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썬 반나절 투어를 갈 예정이고, 여행을 다녀오면 남은 시간은 쉬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밖을 내려다보니 호이안의 이른 아침이에요. 지난밤 함께 했던 크리스천 삼촌이 오후에 계획이 있냐 하길래 오늘은 미썬 투어를 간다고 하니 로버트와 로라 그리고 줄리앙과 함께 근처 해변에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해요.
그 말을 들으니 유적지보다 자전거를 타고 해변에 가고 싶어 졌어요. 1층에 내려가니 때마침 투어버스가 와있는데, 1층 카운터에 생각이 바뀌었다며 바로 취소를 했어요. 비록 환불은 안되었지만, 그 순간엔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지요.
여행을 가면 종종 느끼는 점이지만, 여행이 항상 계획대로만 흘러가진 않더라고요. 제가 스스로 계획을 변경하는 순간도, 예상치 못한 일에 계획이 변경이 되는 순간도 발생하거든요.
문득( 이런 점은 학교조직 내의 우연적인 의사결정을 주장한 Cohen과 Olsen(1972)의 쓰레기통 모형(Gabage can Model) 과도 많이 닮아있어요. 여행기를 쓰는 와중에 코헨과 올슨이 생각이 나다니요. 그저 휘발성 메모리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장기기억에 저장이 되어있던 건 아니었나 싶어요. 학교조직 내에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우연히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이론인데, 저는 실제로 이 모형을 닮은 의사결정을 교단에 있을 때 저희 과 선생님들과 함께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인지) 이 와중에 생각이 났네요.
갑작스러운 저의 결정에 투어를 안 가게 되니, 게다가 해변으로 향하기로 한 출발 시간까지 시간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지난밤에 함께 했던 미국에서 온 브랜든이 로컬푸드를 먹자고 해서 근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투어 예약을 안 할 걸 그랬어요.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요. 제 선택인 걸요. 머리보단 가슴이 시키는 곳으로 가는 게 맞으니까요. 그래서 아침은 그렇게 반미샌드위치와 치킨 볶음밥을 먹었어요. 정말이지 음식메뉴에 fried rice with 만 들어가면 큰 걱정 없이 주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침 겸 점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브런치라고 해야겠네요. 브런치를 먹고 나니 바이크를 타고 온 브랜든이 뒷자리에 태워주겠다고 해서 바이크 뒷자리에 앉아 손은 은색바를 잡고 다리는 고무패킹이 써진 받침대에 발을 올렸어요. 저도 바이크를 타고 싶은 욕망은 목까지 차올랐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서 뒷자리에 타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요.
이곳은 정말이지 베트남 현지인들만 가는 식당이었어요. 메뉴판이 죄다 베트남어로만 되어있더라고요. 말 그대로 로컬레스토랑에 왔다는 거죠. 예전에 진짜 중 식당에 가서 자장면을 식혔는데 못 알아먹어서 그냥 나온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주문을 받는 여성분만 제스처로 이해를 할 수 있는 정도였거든요. 메뉴를 브랜든과 서로 둘러보다가 사진이 나와있는 음료수란을 한참을 살펴봤네요. 립톤티가 있더라고요. 이미 머릿속에선 한국에서 물처럼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생각이 났지만, 아메리카노가 있는지 물어봐도 이해를 못 하다 보니, 결국 립톤 티가 됐던 것 같아요. 브랜든과 저의 모습이 신기했던 것인지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도 있어요. 아이를 안고 밝은 미소를 짓는 여인의 모습과 식사와 대화에 열중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참 귀한 순간이구나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붕사이로 내려오는 따스한 햇살이 살짝 덥다고 느낄 때쯤 주문했던 립톤 티가 나왔어요. 레몬도 주네요.
차를 한 모금 입안에 머금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나무로 된 재단이에요. 이곳은 지금껏 봐왔던 여느 가정집 앞의 재단보단 화려하네요. 물어보니 앞자리에 앉아 있던 분이 열심히 휴대전화를 검색하면서 단어를 보여주고 주문을 받았던 이가 귀띔해 줬어요. prosperity for our family and business라고 해요. 맞아요.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거, 생각하는 거, 먹고 입는 것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시원하지 않지만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 잠시 쉬었다가 므이네로 가는 슬리핑 버스를 예약하러 근처 여행사에 왔어요. 여사장님이 친절하고 밝으세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옆자리 연하인 남편과 결혼하셨더라고요. 남편 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죠. 순둥순둥해 보이더라고요. 사진 한 장을 부탁드리니 흔쾌히 수락하세요. 참고로 지금도 페이스북에서 서로 라익을 눌러주는 정도는 하네요. 또다시 간다면 글쎄요. 맥주 한잔 정도와 가볍게 식사정도는 할 수 있지 않으려나요.
나트랑(나짱)으로 가는 12시간짜리 VIP 슬리핑 버스를 예약하고, 호스텔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근처 해변으로 가요.
가다 보니 로라가 송아지를 발견했어요. 비록 햇살을 피할 곳은 없었지만, 무언가 해방감이 밀려와요. 투어는 짜인 계획대로 가는 거잖아요. 한동안 얽매여야 하고요. 어쩌면 투어를 예약하길 잘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돈을 날렸다는 생각보다 자유로움을 찾아 나선 다는 생각에 오히려 행복했거든요.
잠시 망설였지만, 괜찮다고 안아보라는 말씀에 안아보니 따뜻하고 얌전해요. 행복하게 살라고 말을 건네어요.
제 사진을 담아달라고 하고 빠르게 함께한 크리스천 삼촌과 로버트도 화각 속에 담아봐요.
해변에 가까이 가니 근처에 로컬 국숫집이 있어요.
예상도 못한 곳에서 간이음식점을 만나다니요. 다들 이곳에서 한 그릇씩 먹고 가자고 입을 모았어요. 물론 단체 사진도 담았는데, 제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신비주의로 가게요. 하하하
선글라스 착용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로버트를 빠르게 담고 나서 사진을 보여줬더니 상당히 만족하는 눈치예요.
우리만 초대받은 건 아니네요. 현지인들에게도 바다는 친숙한 공간이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항상 그곳에 있지만, 마음처럼 자주 올 수 없는 그런 곳일지도요. 바지만 한 벌 더 챙겨 왔으면 바다에 뛰어들었을 텐데요. 이 날은 바라보는 걸로 만족을 했어요. 그래도 베트남까지 와서 바닷바람을 쐬고 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
해변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날이 확실히 더웠던 것인지 다들 피곤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어요. 프랑스에서 온 줄리앙과는 다음을 기약하고 나머지는 근처 식당에서 늦었지만 제대로 된 점심을 먹었네요. 내일 나트랑(나짱)으로 바로 간다고 하니, 로버트가 아쉽다며 날짜를 조정할 수 없냐고 하네요.
그래서 계획을 살짝 변경했어요. 호이안에서 하루 더 머무르고 냐짱의 2박 예정인 숙소에 전화를 걸어 하루 늦춰서 2박을 한다고요. 하루 더 머물게 될 숙소는 수영장이 있는 롱라이프 호텔이에요.
기존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오후에 다시 호이안의 밤거리를 함께 둘러봐요. 확실히 두 번째로 가는 호이안의 밤거리는 익숙함과 함께 여유로움을 주는 것 같아요. 빠르게 돌아다니며 둘러볼 필요 없어서 이겠지요. 게다가 해변도 다녀왔으니까요. 추억은 충분히 만들었으니까요.
아이들을 위한 놀이 기구가 낯설지만 담아보고요.
연등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와요. 새해에 우리가 일출을 보듯 이들도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는 거겠지요. 새해에 좋은 일을 기원하는 바람을 담아서 물에 띄워 보내네요.
예정대로 내일 버스를 타려면 일찍 잠을 청해야 하지만, 하루 정도 여유를 만들어 놓으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밤새 돌아다니고 로버트와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 문이 잠겼더라고요. 한 잔 더 할 수 있었지만 내일을 위해서 로버트와 다음을 기약했어요. 꼭 다시 보자면서요.
투박하고 엉뚱하지만 유쾌했던 로버트와 함께 마지막으로 사진을 담아요. 벌써 열해전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사진만이 남는다는 말로 이 시간을 추억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건 다시는 못 만나는 거잖아요.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시 새로워질 테니까요. 꼭 그런 날이 오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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