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이에요. 사용할 금액을 제외하곤 개인로커에 넣어두었기에 지난밤의 술자리 이후에도 마음 편히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지요.
오늘은 닌빈 투어 때 동행했던 동생과 어릴 적 추억의 장소에 갔다가 시티투어를 하고 하노이의 마지막 날을 보낼 예정이에요.
여행을 오면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은 웬만해선 챙겨 먹게 되는 것 같아요. 어제 먹은 것과 동일한
아침을 주문했어요. 역시나 오늘도 팬케이크예요.
전날의 숙취 때문인지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네요.
일어서려는데, 영국에서 온 친구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사진으로 인사를 대신했네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온 영국 귀족을 닮았다고 하니 좋아해요. 하하하. 저도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사진을 보내고 바로 올라왔어요.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 뭐 굳이 돌아다닐 필요가 있나란 생각으로 잠이나 자자며 한 3시간 정도 잠을 잤어요.
어차피 오늘이 하노이 마지막 날이니까요. 느지막이 일어나 가볍게 세안을 하고
커피를 충전하러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하이랜드로 가요.
사흘째가 되니 호안끼엠까지 천천히 걸어가도 될 만큼 거리가 익숙해지니 하노이 본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네요.
게다가 베트남 첫날 저녁에 갔었던 하이랜드를 올려다보니 느낌이 또 다르더라고요.
하이랜드에서 만나자고 했던 동생과 함께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며 어딜 가게 될지를 고민해 봐요.
하이랜드가 유명하긴 하더라고요. 랜드마크라고 해도 충분해요. 멋스러운 재킷과 선글라스를 착용한 여인과 단정한 옷차림과 반듯한 이미지로 반갑게 말을 건네는 소개팅을 하는 듯한 남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긴장감을 느꼈다지요.
하이랜드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반미)로 배를 가볍게 채우고 하노이를 제대로 구경하자며 신투어리스트로 향했어요. 가는 길에 보니, 액운을 날리려는 걸까요? 한 어르신이 무언가를 바닥에 태우고 계셔요.
지도를 따라 걷다 보니 르엉응옥꾸엔 거리에 신 투어 리스트 카페가 보여요. 며칠 전 처음 하노이에 왔을 땐 과연 찾을 수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빠르게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하고요.
르엉응옥꾸엔 거리와 타히엔 맥주 거리의 교차점엔 비아 허이 노점상이 있어서 빠르게 담고 지나갔어요. 참, 그러고 보면 하노이에는 맥주 거리가 많은 것 같아요.
고개를 들어 마주한 하늘이에요. 확실히 태양이 한국보다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에요.
한 동안 많이 걷다 보니 힘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함께한 동생과 택시를 잡아타고, 호안끼엠으로 왔어요. 역시나 2월까지가 겨울인 베트남이어서 그런가요? 교통경찰들도 한껏 두꺼운 제복으로 멋스러움을 뽐내요.
구경을 하다 우연히 아이를 안고 지나가는 젊은 아내와 그 뒤를 따라가는 남편을 렌즈 속에 담아봐요. 잠시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의 장만옥과 양조위가 생각이 났어요. 조금만 더 일찍 담았으면 좋았을 텐데란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감사해야지요. 햇살에 물든 윤슬 덕분에 한 장의 사진에 아름다움을 맛보았으니까요.
두 번째 여행으로 베트남을 온 이유 중에 하나는 옛 추억의 장소들을 재방문해 보기 위함이었어요.
참고로 이 챠오카페는 하노이에 3곳이 있었으나, 두 곳은 코비드 이후에 폐업이 된 상태예요. 라오스 이듬해에 다시 찾지 않았다면, 추억이란 이름의 흐릿한 기억 속의 한 자락으로만 남았을 것 같아요. 물론 이마저도 이제 이 사진 속에만 존재하게 됐지만요.
가족들이 베트남에서 머물고 있을 때 한인 아줌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했던 챠오카페에 다시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했어요.
오래전 가족들과 이곳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식사 후엔 잊지 않기 위해 명함도 한 장 받아왔어요. 그리고 말했죠. 어릴 적에 베트남에서 잠시 머물 때 이 식당에 가족들과 종종 왔었다고요. 이 자리에서 계속 영업을 해줘서 고맙다고요.
식사를 하고 동생 녀석과 근처 성요셉 성당을 찾았어요. 저녁이 되니 역시나 시원해서 좋아요.
역시 과거 프랑스 식민지여서 일까요? 노트르담 성당이 생각이 나요. 실제로도 이 성당은 1886년 식민지 시절에 프랑스 건축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해요. 앞쪽에서 한 번 담아내고 좀 더 뒤로 가서 성당을 렌즈 안에 담아봐요. 주일 미사를 안 나간 지 좀 되어서 일까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성스러움이 느껴져서 고개가 절로 숙여져요. 가톨릭 신자로서 성당에 왔으니 당연히 들어가 봐야지요.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뒷자리에 서있는데 이내 마음이 편해지고 내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처에 유명한 콩카페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확실히 낮보다 저녁이 한산해서 좋아요.
관광객을 겨냥해서일까요. 가격이 저렴하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라 마냥 시원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들어온 김에 카페 안의 실내 사진도 한 장 담아드려야겠어요.
카페를 끝으로 함께 온 동생과 다음을 기약하고, 성요셉 성당 뒤편의 Quang trung 도로에 위치한 베트남 항공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미리 준비하면 내일 마음 편히 이동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노이 첫날에 노이바이 공항에서 타고 온 미니밴과 동일한 차량을 확인했어요.
마지막 날 저녁이어서 그런지 눈 안에 모든 걸 담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6년 새해는 베트남에서 보냈다고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노이에서 사흘간 머물렀더니, 정이든 걸까요. 떠나기 싫더라고요. 사진을 담아가며 호숫가 주변을 거니는데, 오래전 가족들과 놀이공원에서 보았던 솜사탕을 발견했어요.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는 이도 보이고요.
호안끼엠의 야경을 빼놓을 수 없지요.
파인애플에 관심을 보이는 여성 앞에서 자신의 과일이 정말 맛있다는 말을 건네는 듯한 다급한 표정의 상인과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는 남자도 발견했어요. 다들 열심히 산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숙소로 돌아가려는 길에 부자를 발견했어요. 사진을 담아드릴 테니 포즈를 잡아달라고 했을 때예요.
슬슬 날이 어두워지니 하이랜드 앞 인공분수 앞에 오토바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요.
힘든 하루의 일과가 끝나서일까요. 스쿠터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이들에게서 웃음꽃이 떠나질 않아요.
그러다 시선을 잡은 길거리 화랑 앞에서 잠시 머물러봐요. 분명 여행을 왔는데, 귀한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작품 속으로 푹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길펜더의 192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생각이 났어요.
아쉽다는 생각으로 역시나 매일이 축제인 마메이 거리에게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요.
필연인가요? 복잡한 거릴 헤매고 다니는데, 숙소에서 만난 미국에서 온 알렉스를 만났어요.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인연들도 함께요. 하늘이 저에게 좋은 인연들을 보내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그중에 한 친구는 미국에서 온 조나란 친구인데 대화를 해보니, 어릴 때 입양을 가서 줄곧 그곳에 가서 살다가 여자친구가 베트남 사람이어서 함께 이곳에 머문다고 해요. 그래서 잠시 따로 불러서 악수를 하고 말을 건네었어요. 네가 참 자랑스럽다고요. 한국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요. 아르헨티나에서 자원봉사를 위해 왔다는 이름 모를 여인과 스페인계 미국인 알렉스와 한국계 미국인 조나와 베트남계 미국인인 그의 여자친구를 사진으로 담아봤어요. 또 만날 수 있으려나요? 잠시지만 행복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행복이란 게 참 별거 없어요.
2차로 근처 술집 2층에 가서 테킬라를 시켰어요. 각자의 나라에서 테킬라를 마시는 방법을 알려주다가, 미국인들에게 보여달라고 했더니 다들 한 참을 그렇게 웃었어요. 실내에 들어오니, 학부 때 대학 동기들과 한 잔 걸치던 그런 아늑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한동안 나가지도 못하고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며, 잠시 머물렀네요.
2차까지 마시고 나니 다들 술과 친해져서인지 분위기가 화기애애 졌어요. 조나가 산 카메라 봉으로 마지막 기념사진을 담자고 제안을 했어요. 또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좋은 이들을 만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쌓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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