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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의 왕은 진정 하늘이 내리는 것인가!- 1

- 고려 8대 현종 / 불륜의 씨앗으로 태어나 모진 길을 걷다

by 박필우입니다



하늘에 달빛은 교교히 흐르고, 무거운 침묵에 빠진 산사山寺를 은은히 비춘다. 며느리 슬픈 전설이 깃든 소쩍새 소리도 끊어졌고, 가끔 울던 풀벌레도 숨을 죽였다. 그때다. 검은 그림자가 달빛을 빌어 다가오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다. 그들이 내품는 안광은 달빛에 번뜩였고, 품속 비수에서 뻗치는 살기는 작은 요사채를 뚫고 방안의 공기를 긴장시켰다. 발소리를 죽이며 툇마루에 올라선 그림자.


왕순은 밖의 움직임을 살피며 숨을 죽였다.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그에게 고요한 산사는 긴장의 시위를 팽팽하게 만들었다. 망설이지 않았다. 몸을 빨리해 침상의 베개와 이불을 가지런히 했다. 침상아래 깔아놓은 장판을 걷어내자 마룻바닥 아래 지하로 향하는 입구가 드러났다. 왕순은 몸을 숙인 채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몸을 한껏 움츠리며 바닥으로 통하는 입구를 조용히 닫았다. 기름을 먹은 장판은 처음처럼 가지런하게 펴지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람을 먹어 버렸다. 이제 작은 방안은 어둠 속에 텅 빈 침대만이 덩그렇게 놓여있을 뿐이었다.


지난 밤 꿈에 아버지 왕욱과 함께 어머니 헌정황후가 나타나 슬픈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던 터라 필시 개경에서 자객이 올 것이라 미리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순은 어머니 얼굴을 모르고 자랐으나, 꿈속이라 할지라도 꿈속 여인이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헌정황후라는 것을 직감했다.


넓지 않은 공간에 한껏 몸을 웅크린 채 숨까지 죽여야 했던 왕순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객이 든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버릇처럼 석가모니불을 수 없이 외우고 또 외웠다. 그리고 귀는 위로 향했으나 감히 눈을 뜨지 못했다.

이어서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온 검은 그림자는 망설임이 없었다. 침상에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비수를 텅 빈 침대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팍!”


땅굴에 몸을 숨긴 왕순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손을 입으로 가져가 틀어막았다.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고통을 느꼈다.


자객은 내리꽂은 비수가 빈 이불을 뚫어 침대바닥에 꽂히자 어깨로 통증이 몰려들었다. 또 한 명의 자객이 긴 칼을 들어 한번 더 내리치고 나서야 빈 침대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이불을 걷어내고 미친 듯 방안을 뒤졌으나 작은 방엔 자신들이 열어놓은 방문 틈 사이로 고요히 달빛만 스며들고만 있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검은 그림자는 사찰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낮 동안 절집에 있다는 정보를 얻어 찾아온 터였으나 허탕을 치자 화를 감추지 못했다. 대웅전 불단 아래는 물론, 산신각까지 뒤졌으나 왕순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주지승이 있는 승방에 까지 올랐다. 혹 주지승이 숨겨주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였다.


숨을 죽인 채 방문을 열었다. 비스듬히 비치는 달빛을 빌어 안을 살폈다. 손바닥만한 방안에 주지승만 죽은 듯 누워있을 뿐이었다. 서로 마주보다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들이 나가자 누워있던 주지는 실눈을 뜨고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왕궁의 보호를 받는 호국사찰인 이곳 신혈사神穴寺 주지를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자객은 미련이 남은 듯 재차 전각을 둘러보았으나 여전히 적막한 공기만이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멀리서 새벽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비수를 품에 감춘 그들은 어두운 그림자를 이끌고 황급히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양주 삼각산 기슭, 신혈사의 아침이 밝았다. 땅굴에서 나온 왕순은 대웅전에 들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가련한 목숨 구해주셔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두 눈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올려다보았다. 불단 중앙의 석가모니불이 지극하게 굽어보고 있다. 그때 주지승이 두드리는 청아한 목탁소리가 법당 안을 울리고, 산 깊숙한 곳까지 퍼졌다. 왕순이 올리는 절이 길게 이어지자, 그의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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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로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청년이 훗날 고려 8대 임금 현종이 되는 왕순(991~1031)이다. 그는 불륜의 씨앗으로 잉태되고 어머니 죽음을 담보로 이 세상에 태어난 비운의 왕이었다.


어머니 헌정왕후獻貞王后는 고려태조 왕건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아들 대종 왕욱의 딸로 태어났다. 즉 왕건의 손녀였으며, 고려 4대 임금 광종의 권유로 광종의 아들인 경종에게 언니 헌애왕후獻哀王后(964~2102, 훗날 천추태후가 되는 여인이다)와 함께 혼인을 하여 왕후가 되었다. 아버지 대종 왕욱이 일찍 죽어 두 자매는 황주의 황보씨 가문에서 외할머니 신정왕후의 손에 자라났으니 황보씨 성을 따르게 했다. 두 자매를 며느리로 맞은 광종의 숨은 의도는 세력이 막강했던 황보씨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친 오라버니가 6대 임금 성종成宗이었다.


화면 캡처 2023-12-01 104641.jpg 출처 : 위키백과





동생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자 더는 왕궁에서 머무를 수 없어 사가로 돌아와 머물렀는데, 그녀 사가는 왕륜사 근처였다. 그곳에는 태조왕건의 제5비 신성왕후 김씨 소생인 안종 왕욱이 살고 있었다. 스물에 청상과부가 된 헌정왕후는 외로움에 숙부가 되는 안종 왕욱을 자주 찾아가 마음을 달래곤 했다. 남녀 사이란 진정으로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것일까?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숙부와 연정을 품게 되었다.


사랑을 주면 과실이 열리듯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말았다. 둘은 이 일을 어찌할 줄 몰라 쉬쉬 하였으나 왕욱의 처가 이 사실을 알고 말았다. 동네방네 떠든 덕분에 결국 성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니 노한 성종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삼촌인 안종 왕욱을 사수헌(경남 사천)으로 귀양을 보내 버린다. 그리고 어머니 헌정왕후는 왕욱이 유배가던 그해 991년 7월 길에서 홀로 아이를 낳자말자 산욕으로 죽어버리니 그 아이가 바로 왕순(현종)이다.


성종은 누이동생의 아들이자, 사촌동생인 왕순을 가엾이 여겨 궁궐로 데려와 기르게 하였는데, 유모가 왕순에게 ‘아버지’란 말을 가르쳤다. 하루는 성종이 찾아왔을 때에 두 살이 된 왕순이 성종의 무릎위로 기어가 ‘어버이 아버버’하며 더듬자 성종은 눈물을 흘리면서 ‘천륜을 이리 떼어 놓을 순 없다.’ 하며 아버지가 유배가 있는 사수헌으로 왕순을 보내 아버지 왕욱과 함께 살게 했다.


어린 왕순은 유배아닌 유배를 아버지와 함께 보내게 되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였다. 아버지 왕욱이 사수헌에서 병이 들어 죽자 왕순은 다시 개경으로 돌아와 궁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왕순의 본격적인 시련은 그때부터였다. 불과 다섯 살에 고아가 된 그는 그해 그를 아끼던 성종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5대 임금이었던 경종의 아들 송誦이 17세의 나이로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그가 바로 고려 7대 임금 목종穆宗(재위 997~1009)이다. 경종이 자신의 아들 송을 두고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 것은, 그가 죽을 당시 아들 송은 겨우 두 살이었다. 또한 족보가 난삽하긴 하여도, 광종의 사위이자 자신과는 처남매부지간이었으며, 더불어 사촌동생이니 유달리 성종을 좋아했다. 자연히 어린 아들을 부탁하며 왕위를 성종에게 물러준 까닭이었다.


불륜은 운명처럼 찾아오는가? 자매가 경쟁하듯 헌정왕후의 언니인 헌애왕후도 불륜의 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즉 경종이 죽자 외척이었으며 당시 승려였던 김치양金致陽과 정을 통하니 두자매가 나란히 불륜의 씨앗을 만들고 말았다. 성종의 치적이 빛을 발할 때에 일국의 국모가 김치양과 정을 통하여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니 노한 성종은 김치양에게 장형杖刑을 치게 하고, 개경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를 보내버렸다.

하지만 세월은 어김없이 흐르는 것, 결국 성종이 997년 음력 10월에 병이나 죽자 경종의 아들이었던 목종이 등극한다. 더불어 힘을 얻게 된 것은 성종의 누이동생이며 왕순의 이모였던, 목종 어머니 헌애왕후였다. 기회를 엿보며 지내던 헌애왕후는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천추전에 거처를 하며 스스로 천추태후라 부르게 하였으며, 17세의 목종을 대신해 섭정을 실시하니 모든 실권은 천추태후가 장악하게 된다. 그가 처음 한 일은 성종에 의해 유배가 있던 김치양을 불러들이는 일이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김치양은 물 만난 고기였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는 우복야右僕射 겸 삼사사三司事 등의 지위에 올라 핵심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김치양은 공공연히 천추전을 들락거리며 정을 통하였으며, 궐의 대신들도 그의 눈치를 살피며 그에게 줄을 대기 시작했으니 인사권까지 장악한 그는 막강한 권력을 움켜쥐게 된다. 권력이 쏠리면 부가 넘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드는 것이 수순이었던가? 대궐보다 큰 집을 지어 여성전麗星殿이라 이름 하였으며, 그 가운데 둥근 연못을 만들어 온갖 희귀한 물고기를 풀어놓고 주위엔 희귀동물들을 길렀다.


뿐만 아니었다. 백성들을 동원해 성숙사星宿寺와 십왕사十王寺를 지어 자신의 원찰로 삼으니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었다. 또한 천추태후의 몸과 마음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는 결국 1003년(목종 6)에 둘 사이에 아들을 낳았으니 야심가 김치양에게는 더없는 호재로 작용하게 된다. 즉 비리비리한 목종이 아들을 생산할 능력이 없음을 알고, 자신의 아들을 목종의 뒤를 이을 왕으로 만들고자 과욕을 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침 어머니 천추태후의 퍼런 서슬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나약한 목종은 도리어 김치양에게 더 높은 벼슬을 안기니 조정의 백관조차 그에게 빌붙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허울뿐인 임금의 무력감은 절망에 젖어들게 하였으며, 이것이 도를 넘자 결국 남색을 밝히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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