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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현 Oct 30. 2024

출근길 단상

글을 쓰는 이유

가방에 매단 키링에서 나는 소리, 자동차 엔진음, 바퀴의 마찰음, 그리고 새들이 지저귄다. 아직 사람의 말 소리는 들리지 않는 아침의 거리는 단순한 조합의 소리들로부터 하루를 연다. 그리고 지하철역이 가까울수록 자동차 소음은 심해지고, 사람들의 발소리도 가까워진다.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나는 출근길마다 글을 쓴다. 내가 매일 보는 풍경을 묘사해보고 싶었다. 항상 같은 길을 걸어가지만 결코 똑같은 날들이 아님을 나에게 증명하고 싶기도 했다. 툭하면, "매일 똑같지,뭐"라고 말하는 나에게 삶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보여주기로 했다. 그래서 관찰자가 되었다. 그리고 서너편의 글을 썼는데, 판에 박힌 듯한 일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루하던 출근길이 생생한 모험이 되었다. 나는 채렵꾼처럼 길 위에서 달디단 영감을 낚는다. 원시적인 기쁨이 마음 속부터 차올라 영감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엮는다.


우리는 매일 이동을 한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관계하지 않고 지나친다. 출근길 러시아워에 사람들은 그저 짜증을 유발할 뿐 내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얼마전에 유목민의 피가 우리에게 흐른다는 사실을 토대로 글을 쓰면서 우리가 뿌리가 같은 커다란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본질은 닮았을 거라는 생각이  글을 쓰면서 내게 새겨졌다. 이런 것들이 글이 주는 열매이다.


앞으로 백 편의 '출근길 단상'을 적을 생각이다. 하나의 삶, 하나의 길 위에서 백 편의 다른 글들을 낚아올린다면 더 이상 인생이 항상 똑같다며 비아냥거릴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무엇을 하든지 호기심과 경이감을 가지고 대하게 되지 않을까? 어린 시절에 매일 달라지는 하늘에 경탄하며 세상의 광대함에 몸이 떨리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다. 단지 세파에 쫓겨 '관찰하고, 경이로움을 표현할 여유만 잃어버린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보기' 시작하자마자 당연한 것들이 보이는 것 뿐이다. 세상은 아름답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름답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사람들의 옷만 해도 그렇다. 그동안은 내게 색의 물결에 불과하던 사람들 각자 하나하나의 현재 모습엔 공들여 옷을 고르고, 구입하고, 옷장에 구비하고, 매일 아침마다 고심해서 고른 정성이 내재되어 있다. 나 또한 출근길 망령이 되려고 거적떼기를 걸치고 기괴스럽게 나온 것은 아니다. 그걸 아름답다고 감탄해주지 못하는 심장은 내 몫이지 그들의 몫은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흡연터를 찾았다. 담배를 피워 문다. 잠깐 쉬면서 글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백 편의 글을 생각하면서 나는 내게 밀려들 광대한 세상을 떠올리며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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