕의 큰 꿈을 이어감이 마땅할 것이다._
부친의 편지를 받은 강조는 그때서야 마음을 굳히게 된다. 이어 군사를 몰아 대궐로 들어가 오랜 시간 국정을 마음대로 휘두른 유행간을 죽이고, 김치양과 그의 아들을 잡아 죽였다. 그리고 그 일파를 30여 명을 징치했다.
무능했지만 자신을 믿었던 왕 목종과 국정을 농단한 천추태후를 폐위시키니, 강조의 부하들은 그가 직접 왕위에 오를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강조는 듣지 않았다. 신혈사로 쫓겨나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던 대량원군 왕순을 데려와 왕으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고려 8대 현종이다. 고난을 먹고 자란 왕순 현종, 그의 나이 약관을 앞둔 18세였으며, 때는 1009년 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