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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Feb 05. 2024

세시풍속

입춘대길




立春大吉 建陽多慶     


2월 4일이 우리나라 24절기 중 첫째 입춘(立春)이었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다. 겨울이 가고 봄이 성큼 들어섰다는 뜻으로, 예부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붙였다.      


가장 흔하게 쓴 입춘첩이 봄이 시작되었으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날이 이어지길 바라는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다. 이 글의 유래는 조선중기 예송논쟁으로 죽음까지 불사하며 경쟁 관계였던 미수 허목과 우암 송시열이라고 한다. 숙종이 입춘을 맞아 미수 허목에게 좋은 글귀를 청하자 바로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지었고, 이어서 우암 송시열이 건양다경(建陽多慶)으로 응수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송시열이 대구 하였다는 ’건양다경‘은 진실인지 의문이다. ’건양(建陽)‘은 1896년부터 1897년 8월, 조선의 연호였다. 따라서 고종 때 ’건양다경‘을 썼다는 설도 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의 왜곡이 아니라면,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들은 내용이긴 하다. 물론 '건양'이란 단어는 오래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창덕궁에 건양문도 있었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진정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인만큼 입춘첩의 내용도 다양하다. 입춘이 되면 집집이 그에 맞게 새해 소원을 써서 붙였는데, 부모님 건강을 비는 것과 동시에 자손의 번창을 소원을 비는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기를 기원하는  ‘거천재 래백복’, 봄이 문 앞에 오니 땅을 쓸면 황금이 늘어나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는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라는 글귀도 있다. 이 외에도 봄에 눈이 녹듯 재난이 사라지고, 행복이 구름처럼 일어나라는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이란 문구도 인기였다고 한다.     




서체가 무턱대고 살아가는 나의 성질을 보는 듯하다



어제 입춘을 핑계로 한 잔한 후 집으로 들어와 취권으로 갈겨보았다. 더불어 그동안 꼼지락댔던 ‘청룡’도 선물로 받은 색연필로 마감하며 올 한해 멋진 일만 일어나길 기원하였다. 욕심과 희망의 중간쯤이면 참 좋겠다.      


이참에 ‘고난을 삶의 원동력으로’ 승화한 우리 민족의 문화에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원한의 미학에는 더없이 성숙해 있는 한국인이다. 여덟 살 난 아이의 울음은 해마다 비로 울리고, 그 원한을 공감하여 무언의 저항을 하는 한국인은 정녕 메타포에 능란한 시인들이라고 한다.


‘원(怨)’과 ‘한(恨)’이란 글자가 있다. 오래전 조선일보 이규태 칼럼을 읽고 메모해둔 내용을 참조하면, 한(恨)이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단어라고 한다. 대신 ‘원(怨)’을 쓰는 데 원이란, 원망, 원통, 원한, 원수 등 억울하고 원통한 일, 응어리진 사연을 뜻이다. 이는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배타적 사고다.



한국 사람은 숨겨진 인간의 불행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 일종의 휴머니즘의 특징일 수 있다. 백성은 원을 공감함으로써 원혼을 달래는 의식에 약자로써 공동체의식이 강하다. 그 원한에 대해 공감하면서 무언의 저항을 하는 데, 그 방법이란 내 속에서 스스로 발효시켜 한(恨)으로 승화하는 데 그친다.


한이란,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대신 내 속에서 스스로 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나 중국에 원이란 말은 있어도 한이란 말은 없다는 의미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여리고 착하기만 한 심성이여서일까? 아니다. 외세의 침략에 늘 무방비상태로 당하는가 하면, 자고나면 전쟁과 역병, 부역에 시달리다보니 내 대에서는 그저 이렇게 끝내주길 참고 견딜 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유독 미래불, 즉 미륵신앙이 강하게 퍼진 까닭이다. 내 아들들에게 지금의 고통과 아픔을 대물림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산 마애삼존불을 두고 ‘백제의 미소’라 했던 모 선생의 표현은 맞지 않을 수 있다. 당시 백제 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살지 않았다. 단지 그렇게, 아픔도 고난도 없는 불국토를 염원하였을 뿐이다. 우리네 소망을 무던한 바위를 다듬어 불국토를 만들어 놓았다.

    

각설, 우리 민족은 한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의 대에서 아픔과 고난을 삭혀냈다면 숙성된 과거를 응축해 희망의 메신저, 즉 에너지로 새롭게 승화 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미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살아 있어서다. 우리 민족 특유의 ‘하면 된다’는 정서가 곧 한에서 시작되었다.     


넓고 크다는 ‘클 한(瀚)’자도 우리 민족에겐 별난 의미가 있다. 한(瀚)은 나눔의 의미다. 한가위(추석)는 설날과 함께 우리 최대 명절인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초추, 중추, 종추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붙은 이름이며,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란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우리의 옛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가위란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곧 백성의 풍농과 풍어를 기원한다는 뜻이 담겼다.           




: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여름 :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가을 :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겨울 :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24절기 음식

  - 입춘 : 미나리․당귀싹․달래․냉이․메갓 등 오신채(봄의 시작)

  - 우수 : 오곡밥, 귀밝이술(봄비)

  - 경칩 : 계피떡, 풍년초․냉이 등 들나물(얼음이 녹고 개구리가 잠에서 깬다)

  - 춘분 : 민들레․씀바귀․냉이 등 쓴나물 무침(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짐)

  - 청명 : 화전(농사준비)

  - 곡우 : 전통차, 곡차(농사비가 내림)

  - 입하 : 장아찌김밥, 육포(여름의 시작)

  - 소만 : 산채, 민물매운탕(농사시작)

  - 망종 : 수리취떡(씨뿌리기)

  - 하지 : 감자전, 감자송편(낮이 가장 김)

  - 소서 : 보리밥, 상추쌈(더워 시작, 장마철)

  - 대서 : 보리단술, 밀전병(가장 무더운 때)

  - 입추 : 가지요리(가을 가지는 막내사위도 주지 않는다), 무순․가지나물․다래순․비비추 등 말린 나물(가을의 시작)

  - 처서 : 메밀묵, 도토리묵, 청포묵(일교차가 심함)

  - 백로 : 송이․표고․싸리버섯 등 버섯요리(이슬이 내리기 시작)

  - 춘분 : 오리송편, 토란탕(밤이 길어짐)

  - 한로 : 국화전, 당귀․산초․차조기․당근 등 부각(찬 이슬 내림)

  - 상강 : 홍시, 겉절이, 수수부꾸미(서리 내림)

  - 입동 : 김장김치, 민들레․씀바귀․고들빼기 등 쓴나물 김치(겨울의 시작)

  - 소설 : 약초장아찌(얼음이 얼기 시작)

  - 대설 : 콩비지찌개, 두부요리(추위와 함께 눈이 내림)

  - 동지 : 팥죽, 동치미(밤이 가장 긴 날)

  - 소한 : 식혜, 가래떡(강추위)

  - 대한 : 꿩고기, 강정 등 한과(강추위 /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이 있다)

* 어디서 베껴놓은 자료인데 도무지 출처가 모호하다.                


발이 달린 서양의 용과 달리 우리 동양의 용은 비를 몰고, 구름을 타고 다니는 뱀의 몸이 제격이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 입춘대길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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