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베트남01

호이안으로(DAY4)

by 에리기

하노이를 떠나는 이른 아침이에요. 시끄러웠던 지난밤을 뒤로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일찍 일어났네요. 오늘은 노이바이 공항에서 비엣젯을 타고 다낭으로 이동 후에 로컬택시를 타고 호이안으로 갈 예정이에요.

바이크를 빌린 알렉스가 일찍 간다는 말을 듣고 마지막 인사를 전해야겠어요.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아침을 먹으러 왔어요.

하노이에서의 최후의 만찬이라고 해야 하려나요. 즐거웠던 순간들은 잠시 사진첩에 넣어두고, 천천히 아침을 먹어요. 계란 프라이를 케첩과 먹는 건 참 오래간만이 아닌가 싶었네요.

배낭을 체크하고, 놓고 가는 것이 없는지 확인한 뒤

기울어진 거울만큼이나 어질러진 침구류를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사진을 담았어요.

하노이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 점심을 함께 먹자고 약속한 쇼타로를 만났어요. 점심이 참 맛있더라고요. 기억하고 싶을 만큼 말이죠. 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항상 짧은 건지 모르겠네요. 인사를 나누고 교토에 가면 연락한다고 말을 건네고, 꼭 여행사 사장님이 돼야 해라고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어요. 마지막 식사도 제가 사줬다지요. 조카뻘이라 사줘야겠더라고요.

저와 열 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 녀석을 보면서 저의 20대가 생각이 났거든요.

지난밤에 봐놓은 베트남 항공사로 가면서 시선이 머문 베트남의 한 가정집이에요. 관광지이다 보니 놓치기 쉬운 순간들이 아닐까 싶어요.

베트남의 한 가정집

미리 봐놓은 길을 따라가니, 역시나 헤매지 않고 제시간에 미니밴에 몸을 실었어요. 이제 로컬 플레인을 타고 다음 여행지로 가봐야지요. 항상 다음 여행지로 갈 때면, 익숙해진 공간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에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아요.

노이바이 공항으로 가는 중에 담았어요. 하노이를 추억하기 위해서였는데 담고 보니 베트남의 현재인 것 같아요. 서양인 커플과 바이크를 타고 가는 베트남인들의 일상을 동일선상에서 보는 것이 이젠 낯설지 않아요.

베트남의 현주소를 보는 듯한 순간

비행기를 타기 위해 노이바이공항의 국내선으로 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어요. 일찍 도착하면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면 되니까요. 무언가 공항이 넓고 거대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순간에 사진을 담아봐요.

노이바이 공항 국내선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노이바이 공항을 둘러봤어요. 낯익은 간판이 보여서 인지 내심 마음이 든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죠.

제가 타게 될 비엣젯 카운터 앞에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어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라는 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여행을 가면 으레 수비니어로 항공 티켓이나 영수증들을 한 곳에 모아서 정리하는 편이에요.

뒤편에 보이는 폴더 안의 종이가 미리 출력해 온 이 티켓(E-ticket)이고 앞에 보이는 영수증이 국내선 티켓이 되겠네요. 요즘엔 흔히 보이는 지류티켓이지만, 이날 본 티켓은 무언가 신선한 느낌이었네요.

#4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던가요. 베트남 국내선에선 혼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온 모습이 신기했던 가봐요. 저를 보며 웃으며 무슨 말을 했는데, 시선보단 밥이 중요했어요. 맛이 있더라고요.

4시 35분이 보딩 타임이었는데, 연착이 되어서 55분 즈음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줄을 서기 시작하려는데, 제 눈을 한 번 보고, 제 앞으로 커다란 가방을 끌고 앞서는 이들도 있었지만, 여행이잖아요. 그리고 저는 이방인이고요. 그래서 그냥 바라보고 기다렸어요. 굳이 부딪힐 이유가 없으니까요. 때론 기다림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어요.

역시 소형 항공기 이어서인지 길게 어진 셔틀을 타고 이동을 해요. 그래도 막상 셔틀에 오르니, 살짝 설렘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주변을 둘러봤어요. 공항은 어디든 넓고 탁 트여있네요. 시원한 바람이 불길래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물론 안전한 여행을 위해 항상 그러했듯 습관적으로 빠르게 화살기도를 하고요.

오래전 비슷한 곳에서 여객기에 오르던 순간이 생각이 났어요. 아마도 이집트에서 귀국을 하던 때가 아닐까 싶어요. 베트남에 와서 아련한 기억 속의 공간인 카이로를 떠올리게 되다니요.

자리에 앉고 보니 조종석이 한눈에 들어와요. 그 찰나에 흘러나오는 비엣젯항공의 브랜드 음악인 걸까요?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는 고국인 베트남에 대한 향수를 말하는 듯 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와요. 그래서 휴대폰을 끄기 전에 빠르게 검색을 해봤는데 제목을 못 찾았다지요.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 노래의 제목을 알게 됐지만요.

호이안을 갈 땐 편하게 가자는 생각을 했었는데, 하늘을 보니 비행기 타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네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모든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이렇게 약속을 하고 굳이 올라오지 않으면, 마주할 수 없는 순간이니까요.

한숨 자고 나니 오후 6시에 가까운 시간이에요. 다낭이 허니문으로 유명하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글이 적힌 광고가 있을 줄은 몰랐다지요. 그래서 반가움과 동시에 낯설다는 생각에 사진으로 담아 봤어요.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저의 숙소는 다낭이 아니라 빠르게 로컬 택시를 잡아서 호이안으로 가야 했기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투명 폴더 안에 넣어둔 숙소의 주소를 눈을 크게 뜨고 밝은 조명아래에서 다시 한번 바라봐요. 주소의 끝자락엔 역시나 호이안이에요. 빠르게 다낭의 공항을 사진으로 담고, 택시 승강장을 찾아 나서봐요.

계획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막연한 생각이었던 로컬 택시를 타야 해요. 막차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에 택시를 잡듯, 택시 정류장 앞에서 호이안을 외쳤어요. 호이안을 못 가면, 다낭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거든요. 하하하하. 달리 선택권이 없던 순간이에요. 어쩌면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기도 해요. 다낭 국제공항에서 호이안까지 40만 동(공 하나 제외하고 나누기 2 하면 한국 원) 정도를 선불로 택시 기사에게 지불한 후에 호스텔 주소를 보여주고 택시에 올랐어요.


사실 이때만 해도 초긴장 상태였어요. 갑작스러운 비행기의 1 시간 연착으로 모든 계획들이 줄지어 1 시간씩 미뤄지다 보니, 제가 어둠 속에서 택시를 타게 될 것이라고 상상을 못 했거든요. 게다가 전적으로 기사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최대한 기사님과 친밀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어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오른손으로 꽉 쥐었다는 건 비밀이에요. 하하하하.


상상은 항상 두려움을 낳는다고 그랬던가요. 40만 동에 만족했던 것인지, 여행자인 저에게 호기심이 많았던 젊은 기사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긴장감이 이내 편안함으로 바뀌었어요. 하지만 그 와중에 지갑과 여권을 넣어두었던 위치를 한 번씩 더 떠올려봐요. 항상 여행을 가면 긴장상태로 귀중품에 해당되는 위치를 수시로 확인을 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퇴근길이라는 기사님의 말에 고맙다고 그랬어요. 저도 따지고 보면 예약한 숙소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잠을 청하러 가는 길이니까요. 기사님은 돈을 받고 퇴근을 해서 기뻤고, 저는 마음 편히 다낭에서 예약한 호이안의 숙소로 가게 되어 기뻤다지요. 하지만 걱정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도착 예정시간보다 늦지 않을까라고 한참을 걱정하던 중이었으니까요.

많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거의 온타임에 도착한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도착해서 예약을 확인하고 잔여 숙박비를 지불하고 내일 가게 될 미썬 유적지 투어를 신청했어요. 미리미리 신청해 놓으면 고민할 시간이 줄어드니까요. 고민하기 전에 빠르게 투어를 예약하는 거지요.

잠을 청할 철제 침대를 배정받고 나서 짐을 풀고,

비상금과 혹시 모를 예비 카드들을 한데 모아 개인 락커에 넣어두고 미리 준비해 온 열쇠키로만 여는 자물쇠로 잠가두고요. 분실 우려가 있는 키는 술을 마시더라도 바로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넣어둬요. 물론 그 짧은 순간에 더블체크를 해요. 여행도 저만의 루틴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항상 아무리 피곤해도 플랜 비를 생각하고 움직이거든요. 그렇게 했을 때 여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5, #6

짐을 정리하고 빠르게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 찰나에 같은 방을 배정받은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저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네어요. 짧게 통성명을 하고 저녁 먹으러 간다길래 같이 갈 거냐는 말에 그랬네요. 그럼 정말이지 기쁨이자 영광이라고요.

역시 같은 숙소에 머물면 금방 친해져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밖으로 나왔어요. 하노이에서 사용하고 남은 지폐를 대충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 나왔는데 충분한 것 같네요. 다 함께 걸으니

인원이 좀 많아요. 그러니 어느샌가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숙소를 나와 걷다 보니

호이안의 밤거리가 시야에 들어오네요. 역시 관광지는 관광지인가 봐요. 사람이 넘쳐나더라고요.

호이안을 가로지르는 투본 강의 다리를 지나가는 중에 담아봤어요. 호이안이라는 글귀를 보니 제대로 온 게 맞는 것 같아요. 한두 시간 전에는 호이안에 가네 마네하며, 다낭에서 노숙을 해야 하나 하며 걱정을 하던 저였는데 말이에요. 하늘이 이렇게 저에게 천사들을 보내주신 건 아닌가란 생각에 화살기도로 감사기도를 드렸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시간 중에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진 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기도를 하고 열심히 했을 때만 도와주셨던 시간이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렇게 한동안 걱정했던 순간들도 빠르게 지나가고, 지금은 좋은 이들을 만나서 호이안의 중심부에 들어와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니까요.

"Breaking the ice"라고 하나요?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함께 온 이들과 사진을 담았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명암조절은 실패한 것 같아요.

식사를 주문한 와중에도, 주변을 둘러보며 강물에 비친 형형색색의 빛물(는 불빛이 닿은 물들을 '빛물'이라 불러요) 들을 담아봐요.

식후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클럽에 들어가서 맥주 한 잔 마시러 자릴 옮겼어요. 영국에서 온 로버트와 오스트리아에서 온 로라, 루마니아에서 온 저에겐 삼촌 뻘쯤 되는 크리스천 삼촌과 프랑스에서 온 줄리엔 그리고 이젠 기억이 나지 않는 몇몇 이들까지 한 곳에 모이니 정말이지 그 영화 제목 기억나시나요? "As Good as It Gets"라고 하지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더라고요.


술이 몇 잔 들어가다 보니, 로버트가 로라와 제 앞에서 이집트의 시샤를 피는 모습을 보여줘요. 하하하하. 언어를 배우러 간 저였기에, 오래전 머물렀던 이집트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시샤를 체험해보지 못하다 보니, 역으로 시샤를 피는 법을 배우게 된 순간이에요.

이제 막 20대를 시작하는 로라와, 삼십 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저에게, 20대 후반을 달려가는 로버트의 시샤를 피는 모습은 웃음꽃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로라에게 제가 그랬다지요. " Love at first sight?"아니냐고요. 하하하하. 한국에선 "금사빠"라고 부른다며, 설명을 해드리고요.

어딘가 모르게 엉뚱하지만 유쾌함을 지닌 로버트와 이를 바라보는 로라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요.

진지한 로버트의 모습에 반한 로라

이번 사진은 확실히 잘 나왔어요. 10 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이때의 순간으로 회귀하는 느낌이에요. 정말이지 사진만이 남는구나란 말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오늘이네요.

딱 적당히 기분 좋은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 바로 옆 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긴장감이 풀려서 인 건지 흔히 리듬에 몸을 맡긴다고 하지요. 리듬에 몸을 맡긴 순간에 그랬어요. 아! 너무 잘 왔다고요. 라오스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찾은 베트남의 호이안에서의 첫날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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