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니 골목에 구급차 한 대가 서 있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보니 어느 집에 큰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선다.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웃끼리 안면을 트고 살진 않았다. 하지만 고통과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내 일이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디 무탈하시길 빌어본다.
골목을 꺽고 대로변으로 나오니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길이 쭉 이어져 가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세트장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생의 온도차에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나뭇잎들이 이제 힘을 잃고 벚꽃 질 때처럼 가는 길마다 낙하한다. 길바닥에 노랗게 물든 낙엽은 주말동안 쓸지 않아 화석처럼 눌러붙었고, 그 위에 흩뿌려지는 새로운 낙엽들이 길 위를 뒹굴며 발끝에 채인다.
맞은편에서 걸어오시는 연분홍 패딩을 단단하게 여민 어르신은 지팡이 앞코로 야무지게 땅을 짚으시며 걷고 있다. 복지관에라도 가시는 걸까. 숙취에 시달리는 나보다도 쟁쟁한 걸음걸이에 삶이 파르르 일어나고, 낙엽들과 구슬픈 사이렌의 기억이 흩어져 버린다. 마음 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안녕하시기를.
걸음을 재촉해 본다. 오늘치의 생이 내 앞에 찬란히 빛나고 있는데 나는 밀어놓은 집안일과 월요일 출근의 부담, 지친 몸 따위로 저만치 뒤쳐져 다리를 절고 있었다. 의연하게 살아가자. 틈틈이 책을 읽었고, 아이와 이야기하며 함께 웃었고, 단편 소설도 한 편 썼다. 나쁘지 않았다. 오늘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의무 사이로 틈틈이 내게 찾아 올 경이가 나의 바지런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꿈이 타오르기엔 작은 불씨지만 여태 꺼뜨리지 않고 살아 온 나의 수고는 삶이 계속된다는 믿음으로 한 걸음씩 꼭 꼭 짚어 온 나의 길을 밝힌다. 오늘도 걷는다. 힘을 내본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