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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웹소설

by 이용기

중, 고등학생이었던 때와 2017~2019년 무협지를 즐겨 읽었다. 황당무계하지만 악당을 무찌르는 이야기에 빠졌다. 재미있어서 그리고 시간을 보내기 좋아서 읽었을 뿐 감동을 받으려는 기대는 없었다.

간혹, 창의적인 소재, 독특한 전개방식에 감탄한 적도 있지만 누런 갱지에 저렴하게 제본된 책 때문에라도 작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재벌집 막내아들>, <사내 맞선>, <내 남편과 결혼해 줘> 등 웹소설이 드라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벌집 막내아들'을 쓴 산경 작가의 유튜브를 찾아보았고, 그의 책 '실패하지 않는 웹소설 연재의 기술'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순수문학을 하는 소설가로서 웹소설을 무시해 왔다. 천박하며 조악하다고 생각했으며 저자를 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은 조금 다르다. 종이 책이 아닌 인터넷을 매개로 독자를 만난다는 점, 작품성보다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 말고는 다를 바도 없다.


MZ세대는 다르다. 남의 시선에 무신경해서인지 눈치를 덜 본다. 남의 평가에 무감각한 사람도 많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먹방이든, 어떤 짓이든 하고 부끄러운 행위를 드러내는 젊은이도 많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깔보며 방송 시청을 기피해 왔다. 시쳇말로 꼰대의 마음을 척도로 삼았던 것이다.


그저께, 난생처음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읽었다. <주무르면 다 나음>이었다. 꼰대의 마음은 여전했지만, '밀리의 서재' 회원이 되고 그 사이트에 무료 웹소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들으며 잠에 들었다. 역시 주어와 술어가 바뀌는 등 도치문장도 많고, 주절대는 스토리, 오타 천지였다. 실망하고 말았다.


어젯밤 속는 셈 치고, 웹소설 구독률 1위인 <전지적 독자시점>을 읽었다. 역시 이어폰을 꽂고 누운 상태로.

충격적이었다. 이 작품을 인터넷을 검색하니 영화로 만든다는 보도가 있었다. 발상의 참신함, 탄탄한 문장력과 플롯, 점점 고조시키는 전개 방식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호함, 심리묘사까지 모든 요소에서 순문학에 뒤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웹소설답게 재미를 탑재한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면서...


밤새 잠을 설쳤다. 웹소설 재미에 빠져 다음 편을 듣느라 그랬다지만,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나도 웹소설을 써 볼까?', '나도 네이버나 카카오에 작가로 등록할까?' 아니면, 웹소설 보조작가를 고용해서 집필실을 꾸미고 공동으로 작업을 할까?, 무협지 독서를 즐기던 캐나다에 사는 형을 불러 집필팀을 꾸밀까? 하는 충동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이글거리는 욕망이 올라온다. 창작은 물론 돈을 벌고 싶다는 의지가 용암이 끓어오르 듯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아야겠다. 큰스님의 말씀처럼 까불지 말아야 한다. 환갑을 넘긴 어른이니 덤벙대지 않아야 한다. 며칠 생각하고도 심장에 화산의 불덩이가 넘실댄다면 뜻대로 할 것이다.


돈을 날리고 실패할지라도 저지를 것이다. 오피스텔을 얻고, 형을 모셔오고 기본급에 인세 일부를 나누는 조건으로 청년작가를 고용할 것이다

오랜만에 신이 난다. 먼 하늘에 불타는 장작더미를 던지고 싶다. 가슴이 불타오른다. 좋은 징조이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계속 무언가에 꽂힐 수 있어서 좋다. 돈을 좀 날려도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어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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