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2019년 여름
짧은 모나코 여행은 마지막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긴장감으로 두근거렸다.
니스의 밤 골목을 혼자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 저녁 8시 정도에는 니스에 도착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시간을 잘 맞춰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 했다. 기차역에 시간 맞춰 도착하고 거기서 표를 사기 위해 모나코빌에서 역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은 초조했다. 제 시간에 잘 도착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에 도착하자마자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역에는 역무원이나 개찰구가 보이지 않았고, 무인 표 판매기만 있었다. 그리고 그 판매기는 온통 불어로만 가득 차 있었다. 불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 기계로 혼자 표를 사는 건 불가능했다. 설상가상 유심이 먹통이었기에 번역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주변을 급히 둘러보며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찾았다. 당시의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데에 소질이 없었지만, 위기는 없던 용기를 끄집어내 주었다. 6살쯤 되어보이는 딸아이와 손을 잡고 있는 젊은 아빠가 눈에 띄었다. 아이의 아빠는 친절할 거라는 믿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 분은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셨다.
여행 중 만난 유럽의 부모들은 대부분 길에서 모르는 사람을 돕는 방법을 자식에게 교육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모두 우리를 직접 돕지 않고 자식이 돕도록 시켰다. 그 아이의 아버지 역시나 나를 통해 어린 딸에게 길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이 분의 어린 딸은 그 표 판매기처럼,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는 거였다.
아이의 아버지가 멀리서 지켜보는 동안 아이는 나를 표 판매기로 데려갔다. 그리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불어로 계속 말을 했다(아마도 어느 역으로 가고 싶냐고 묻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소통을 했는지 모르겠다. 유럽 여행 중 바디랭귀지로만 대화한 것은 그 때가 유일했다. 어떻게 우리가 서로를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니스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손에 얻을 수 있었다. 아직도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문이다.
그 날의 기억은 부모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그날 아이의 아버지에게서 미래에 내가 어떤 아이의 부모가 될 기회가 있다면 닮고 싶은 모습을 보았다. 어린 아이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멀리서 지켜봐주면서, 아이가 낯선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와주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나에게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길에서 만난 낯선 이와 길게 대화하는 것을 피했고, 누군가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길에서 만난 모르는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스무살을 넘긴 나에게도 아직 어려운 일을 그 작은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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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오고 몇 달이 흐른 뒤 지하철역에서 한 중국인 여자아이를 만났다. 중학생인 것 같았는데,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 그 아이는 초조한 표정으로 자꾸만 자신의 핸드폰을 가르켰다.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여력했다. 몇 초 후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았다. 아, 이 애 핸드폰 배터리가 없구나.
말이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유일한 소통 수단인 핸드폰마저 꺼져버렸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 여자애의 겁에 질린 얼굴에 니스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살 수 없었던 내가 겹쳐 보였다. 다행히 나는 여유롭게 집에 돌아가던 중이라 시간이 있었고,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있었다. 배터리에 핸드폰을 연결해주자 그제야 아이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 아이는 몸짓 손짓을 열심히 써가며 조금만 충전되면 바로 가겠다고 말했다. 더 충전해주겠다고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핸드폰이 켜지고 5퍼센트가 채워지자 아이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며 급하게 사라졌다.
모나코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 아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황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아이를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밀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성시킨 여행의 기억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 아이를 돕고 싶게 만들었다. 사람 사이의 온기는 이렇게 전해지는 거구나. 누군가에게 받았던 소중한 친절이 대륙을 건너 다른 누군가에게로 전달되고,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두려움을 넘어 서로를 마주할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