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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Dec 06. 2023

여영부영 살지 마

인생은 리듬을 타고

      


어쩜 저렇게도 아름다운 선율을 담아낼까. 팬플룻을 부는 윗입술이 마치 인형이나 애니메이션 속 영상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따라 하다 미소 짓게 된다.      


유튜브 영상에서 남아메리카 아마존 인디언들에서나 불 듯한 엘 콘도르 파사, 외로운 양치기를 비롯해 영화음악 황야의 무법자, 이선희의 인연․아름다운 강산 등의 연주는 너무나 쉽게 해버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연주가 끝난 뒤 뒤따르는 여운은 그야말로 환상 가득한 환희로 가슴이 울렁댄다. 주눅 든 인생을 되살리는 진정한 마법사다.     


예담(藝潭) 선생은 초등학교 교직에 오랫동안 있었다. 언제 퇴직한 것인지는  베일에 가려 있지만, 몇 다리 건너면 평소 필자와 인연이 있는 분도 연결이 되는 것으로 보아 대구에서 대학교를 마친 듯하다. 올해로 나이가 70세가 넘었으니 진정한 노년의 삶을 보란 듯 즐기는 중이다. 그리고 호탕한 웃음소리는 상대와 간극이 없음을 스스로 밝히는 의미로 해석한다. 필자와의 연연은 앞서 ‘삑사리’에서 밝혔듯 구담 선생이 생을 마감하면서 선물로 안겨주었다는 것을 지울 수 없다.      


그녀가 팬플룻과 만난 지 십여 년이 훌쩍 넘었다. 한 우물을 십 년만 파면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다는 말을 믿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팬플룻에 대한 그녀만의 남다른 애착,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보이지 않은 곳에서 고독한 연습의 기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홀로만의 지하실 연습장에 몸을 담아 악보와 리듬과 소리에 전력투구하는 그녀를 보면 불가의 가릉빈가 같다는 느낌이다. 천상의 미음조(美音鳥)의 소리를 듣노라면 마치 석탑이나 승탑, 대웅전 불단에 새겨진 가릉빈가의 춤사위도 떠오른다.     


어쩜 마땅한 일이다. 전국 콩쿠르에서 대상을 시작으로 다양한 상을 휩쓸면서 작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떠밀리듯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 단체 초청 공연은 이제 그녀의 직업처럼 되어 버렸고, 거리공연은 일정 맞추기도 힘든 인사가 되었다.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주관해 ‘실버마이크’, 즉 60세 이상 예술가를 대상으로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원을 뽑아 팀을 구성하였다. 그녀가 경상권 대표로 ‘대구스트릿컬쳐팩토리’란 이름으로 주목을 받는 까닭도 결코 우연이 아니란 뜻이다. 문화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녀의 팬플룻과 색소폰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각설, 필자가 아름다운 그녀의 선율에 반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자라 꼬리만큼도 의심하지 않은 채 팬플룻에 도전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녀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의외였다. 처음 입술을 대는 순간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칭찬에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다졌지만, 여전히 애착은 열정의 시작이었다. 일 년 뒤로 미뤄둔 것이 벌써 삼 년째다. 





그리고 올해 3월부터 하모니카로 그녀와 합주하는 영광을 가졌다. 그녀 리듬에 얼추 따라 할 수 있다니? 그녀가 내게 보여준 칭찬이 하모니카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녀 연습실에서 화면과 악보를 보며 리듬으로 화음을 맞추는 즐거움은 이제 내 삶의 보약과도 같은 시간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가끔 추임새처럼 던지는 그녀 잔소리가 날 일취월장하게 하는 음악이었다.     


그랬다. 남다른 노력은 그녀를 더욱 그녀답게 만들어 주었고, 주변을 리듬으로 아름다움을 번지게 하는 마력 같은 힘이 생겨났다. 종교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그녀의 노력이 더욱 큰 찬사를 받으리라. 


자신에 대한 관점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그녀 역시 세월에 속절없이 유린되어 지금의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법하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지만, 그 뒤에는 꼭 자기반성이 뒤를 따라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     


‘윤형방황’이란 말이 있다. 눈을 가리고 걸을 때 아무리 똑바로 걸으려 노력하여도 결국 원형을 그리며 제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것을 일컫는다. 밀림이나 사막에서 종종 조난자에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를 벗어날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가 곁눈질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성큼성큼 걷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주변을 확인하며 걸으면 된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 할 것이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결국 제자리에 머무는 삶이라면 인생은 그야말로 허무가 아닐까. 


노년의 삶이라 부르지 않고 황혼의 인생, 즉 인생에 있어 저물녘에 보여주는 황홀한 노을은 최선을 다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환희다. 스스로 세월에 어쩔 수 없다는 타성에 젖어 눈을 가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진정한 삶의 매듭을 지을 수 있다. 나이 들어가는 맛의 황홀함을 느끼기 위해선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생에 일그러진 마침표를 찍지 않으려면, 본인 모습에서 잘 그려진 수채화나 빈 여백이 아름다운 수묵화와 같음을 느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내 몸에 내가 사정할 때도 있다. 그러나 괴롭지만, 마음이 편한 것이 제일이고, 이것이 정직함이며, 성실한 하루를 보낼 때 행복은 저절로 따라옴을 안다. 지난 과거의 상처가 파편이 되어 가슴을 찌르더라도 늦지 않았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꼼짝하지 않고 마냥 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리는 배와 같다.      

그녀를 떠올리며 공자의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온화하면서도 엄했으며, 위엄이 있었으면서도 사납지 않았고, 공손하면서도 편안했다.”     


믿는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역으로 그 상황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켜켜이 쌓아두고도 상황을 지배할 수 없다면 실패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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